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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10-01)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이사야 9장 8절-10장 4절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메시지를 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태도를 바꾸지 않고, 오히려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더욱 대적했습니다. 이런 백성에게 하나님께서는 경고의 다음 수순을 준비하십니다.

 

  • 한 아이에 의한 구원 시대의 출현을 선포한 이사야의 시선이 북왕국 이스라엘로 향합니다. 여호와께서 에브라임과 사마리아를 치셨지만, 이들은 치신 분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심판의 강도가 높아갈수록 죄악만 더 심해졌습니다. 돌아오게 하려는 여호와의 징벌이 이들을 더욱 완악하게 만들었습니다. 징벌에 익숙해져 그분의 심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제 길을 갔습니다.

 

사마리아의 교만(8-12)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성취로 인해 자만해집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신뢰할 만하다고 확신할 때 하나님을 무시하는 오만함까지 보이게 됩니다. 우리의 지혜나 힘은 창조주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진정한 능력을 소유하게 됩니다.

 

8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9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10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는도다 11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의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12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모두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8-12)

 

여호와께서 예언자들을 통해 북왕국 이스라엘의 죄악을 고발하고 경고하셨기에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주민 모두가 하나님의 의지를 알면서도 불순종하였습니다. 교만과 자만에 빠진 자들은 거듭된 재앙에도 여호와를 찾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힘에 의지했습니다.

 

(1) 내부적 재난(8-10)

 

이사야는 적들에 침략당한 이스라엘의 역사를 되돌아보며 이를 여호와의 징벌적 간섭이라고 주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교만을 심판하시려고 원수인 아람과 블레셋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하게 하셨습니다. 남북 왕조가 분열된 이후 이스라엘이 경험한 전쟁은 이들의 불순종을 징계하시려는 심판입니다.

 

(2) 외부적 재난(11-12)

 

아람은 특히 주전 9세기에 이스라엘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였고, 블레셋은 다윗에게 패하고 가나안의 주도권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이스라엘에게 여전히 위협적이었습니다(암 1:3-8). 먹이를 집어삼키는 사자처럼 아람과 블레셋이 침략했지만, 이스라엘은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완악함 때문에 그분의 진노가 풀리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심판(13-17)

지도자의 영적 수준과 상태는 공동체 구성원의 영적 수준과 상태로 직결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위임된 권세를 사용하는 자들에게 복종함과 동시에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권세를 올바르게 사용하도록 도우며 살펴야 합니다.

 

13그리하여도 그 백성이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14그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15그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그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16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을 미혹하니 인도를 받는 자들이 멸망을 당하는도다 17이 백성이 모두 경건하지 아니하며 악을 행하며 모든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13-17)

 

이스라엘 백성이 회개를 거부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됩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데가 하나도 없으면서 하나님께서 돌아오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런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속되는 심판은 지도자들을 몰락시키는 것으로 실행됩니다.

 

(1) 지도자들의 버림받음(13-16)

 

여호와의 징계가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이스라엘은 용서와 치료를 위해 그분께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을 죄의 길에서 떠나게 하려고 주신 징계가 이스라엘을 더 완악하게 만들 뿐이었습니다. 마침내 여호와는 이스라엘에서 ‘머리와 꼬리와 종려나무 가지와 갈대’를 하루 만에 잘라버리셨습니다. 신분이 높은 자와 낮은 자가 모두 멸망의 심판에 떨어졌습니다. ‘하루 사이에’는 심판이 엄청난 세력에 의해 갑자기 이뤄졌음을 시사해줍니다. 이스라엘 전체를 가리켰던 14절의 ‘머리와 꼬리’가 15절에서는 파국적 재앙에 1차적 책임이 있는 지배 집단으로 한정됩니다. ‘장로와 존귀한 자’를 머리로,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를 꼬리로 해석해줍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이끄는 자들입니다. 능력이 없고 무책임한 자들이 백성을 오도하여 백성이 길을 잃고 혼란에 빠져 헤매다가 멸망에 떨어졌습니다. 그렇다고 백성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결국 인도자들의 타락에 가담했습니다.

 

(2) 백성의 버림받음(17)

 

여호와를 찾지 않는 일에 예외 없이 다 참여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여호와에게서 멀리 떠나 악을 행하고 입으로는 어리석은 것만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장정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그들의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는 어떤 경우에도 되돌려지지 않을 여호와의 단호한 심판 의지를 보여줍니다. 그분께서 전쟁에 나간 이스라엘의 장정들에게 승리를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침략군과의 싸움에서 이스라엘의 패배가 확정됐습니다. 여호와께서 고아와 과부마저 긍휼히 여기지 않으신다면, 이스라엘이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전무합니다.

 

파국적 결과(18-21)

불타오르는 불길처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욕망이 불타올라 공동체가 그 욕심에 지배받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온갖 불의한 방법으로 소유를 늘려도 타락한 사람들의 소유욕은 충족되지 않습니다. 결국은 모두가 불살라지듯 서로 먹고 먹히는 끔찍한 사회가 되어 버립니다.

