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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19-02)


애굽에게도 역사하시는 여호와

이사야 19장 16-25절


 

사람들은 고난을 당할 때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그 문제를 해결해 갑니다. 각자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고 시도한 데, 그 나름대로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세상과는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합니다. 이 말에는 새로운 무거운 숙제가 발생합니다. 믿음의 방법인 세상의 방법과 비교했을 때 요령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여호와를 따라가는 방법이 방황하지 않는 지름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 이 단락은 ‘그 날에’로 시작하는 다섯 개의 신탁으로 이뤄졌습니다. 애굽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기술하는 첫 번째 신탁(16-17)은 앞 단락의 종결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주제에 의해 연결되는 나머지 네 신탁은 심판을 넘어 애굽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내다봅니다. 종말에 애굽뿐만 아니라 앗수르까지도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와 함께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첫 번째 ‘그날에’ 두려워 떠는 애굽(16-17)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사랑하시기에 돌아오도록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말씀의 신실성과 창조성을 확인하는 삶입니다. 그 증거들이 쌓이고 쌓여 말씀의 능력에 자신의 목숨을 의탁하기에 이르면 작은 예수로 세상 앞에 두려움도 되고 소망도 될 것입니다.

 

16그날에 애굽이 부녀와 같을 것이라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흔드시는 손이 그들 위에 흔들림으로 말미암아 떨며 두려워할 것이며 17유다의 땅은 애굽의 두려움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으로 말미암음이라 그 소문을 듣는 자마다 떨리라(16-17)

 

본문은 계속적으로 애굽에 대한 말씀입니다. 앞으로 여호와께서 임하셔서, 강한 힘을 상징하는 애굽, 풍요를 상징하는 애굽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말씀을 주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애굽은 떨 것입니다.

 

(1) 두려워 떠는 애굽(16)

 

현재 문맥에서 16-17절의 ‘그날에’는 1절의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는’ 때와 연결됩니다. 애굽이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지는 이유는 언급되지 않는데, 이사야의 문맥에서 보자면 애굽은 여호와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의 후견인 노릇을 하려 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애굽 사람들이 ‘부녀처럼 떨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떱니다. 특이하게도 애굽이 ‘부녀’에 비교됩니다. 출산할 때의 두려움과 관련하여 애굽을 여자에 비교한 것 같습니다. 그분께서 애굽의 역사에 개입하실 때 사람들은 극도의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여호와를 배반한 이스라엘과 유다를 치기 위해 드셨던 손(5:25;9:12,17,21;10:4)을 이번에는 애굽 위로 흔드십니다. 출애굽 때 ‘강한 손과 편 팔’(신 4:34;5:15;7:19;11:2:26:8; 렘 32:21; 시136:12)로 애굽 바로를 굴복시키셨던 여호와께서 다시 손을 휘둘러 당신 능력을 애굽에 과시하십니다.

 

(2) 애굽에 대한 정한 계획(17)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실 때 '유다의 땅이 애굽의 두려움이’됩니다. 유다 땅이 어떤 의미에서 애굽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유다에 의한 애굽의 침략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생각하기 어렵고, 유다에 실행된 여호와의 계획이 애굽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리게 될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유다에 선포된 예언(그분 계획)이 그대로 성취됐다면 애굽에 선포된 예언(그분 계획)도 마찬가지로 성취될 것이기에 유다 땅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애굽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온 세상에 대하여 정하신 계획에 따라 모든 민족 위로 손을 펴신(14:26) 분께서 ‘그 날에’ 세우신 계획에 따라 애굽 위로 손을 휘두르십니다.

 

두 번째 ‘그 날에':애굽 땅의 다섯 성읍(18)

심판 이후에 사람들은 변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들을 멸망시키려는 의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주저만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경배하는 모습으로 변화됩니다.

 

18그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말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이며 그중 하나를 멸망의 성읍이라 칭하리라(18)

 

두 번째 신탁부터 ‘그 날에’는 심판 이후의 미래를 전망합니다. 애굽의 회복에 대한 메시지 중 첫 내용은,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으로 하나님께 맹세하는 성읍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날에’ 애굽 땅에 ‘가나안 방언’을 하고 여호와께 충성을 맹세하는 다섯 성읍이 있을 것입니다. 애굽에 흩어져 사는 유대 공동체보다는 여호와께로 개종한 애굽 사람들과 관련한 언급입니다. 성읍을 한정하는 ‘다섯’이 완전수로 사용된 경우가 없기에 구체적인, 아마도 이스라엘인이 많이 살고 있던, 다섯 성읍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가나안 방언’은 ‘히브리어’를 의미합니다. 개종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히브리어로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다섯 성읍 가운데 하나의 이름인 ‘멸망의 성읍’은 ‘태양의 성읍’을 의미하는 헬리오폴리스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는 의도적으로 태양신 제의의 중심지인 헬리오폴리스를히브리어로 발음이 거의 유사한 ‘멸망의 성읍’으로 부릅니다. 태양신을 섬기는 헬리오폴리스가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하고, 그 대신 만군의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 살게 됩니다.

 

세 번째 ‘그 날에': 여호와를 알게 되는 애굽(19-22)

심판으로 치시는 하나님의 손에는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연단의 고통을 넘어 그 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때,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의 선하심에 감사하게됩니다.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르짖게 된 이유는 무엇이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떻게 응답하시나요?

