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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9-01)


애굽을 심판하시는 여호와

이사야 19장 1-15절


 

한 사회가 붕괴되는 것은 순간입니다. 하지만 그 붕괴까지 오랜 기간 축적된 모순과 부패, 내분과 내란이 그 저변에 있습니다. 강성한 나라 애굽의 멸망은 총체적인 부패와 무능이 낳은 총체적인 난국이고, 파국입니다. 그들뿐입니까, 우리 사람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 애굽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집니다. 내부 분열로 정치적 파단에 멀어지고, 자연재해로 경제적 파국에 직면합니다. 통치자들은 지혜를 자랑하지만, 실상은 제 운명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들입니다. 애굽의 운명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들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결정하십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에 수치와 수욕만 가져다둘 뿐입니다.

 

애굽의 정치적 혼란(1-4)

아무리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과학 지식이 늘어나더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입니다. 온 세상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유의 주로서 세상 모든 나라의 일들을 주관하시고 자신의 의도대로 이끌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1애굽에 관한 경고라 보라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에 임하시리니 애굽의 우상들이 그 앞에서 떨겠고 애굽인의 마음이 그 속에서 녹으리로다 2내가 애굽인을 격동하여 애굽인을 치리니 그들이 각기 형제를 치며 각기 이웃을 칠 것이요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 3애굽인의 정신이 그 속에서 쇠약할 것이요 그의 계획을 내가 깨뜨리리니 그들이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물으리로다 4내가 애굽인을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리니 포학한 왕이 그들을 다스리리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4)

 

애굽은 먼저 심각한 정치의 쇠퇴와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나라 곳곳에서 내란이 일어나고 잔인한 폭군이 등장함으로써 사회는 극도로 불안하게 될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애굽 백성들은 무엇인가 희망을 갖기 위해 우상과 미신에 빠져들 것이지만 아무런 효과도 얻지 못합니다.

 

(1) 애굽을 치시는 여호와(1-2)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의 역사에 간섭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빠른 구름을 타고 애굽으로 가십니다(1; 시 18:10). 애굽의 우상들이 그분 앞에서 흔들리고, 애굽 사람들의 마음이 속에서 녹아 내립니다. 그분의 강림이 우상들의 실체를 폭로하고, 우상을 믿고 의지하던 애굽 사람들을 두려움에 빠뜨립니다.

이사야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을 포함해 고대 근동에 잘 알려진 애굽의 우상들을 여호와 앞에 세워놓고 그 헛됨과 무능력을 고발합니다. 애굽의 신들은 헛것에 불과합니다. 시온 산에 계신 여호와께서 애굽의 운명 또한 결정하십니다. 그분 심판의 대상인 애굽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결정은 파국을 초래할 뿐입니다.

 

여호와께서 애굽인을 부추겨서 서로 싸우게 만드십니다(2). 내부분열과 내란은 애급을 심판하시려고 그분께서 택하신 방법입니다. ‘성읍이 성읍을 치며 나라가 나라를 칠 것이며’는 애굽의 여러 지방이 정치적 주도권을 놓고 내전에 빠질 것을 예고합니다. 제 22왕조의 오소르콘(Osorkon) 4세가 애굽의 바로로 통치할 때(주전 730-715년), 특히 주전 720-716년 사이에 애굽은 극심한 내부 분열을 경험했습니다. 적어도 열여덟 명의 독립된 제후들과 왕들이 등장해 서로 싸웠습니다. 거듭된 정치적 분열과 반목이 애굽을 거의 해체 직전까지 나몰았습니다.

 

(2) 애굽 종교의 무능력(3)

 

통치자들의 이기적 -당파적 분열과 다툼이 백성의 영적-도덕적 해이를 초래합니다(3). 이들은 외부의 적에 맞서 싸울 용기를 잃어버립니다. 여호와께서 깨뜨릴 애굽의 ‘계획’은 적의 공격으로부터 애굽을 방어하기 위해 세워놓은 대비책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이들의 계획은 역사를 결정하시는 여호와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애굽을 구하지 못합니다. 애굽은 우상과 마술사와 신접한 자와 요술객에게 살길을 묻지만, 이들의 신들은 여호와 앞에서 벌벌 떨 뿐입니다. 우상들과 죽은 자의 영에 의존하여 파국적 재앙을 면하려는 시도는 애굽 종교의 한계와 무능력만 폭로해줄 뿐입니다.

 

(3) 포악한 왕의 지배(4)

 

국가적 분열과 내전에 직면해 우상들에게 길을 묻는 애굽을 여호와께서 ‘잔인한 주인의 손’에 붙이실 것입니다(4). 애굽을 다스릴 ‘포악한 왕’은 구스왕 사바카를 가리킵니다. 이방 지배자를 수식하는 형용사 ‘잔인한’과 ‘포학한’은 애굽 사람들이 폭력적인 통치자 아래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게 될 것을 시사해줍니다. 다른 민족들 위에 군림하였던 애굽이 이방 통치자의 지배 아래 억압을 당합니다.