 

18대저 악행은 불 타오르는 것 같으니 곧 찔레와 가시를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19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말미암아 이 땅이 불타리니 백성은 불에 섶과 같을 것이라 사람이 자기의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20오른쪽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왼쪽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21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18-21)

 

타락한 공동체에는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저마다 욕심의 노예가 되어 서로가 서로를 먹는 잔인하고 탐욕스러운 사회가 됩니다. 이런 모습은 찔레가 가시가 불에 삼켜지며 빽빽한 수풀이 불살라져 연기가 치솟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1) 악이 만연함(18-19)

 

여호와께서 굳이 이스라엘의 죄악을 징계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악의 세력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스스로 자신을 파멸시킵니다. 죄가 죄인을 황폐하게 하듯이, 악행이 이스라엘을 폐허로 만듭니다. 찔레와 가시와 같은 잡목들로 우거진 숲에 한번 불이 붙으면 끌 수 없듯이, ‘악행’(사악함)의 불길이 이스라엘을 송두리째 삼켜버립니다(1:31; 5:24; 30:33). 잡목으로 덮인 숲이 하늘 높이 솟는 불길에 연기와 함께 사라지듯, 이스라엘도 죄악의 불길에 사로잡혀 멸망합니다. ‘위로’의 ‘게우트’는 원래 ‘높음’을 뜻하며, 2차적으로 교만(28:1,3)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자랑하고 의지하는 것들이 실제로는 불에 타서 사라져버리는 연기와 같은 것들입니다. 여호와의 진노로 땅은 바싹 타버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불꽃의 먹이가 됐습니다. 죄악의 불길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은 그 불길에 몸을 내맡겼습니다. 이웃을 아끼지 않고 서로에게 적이 됐습니다. 죄악에 사로잡힌 이스라엘에게 이웃은 탐욕을 채우기 위한 물건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굶주린 짐승처럼 서로를 잡아먹었습니다. 이웃을 적으로 삼는 행위는 제 팔의 살 점을 뜯어먹는 자살 행위인데도 당장의 이익과 채울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공동체를 파괴하고 멸망으로 내달렸습니다.

 

(2) 민족/형제 공동체의 사라짐(20-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뜯어먹고, 또 힘을 합하여 유다를 쳤습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로 출발해 하나님 백성으로 하나가 됐지만,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왕정이 도입된 이후 지파의 이익을 우선시하면서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지파 간의 분쟁과 북왕국과 남왕국의 싸움으로 여호와께서 이들을 징벌하셨지만, 그분의 진노가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불의한 법령을 만드는 자들(10:1-4)

책임과 함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지도자가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죄악의 길을 걷게 되면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대단한 권위와 힘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 유한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1불의한 법령을 만들며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 2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3벌하시는 날과 멀리서 오는 환난 때에 너희가 어떻게 하려느냐 누구에게로 도망하여 도움을 구하겠으며 너희의 영화를 어느 곳에 두려느냐 4포로 된 자 아래에 구푸리며 죽임을 당한 자 아래에 엎드러질 따름이니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진노가 돌아서지 아니하며 그의 손이 여전히 펴져 있으리라(1-4)

 

유다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가 다시 주어집니다. 선지자는 또다시 지도자들의 죄와 타락을 맹렬하게 지적합니다. 이들은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 백성을 고통스럽게 했습니다. 공의와 정의를 이루어야 하는 법령을 가지고 억울한 이들을 만들고 연약한 자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었습니다.

 

(1) 불의한 지도자들(1-2)

 

넷째 단락은 한편으로는 서두의 ‘화 있을진저’에 의해 5:8-24에, 다른 한편으로는 4절의 후렴구에 의해 앞 단락들에 연결됩니다. 고발의 주제도 달라집니다. 이스라엘의 정치를 역사적으로 되돌아보며 심판을 선포하는 앞 단락들과 달리, 여기서는 5:8-24의 경우처럼 사회적 불법, 특히 사법적 정의를 유린하는 자들에게 화를 선포합니다. 화의 대상이 북왕국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인지는 불분명합니다. 고발 내용을 보면 유다의 지도자들까지 포함해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사법 체계를 책임진 자들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키기 위해 열심히 규정을 만들어내고 말았습니다. 법 제정의 전권을 가진 자들이 만든 규정들이 하나님 백성에게 재앙만 가져다줍니다. ‘법령을 만드는 자들’은 왕의 고위 관료로, 정치적·경제적 형편에 맞게 법과 규정을 새로이 정하는 자들입니다(창 47:26;삿 5:9,14;삼상 30:25).

 

(2) 나라의 패망, 포로가 되어 흩어짐(3-4)

 

‘불의한 말을 기록하며’는 원문에 따르면 ‘줄 곧 고통을 써 내려가는 글 쓰는 자들’입니다. 법을 통해 사회에 정의와 공의를 구체적으로 세워야 할 자들이 ‘불의한 법령’을 만들어 공동체에 수고와 고난을 끼칩니다. 이들이 열심히 만들어 내는 법령 때문에 하나님의 남다른 관심의 대상인 가난한 자와 과부와 고아의 권리(1:17; 11:4)가 짓밟힙니다. 약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 체계가 강자들의 권리만 더 강화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이들이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율법을 주셨지만, 실제로 법을 책임진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백성도 없었습니다. 만연한 사법적 불의에 법의 근원이자 마지막 보루이신 여호와께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벌하시는 날이 몰아치는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처럼 이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징벌의 날에 이들은 누구에게서도 도움을 구하지 못하고, 어디에서도 피할 곳을 찾지 못합니다. 불법으로 착취하여 모은 재물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집니다. 이들은 포로가 되어 땅바닥에 쭈그려 앉거나 칼에 맞아 쓰러져 시체들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수치와 멸망이 이들의 운명이 됩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여호와의 진노가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그분 진노의 손은 여전히 이스라엘 위에 뻗쳐 있습니다. ‘벌하시는 날’(호 9:7; 암 3:14)은 책임을 묻는 심판의 날입니다. 법을 담당한 자들이 자신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공정하게 수행하였는지를 살펴보고 책임을 추궁당하는 날입니다.


처음에 하나님은 말씀으로 타이르십니다. 백성이 말씀을 듣지 않으면 막대기를 드십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지도자를 징계하십니다.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지 않은 지도자, 선지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마지막에는 나라 전체가 진노의 불길에 휩싸입니다. 이처럼 징계를 키우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속히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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