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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31-01)

 


공의로 통치할 위대하신 왕

이사야 31장 1-8절


 

살다보면 위기의 순간이 있습니다.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위기의 순간 내가 의지하는 것이 실제 내가 믿는 것입니다. 위기의 순간 우리는 각자 믿는 대로 행동합니다. 평소 믿음은 위기의 순간을 위한 연습이며 훈련입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 누가 예루살렘의 보호자입니까? 누가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고 역사를 주관합니까? 애굽이나 앗수르 같은 강대국이 땅의 역사를 결정합니까? 강대국의 절대 권력은 겉모습에 불과할 뿐입니다. 이스라엘은 물론 민족들의 운명도 여호와께서 결정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어리석게도 도와줄 능력과 의지가 있으신 여호와를 버리고 사람에 불과한 애굽을 의지합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1-3)

참된 왕은 백성을 사랑합니다. 진리와 공의로 가르치길 원합니다. 공의가 법적으로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정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세워지는 올바름입니다. 고의가 원리 혹은 방향이라면, 정의는 인간사의 사소한 삶의 맥락과 같은 것입니다. ‘공의와 정의’는 모든 면에 있어서 공평하고 바르다는 것입니다.

 

1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 2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즉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 그의 말씀들을 변하게 하지 아니하시고 일어나사 악행하는 자들의 집을 치시며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리니 3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러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1-3)

 

선지자는 장차 한 왕이 나타나 공의와 정의로 통치할 것을 예언합니다. 이 왕은 종교 개혁을 이룬 히스기야를 가리킵니다. 히스기야 이전에 유다는 종교적으로 타락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1) 화의 선언(1a)

 

앗수르의 침략으로 예루살렘이 멸망의 위기에 직면하자 유다의 정치가들은 애굽으로 사절을 파견해 도움을 구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바라보거나 찾지 않고 애굽에서 구원자를 찾습니다. 이들은 애굽의 수많은 군마와 병거와 마병에서 실질적인 힘과 도움을 보았습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자들이 내린 결정에 맞서 유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십니다. 하나님 백성의 생존을 애굽에 의존하려는 자들의 지혜가 파국적 재앙을 초래하는 어리석음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지혜를 자랑하는 예루살렘 정치가들의 불신앙을 정죄하시려는 그분의 의지는 확고하기에 어떤 경우에도 취소되지 않습니다.

 

(2) 여호와의 반응(2)

 

앗수르의 왕이 아니라 바로 여호와께서 이들에 맞서 일어나셔서 ‘악행하는 자들의 집’뿐만 아니라 형악을 돕는 자들도 치십니다. 유다를 도우려는 애굽마저 여호와의 심판에 넘겨집니다. 여호와께서 등을 돌린 예루살렘 왕궁을 징계하기로 하셨기에, 유다를 도우러 원정에 나서는 애굽도 재앙을 피하지 못합니다. 악행 하는 자들은 예루살렘의 정치가 여호와에게서 얼마나 멀리 떠났는지를 단정적으로 보여줍니다. 정의와 공의를 짓밟고 공동체를 무질서 상태에 빠뜨리는 자들이 예루살렘의 통치자들이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이 왕궁에서 정치하기에 멸망의 심판을 피할 길이 없어집니다. ‘여호와께서도 지혜로우신 즉’은 예루살렘 정치가들의 지혜로움을 전제합니다. 정치가들이 참된 지혜자라면, 지혜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의 의지를 알 수 있어야 했습니다. 지혜의 근원 되시는 여호와께서 이들의 지혜에서 나온 결정을 무력화해 이들의 지혜가 거짓 지혜임을 폭로하십니다. 예루살렘의 정치가들이 참된 지혜자였다면, 도움을 청하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애굽인들은 신의 결정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살아야 하는 사람(아담)이지 운명을 결정짓는 ‘신’(엘)이 아닙니다. 그들의 군마도 덧없는 ‘육체’(바사르)이지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영’(루아흐)이 아닙니다.

 

(3) 애굽의 실체(3a)

 

사람과 육체에 불과한 애굽인과 그들의 군마에 의지하는 예루살렘 정치가들의 어리석음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민족들의 운명을 결정하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응답하십니다. 홍해에서 오른손을 펴서 추격하던 애굽의 군대를 진멸하셨던 분께서(출 15:12), 이스라엘의 거듭된 불순종에 펴신 손을 거두지 않으셨던 분께서(9:12,17,21; 10:4) 이제 권능의 손을 펴서 돕는 자(애굽)와 도움을 받는 자(유다)를 치시기에 둘 다 쓰러져 멸망을 당합니다. ‘넘어지며’의 ‘카샬’과 ‘엎드러져서’의 ‘나팔’은 자주 전쟁의 패배와 관련하여 비유적으로 사용됩니다. ‘육체’는 ‘연약함과 덧없음’을 특징으로 하는 창조된 인간을 가리킵니다.