 

경제적 파탄(5-10)

하나님께서는 부요와 축복의 근원이 고통과 재앙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것들이 자신들의 우상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더 늦기 전에 불안과 불신이 만들어낸 우상을 어서 치워야 합니다. 무엇이 더 무너져야 오만함을 꺾고 하나님께 돌아오겠습니까? 강대국의 허상을 보고 있습니까? 재벌의 나약함과 비겁함에 대한 증거가 더 필요합니까?

 

5바닷물이 없어지겠고 강이 잦아서 마르겠고 6강들에서는 악취가 나겠고 애굽의 강물은 줄어들고 마르므로 갈대와 부들이 시들겠으며 7나일 가까운 곳 나일 언덕의 초장과 나일 강 가까운 곡식 밭이 다 말라서 날려가 없어질 것이며 8어부들은 탄식하며 나일 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마다 슬퍼하며 물 위에 그물을 치는 자는 피곤할 것이며 9세마포를 만드는 자와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며 10그의 기둥이 부숴지고 품꾼들이 다 마음에 근심하리라(5-10)

 

하나님의 심판으로 애굽의 경제가 피폐해지고 몰락할 것이라는 사실이 ‘나일 강의 마름’과 관련해서 강조되었습니다. 바싹 말라서 더 이상 범람치 않는 나일 강이야말로 애굽 위에 내린 생생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1) 말라버린 나일강(5-6)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가 애굽을 나일강의 선물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나일강이 애굽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중했습니다. 특히 애굽 번영의 밑거름이 된 농업경제는 거의 전적으로 나일강에 의존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 내리는 폭우로 6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사이에 발생하는 나일강의 범람으로 주변 땅에 유기물이 풍부한 퇴적층이 쌓이고, 여기에 뿌려진 씨는 풍요로운 결실을 보장해주었습니다. 실로 나일강의 주기적 범람(렘 46:7-8; 암 8:8)은 신의 선물이라 부를만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의 개입으로 애굽의 풍요는 끝납니다. 여호와께서 나일강의 범람을 막아 애굽 경제를 그 뿌리부터 뒤흔들어버리십니다(5-6; 겔 30:12).

 

(2) 농업의 붕괴(7)

 

애굽의 젖줄인 나일강이 바싹 메마르고 그지류들에서는 악취가 나며, 강가의 갈대와 부들이 시들어버립니다(출 7:20-21; 시 78:44). 우상에 의지하는 애굽은 이방 통치자의 손에 넘겨질 뿐만 아니라 파국적인 자연재해를 경험하게 됩니다. ‘바닷물’과 ‘강’은 나일강을, ‘강들’은 나일강의 지류를 가리킵니다. 농업경제의 대동맥인 나일강이 범람하지 않으면 흉작은 피할 수 없습니다. 나일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강 주변에 있는 밭들이 뜨거운 태양 아래 모조리 말라버리고, 씨들이 싹을 틔우지도 못하고 바람에 날려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7). 애굽이 자랑하던 곡창 지대가 황폐해집니다. 농업뿐만 아니라 애굽의 모든 산업이 나일강의 물이 마르는 극심한 가뭄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습니다.

 

(3) 수산업의 붕괴(8)

 

강이 바싹 말라 물고기가 사라져 생계 수단을 잃은 어부들은 탄식하고, 나일강에 낚시를 던지는 자들은 모두 슬퍼하고, 물에 그물을 치는 자는 생기를 잃습니다(8). 갈릴리 호수 주변에만 직업적인 어부들이 있었던 이스라엘과 달리 애굽에서는 어업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직업적으로 물고기를 잡아 팔았고, 상류층은 일찍부터 나일강에서 취미로 낚시를 즐겼습니다.

 

(4) 섬유산업의 붕괴(9-10)

 

고대 근동에서 유명했던 애굽의 섬유산업도 재앙을 피하지 못합니다. 나일 강변에 무성했던 갈대와 부들이 사라지면서 애굽의 기간 산업에 속하는 세마포와 삼베를 생산하는 직물 산업이 직격탄을 맞습니다. 세마포를 만드는 자들과 베 짜는 자들이 수치를 당하고, ‘기둥들’은 부서지고(‘직조공들’은 크게 실망하고?) 품꾼들은 모두 낙심합니다(9-10). 살길이 막막해진 자들이 모두 낙담합니다. 애굽이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파탄에 직면해 생존의기로에 서게 됩니다. ‘수치를 당하다’(부끄러워하다)는 자신의 사명이나 의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못한 사람은 인정을 받지 못하고 수치를 당합니다.