 

19그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20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징조와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한 구원자이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21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날에 애굽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22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지라도 치시고는고치실 것이므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들의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들을 고쳐 주시리라(19-22)

 

세 번째 ‘그 날에’는 전체 애굽이 여호와의 구원사 안에 완전히 들어오는 날을 내다봅니다. 애굽의 회복에 대한 두 번째 내용으로 애굽 땅에 하나님을 위한 제단과 기둥이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1) 여호와께 드려지는 애굽(19)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는 애굽 사람들이 모두 여호와께로 돌아왔음을,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는 애굽 전체가 그분의 통치 영역에 속하게 됐음을 보여줍니다(19).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한 성전이 있는 것처럼 애굽 한 가운데에 여호와를 위한 제단이 있어 모든 애굽 사람이 여호와께 나아와 제사 드릴 수 있게 되고, 가나안이 여호와의 땅인 것처럼 애굽이 그분의 땅이 됩니다. 우상 숭배하던 애굽이 여호와께로 돌아와 이스라엘처럼 그분의 통치 아래 살게 됩니다.

 

(2) 애굽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여호와(20)

 

국경에 세워진 기둥이 만군의 여호와를 위한 징조와 증거, 곧 애굽 땅이 그분께 속했음을, 그리고 애굽이 그분의 구속사에 편입됐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20). 애굽이 제2의 이스라엘이 됩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했던 여호와의 놀라운 일을 애굽도 경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여 모세와 사사들을 보내 구원해주셨던 것처럼, 애굽 사람들이 압제자들로 인해 부르짖으면 ‘한 구원자’를 보내 그들을 보호하시고 구해주실 것입니다.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신 구원 약속이 애굽에도 마찬가지로 주어집니다. 출애굽의 구원사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당신을 알리신 여호와께서 애굽에게도 구원사의 경험을 통해 당신을 알리십니다.

 

(3) 여호와를 아는 애굽(21)

 

그날에 애굽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게 되고 제물과 예물을 드리고, 그분께 서원하고 이를 그대로 이행합니다(21).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듯이 애굽 사람들이 그들의 땅 한가운데 있는 여호와를 위한 제단에서 제물과 예물을 봉헌하면 여호와께서 이를 기쁘게 받으십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원하고 실행하면 여호와께서 서원자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처럼, 애굽 사람들이 서원하고 실행하면 이들의 간구를 들어주십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사적 관계가 애굽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의 하나님이 되시고, 애굽은 그분께 신실한 백성이 됩니다. 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범죄에 교육적 목적의 징계로 응답하셨던 것처럼, 애굽의 잘못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행하십니다. 애굽이 잘못하면 치시겠지만, 치신 후에는 곧 고쳐주십니다. 애굽이 여호와께 돌아오고, 그분께서는 이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이들을 고쳐주십니다(22). 관계 회복이 하나님 경의 최종 목표가 됩니다.

 

네 번째 ‘그 날에' : 여호와로 인해 화해하는 애굽과 앗수르(23)

주님의 날이 되면, 주님이 이 땅 가운데 어그러진 것들을 고치셔서 주님을 위한 제단과 기둥이 세워지는 역사를 보게 하실 것입니다.진정한 구원자요 보호자이신 주님을 제가 더욱 깊이 알고 전심으로경배할 것입니다. 당신을 통해 열방에 하늘의 복을 흘려보내는 통로되기를 바랍니다.

 

23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23)

 

네 번째 ‘그 날에는’ 애굽 국경을 넘어 앗수르까지 내다봅니다. 그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가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가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여호와께 예배드립니다. 애굽에서 시작된 전면적 개종이 앗수르에서도 일어납니다. 근동의 주도권을 놓고 첨예하게 맞섰던 애굽과 앗수르가 여호와께로 돌아와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평화롭게 공존하게 됩니다. 국가적 이해관계와 민족적 갈등이 여호와 신앙에 의해 완전히 극복됩니다. 약탈과 점령을 위해 다니던 원정길이 평화의 길로 바뀝니다. 변방에 속한 유다의 예언자 이사야는 강대국의 폭력과 피로 얼룩진 현실에 절망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세우신 계획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낼 평화적 공존과 번영을 내다봅니다. 패권국가가 아닌, 여호와를 중심으로 땅 위에 평화가 이뤄집니다(눅 2:14). 2:2-4에서도 민족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 시온 산으로 순례를 오고, 쓸모없어진 칼과 창으로 낫과 보습을 만드는 평화의 시대를 선포한 바 있습니다.

 

다섯 번째 '그 날에':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의 축복(24-25)

메시아의 통치 아래 이루어질 완전한 연합의 나라, 온전히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이해관계를 넘고, 지역적 경계를 넘어 하늘의 신령한 복을 나누며 예배자를 세웁니다. 원수 관계였던 애굽과 앗수르가 하나 되어 하나님을 경배하고, 이스라엘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복을 받아 세상에 그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24그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25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24-25)

 

다섯 번째 ‘그 날에’는 애굽과 앗수르와 이스라엘이 하나가 되어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선포합니다. 그날에 이스라엘은 애굽과 앗수르와 함께 세 번째가 되어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복이 됩니다(24). 창세기 12:3에서 여호와께서 족장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이 이스라엘과 애굽과 앗수르를 통해 성취됩니다. ‘세 번째’(개역개정의 ‘셋’)는 서열을 가리키기보다 대등함을 의미합니다. 약소국 이스라엘이 전통적인 강대국애굽과 앗수르에 비견할 만한 나라가 됩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을 내 백성’으로, 앗수르를 내 손으로 지은 (것)으로, 이스라엘을 ‘나의 기업’으로 부르시며 이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입니다(25).


우상숭배로 더럽혀진 입술이라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던 마음도, 아무리멀리 떨어진 나라라도, 하나님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하시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게 하실 것입니다. 세상을 뒤엎는, 말도 안 되는그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 누구든 돌아오라고 대로(大路/23)를 열어놓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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