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01-04)
우선순위를 따라 행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1장 35-45절
우리나라에는 “실을 바늘허리에 매어 쓰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일의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아무리 급하다고 순서를 건너뛸 순 없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건물을 건축하는데 기초를 세우는 것은 가장 먼저해야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이 망쳐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신앙의 가장 기초는 기도로부터 시작합니다. 혹시 지금 당신은 바쁘다고 기도를 건너뛰고 있진 않습니까!
-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서 하루 종일 말씀 선포하시고 병든 사람들을 치유하시며 더러운 귀신까지 축사 하셨습니다. 피곤한 가운데도 다음날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후 사역지를 정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갈릴리를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말씀을 선포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지만, 나병환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의 정체가 들어나게 됨으로 잠시 한적한 곳으로 떠나셔야만 했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35)
사람들은 종종 어려운 현실은 대충 넘어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광야 같은 현실이라도 대충 넘어가지 않습니다. 이렇게 넘어지지 않고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골방과 같은 한적한 곳을 찾아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잃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5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35)
예수님께서는 전날에 분주한 하루 사역을 마치셨습니다. 힘든 사역을 마친 뒤에 좀 더 쉬셔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몰려드는 사람 때문에 힘드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육체적 필요를 뒤로 하시고, 다음 날 아침에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을 찾아서 홀로 기도하십니다. 한적한 곳은 ‘광야’를 의미합니다. 광야에서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항상 생명 없는 광야 같은 세상을 향해 기도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곳에서 오해를 당하고 곤욕을 당했습니다. 때로는 뜻하지 않는 찬사와 기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사명입니다. 자신을 알아주며 칭찬이 자자한 곳에는 스스로 우쭐거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만하여 넘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소명을 잊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바로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통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자신의 소명을 다시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서 새롭게 결단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의 싶은 만남이 없고서는 세상과의 강력하게 대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바쁘신 중에도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하셨습니다. 당신도 분주할수록 매일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해야 합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사명과 하나님의 뜻을 다시 세워 줄 것입니다. 그 사명대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새로운 곳을 찾아가신 예수님(36-39) ⁂【 마태복음 4:23-25, 누가복음 4:43-44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호응하는 곳을 찾아가서 일하려고 합니다. 그런 곳이 일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반기는 사람들을 찾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36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37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38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39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36-39)
전날의 사역으로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새벽 미명부터 기도하고 있던 예수님을 제자들이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을 발견한 제자들은 “모두 사람이 주를 찾습니다”라고 보고합니다. 아마도 전날에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사역에 대해 사람들이 열렬히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에 제자들은 상당이 고무되었던 것 같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시간과 장소가 정해져 있었음을 시사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이상할 정도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시고, 다른 마을로 들어가십니다. 예수님의 선택은 사람들의 인기와 요구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명을 따라 복음 전도의 길로 떠났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치유사건이 많이 나오지만, 치유가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우선순위를 두셨고, 치유라는 도구를 통해 복음을 증거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기 위해 온 갈릴리로 다니셨습니다. 온 갈릴리에서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제자들의 보고가 틀려서가 아닙니다. 다른 마을이 더 중요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역보다 다른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습니다. 인기나 명예는 무조건 피해야할 대상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금은 다른 곳에 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인기가 있든 없든, 고난이나 성공이 기다리던, 자신이 필요한 곳이든 아니든 간에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그것에 순종하고 나갔던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 말씀 그대로 실현되는 곳에 임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인기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뜻을 찾는데 소홀합니다. 인기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사에 보내신 목적인 영혼 구원한 것입니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기준이 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다른 사람에게 칭찬 듣는 것인지 아니면 그 영혼을 인도한 것인지 분명하게 기준을 세우시길 바랍니다.
나병환자를 고치신 예수님(40-44) ⁂【 마태복음 8:1-4, 누가복음 5:12-16 】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파하신 곳에서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본문의 나병한자를 고쳐주신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사역의 본질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40한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41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42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 43곧 보내시며 엄히 경고하사 44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40-44)
한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자신을 깨끗케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나병환자는 돌에 맞아 죽을지도 모를 위협을 무릅쓰고 예수님께 나아와 치유를 간구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원하시면”라고 말할 만큼, 예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할 만큼 겸손했습니다. 세상에는 자신이 소유한 것이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풍족함으로 교만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병환자처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함으로 주님 앞에 나올 때,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당시에 나병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병환자는 죽은 사람과 같이 취급당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마을에게 쫓겨나서 사람들이 없는 광야로 나가야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종교적으로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절망과 단절을 겪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나병환자 나타나면 모든 사람들이 그 환자 곁에서 떠났습니다. 그 나병환자는 주님 앞에 나와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민망히 여기시고 긍휼히 여겨 주셨습니다. 그에게 사랑의 손으로 대어 만져주셨습니다. 말씀으로 명하여 그의 나병을 깨끗하게 고치셨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나병은 부정한 병입니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이 나병환자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행동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고쳐주셨습니다. 그에게 손을 대어도 예수님은 부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속죄양이 되시어 그를 부정하게 한 사망의 저주를 대신 짊어지시고 정결규례를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지심으로 더러운 병을 깨끗하면 치유하십니다. 나병환자를 치료하신 것은 생명이 없는 사람 같은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치료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처럼 치유하실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병환자처럼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인류의 죄를 감당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피해가는 길을 예수님께서는 감당하시려고 당신에게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당신을 만지시고 계십니다. 당신의 문제를 나병환자처럼 나간다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놀라운 치유의 역사, 축사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다시 광야로 나가신 예수님(45)
예수님의 사명은 죽은 영혼을 찾으신 것입니다. 광야를 향해 영혼을 찾아나섭니다. 나병환자에게 치유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도록 엄히 명령하십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에게 전함으로 새로운 일들이 시작됩니다.
45그러나 그 사람이 나가서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는 드러나게 동네에 들어가지 못하시고 오직 바깥 한적한 곳에 계셨으나 사방에서 사람들이 그에게로 나아오더라(45)
예수님께서 나병환자에게 침묵하란 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사람들에게 오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죽은 영혼을 찾아 영혼 구원함이 목적이지 치유가 중심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주신 것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사역에 집중하기 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음이 전파된 것이 주님의 목표였습니다. 이 침묵은 하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루어 나감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표시입니다.
하지만, 그 나병환자는 이 사실을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퍼뜨립니다. 그 사람에는 치유를 받은 사실보다 더 큰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더 이상 다른 마을로 다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다시 광야와 같은 한적한 곳으로 다시 들어가십니다. 때로는 불순종의 열심보다 순종의 침묵이 하나님 나라에 보탬이 됩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른 사역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그의 말씀을 따라 사역을 이루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질을 뒤로하고 다른 것에 분주한 삶이 아닌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신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자신의 사명을 잊지 않고 끝까지 충성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인기주의에 빠져서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이 사명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당신만의 골방으로 들어가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그곳에서 능력이 임합니다. 그곳에서 치유의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