 

애굽 지혜자들의 어리석음(11-15)

하나님의 계획 앞에서 인간의 지혜 곧 이 세상의 지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어리석고 우준하며 혼미할 뿐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같은 세상 지혜를 믿고 하나님의 지혜를 무시하려 합니다. 성경은 세상 지혜의 어리석음을 분명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소안의 방백은 어리석었고 바로의 가장 지혜로운 모사의 책략은 우둔하여졌으니 너희가 어떻게 바로에게 이르기를 나는 지혜로운 자들의 자손이라 나는 옛 왕들의 후예라 할 수 있으랴 12너의 지혜로운 자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애굽에 대하여 정하신 뜻을 알 것이요 곧 네게 말할 것이니라 13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었고 놉의 방백들은 미혹되었도다 그들은 애굽 종족들의 모퉁잇돌이거늘 애굽을 그릇 가게 하였도다 14여호와께서 그 가운데 어지러운 마음을 섞으셨으므로 그들이 애굽을 매사에 잘못 가게 함이 취한 자가 토하면서 비틀거림 같게 하였으니 15애굽에서 머리나 꼬리며 종려나무 가지나 갈대가 아무 할 일이 없으리라(11-15)

 

애굽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정치의 쇠퇴와 경제의 몰락에 이어, 고대 세계에서 그들의 큰 자랑이었던 지혜와 문화, 곧 그들의 정신적 세계가 어리석게 되어 마침내 붕괴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세상 지혜는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1) 어리석은 지혜자들의 어리석음(11-13)

 

애굽의 아시아 정책을 주도적으로 담당하는 정치 세력의 무능력을 고발합니다. 소안의 방백들은 어리석기만 하고, 지혜를 자랑하는 바로의 자문관들도 우둔하기만 합니다(11). 애굽에서는 지혜가 옛 왕들에게서 나왔다고 간주되기에 지혜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자신을 ‘옛 왕들의 후예’로 자랑했습니다. 소안은 놉과 함께 구약성경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성읍입니다. 소안의 방백들은 애굽의 아시아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데 바로의 자문관으로 참여했습니다. 시리아 가나안과 메소포타미아 문제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지대했습니다. 이들은 정치적 지혜를 자랑하며 바로에게 자문하지만, 실제로는 우둔한 자들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의 지혜는 당면한 위기의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했습니다. 소안의 방백들이 참으로 지혜로운 자들이라면 ‘여호와께서 애급에 대하여 정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12). 그러나 이들의 어리석은 지혜는 애굽의 운명을 제대로 내다보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소안의 방백들은 바보들이었고, 놉의 방백들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정치가들의 우둔한 결정이 애굽을 잘못된 길로 이끌었습니다. 그리스어로 멤피스로 알려진 놉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대략 20km 떨어진 곳으로 하(下)애굽의 옛 수도였습니다. ‘모퉁잇돌’은 건축물에 비유된 종족들을 이끄는 지배 계층을 가리킵니다.

 

(2) 피할 수 없는 열망(14-15)

 

여호와께서 애굽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들어 이들의 정책이 파탄에 이르게 하십니다. 소안과 놉의 방백들이 진짜 지혜자들이라면 여호와께서 애굽을 심판하기 위해 섞어놓으신 ‘혼란의 영’('어지러운 마음')을 구별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14). 어떤 길이 멸망의 길이고, 어떤 길이 생명의 길인지를 바르게 판단할 수 있어야했습니다. 역사를 경영하시는 분의 계획을 알지 못하는 지혜는 참된 지혜가 될 수 없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지혜로 이름을 떨치던 애굽이 자신들이 자랑하던 지혜로 인해 멸망에 떨어집니다. 애굽은 지혜자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부터 끝까지 잘못된 길로만 갔습니다. 애굽의 지혜자들은 나라를 멸망시키는 일에 있어 지혜로운 자들이었습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통치자들이 실상은 어리석고 우둔한 자들인데, 일반 백성이 다를 수는 없습니다.

위나 아래나 한가지로 어리석기에 혼란에 빠진 애굽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15). 온 세상을 경영하시는 여호와의 의지를 모르는 자들이 통치하였기에 애굽은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유다의 희망이던 애굽의 초라하고 허망한 말로를 보아야 합니다. 얼마나 형편없는 나라입니까? 결국 무너질 나라를 의지하는 것은 어리석은 깃입니다. 수치와 수욕만 안겨줄 뿐입니다. 세상에는 절대 권력도, 영원한 권력도 없습니다. 개인이든, 단체든, 나라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동안만 존재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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