 

(4) 여호와의 반응(3b)

 

영은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사람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생명의 원리로 사람이 활동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하나님께서 영을 주실 때 군마는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됩니다(28:6).

 

시온의 구원(4-5)

믿음은 선택입니다. 그 믿음으로 순간순간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위기의 순간 우리 앞에는 항상 두 가지 선택지가 보입니다. 돈과 권력을 의지할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만을 의지할 것입니까?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선택할 때 구원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진리를 따라 행하는 의로운 왕의 통치는 모든 사람을 살게 합니다.

 

4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 5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넘어 구원하리라 하셨느니라(4-5)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온전히 지키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눈은 감기지 않고, 귀는 우리의 작은 소리에도 아주 민감합니다. 세상의 어느 곳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켜도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다스리시면 우리는 안전합니다.

 

(1) 먹이를 지키는 사자의 비유(4)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대한 당신의 의지를 일상적 경험 세계에 속한 비유에 담아 보여주십니다. 사자의 비유에서 사자에 움켜잡힌 먹이는 이중적 역할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여호와에 의한 예루살렘의 징계/심판의 의미를 갖습니다. 사자의 으르렁 거림은 먹잇감을 살려주려는 애씀이 아니라, 자기 먹잇감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위협적인 울부짖음입니다. 사자의 먹잇감이 된 양처럼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심판에 떨어집니다. 다른 한편으로 여호와의 보호 아래 있는 예루살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먹잇감이 사자의 소유이듯 예루살렘은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목자들이 사자에 사로잡힌 양을 구해낼 수 없듯이 아무도 여호와에게서 예루살렘을 빼앗지 못합니다. 목자들이 몰려와 소란을 피워도 사자가 자기 먹잇감을 포기하지 않듯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침략자들의 위협에서 지켜주십니다. 목자는 고대 근동에서 통치자의 상징으로 사용됐습니다. 사자에게서 먹잇감을 빼앗으려는 목자들은 유다에 대한 여호와의 권위에 도전하는 앗수르의 통치자들을 가리킵니다. 사자 비유는 예루살렘이 독점적으로 여호와께 속했음을 전제합니다. 예루살렘이 여호와의 독점적 권리를 무시하면 심판의 대상이 되지만, 하나님의 소유이기에 그걸 뺏으려는 외부 세력으로부터는 보호를 받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려오셔서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목자들에 맞서 싸우십니다. ‘강림하여’는 1절의 ‘내려가는’과 같은 동사 ‘야라드’의 번역입니다. 예루살렘의 정치가들은 여호와를 찾지 않고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고,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의 침략에서 예루살렘을 구해주시려 시온 산에 내려오십니다.

 

(2) 먹이를 지키는 새의 비유(5)

 

여호와께서는 앗수르에 의한 징계를 통해 당신을 앙모하지 않는 자들에게 예루살렘이 당신께 속한 도성임을, 예루살렘의 보호자가 애굽이 아니라 당신이심을 보여주십니다.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5)는 대개 새끼를 보호하는 어미 새의 모습(신 32:11; 시 36:7; 91:4)을 보여주지만, 원문은 단순히 ‘맴도는 새들’입니다. 사자의 비유와 관련이 있다면, 본문의 새는 사자가 먹다 남긴 잔해를 자기 것으로 지키기 위해 그 위를 맴도는 맹금을 가리킵니다. 제 먹이를 지키는 맹금처럼 여호와께서 (사자의 먹이처럼 심판에 떨어져 거의 죽게 된) 예루살렘을 보호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앗수르를 불러 당신을 배반한 예루살렘을 치게 하시지만, 이들의 손에 완전히 넘기지 않으시고 마지막 순간에 구해주십니다(14:24-27; 22:1-14; 29:1-8; 30:27-33). 후반절은 전반절의 동사 ‘보호하다’를 다시 사용하면서 거기에 유사한 의미의 세 동사를 더해 여호와의 구원 의지를 최상급으로 강조합니다. ‘그분께서 보호하시고 건지시며 아끼시고 구원하시리라’(사역). 정치가들의 지혜나 이들이 의존하는 애굽이 아니라, 예루살렘을 당신 도성으로 선택하신 여호와께서 보호해주십니다.

 

앗수르의 심판(6-9)

죄는 악을 선이라고 하고, 선을 악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를 변질시키고 왜곡시킵니다. 의로운 왕은 그것을 바로 세웁니다. 때로 부와 권력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고를 조종합니다. 우둔한 자가 존귀한 자로 둔갑합니다. 그러나 의로운 왕의 통치를 그릇된 생각을 바로 잡아 줍니다.

 

6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오라 7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우상, 금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8앗수르는 칼에 엎드러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니겠고 칼에 삼켜질 것이나 사람의 칼로 말미암음이 아닐 것이며 그는 칼 앞에서 도망할 것이요 그의 장정들은 복역하는 자가 될 것이라 9그의 반석은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물러가겠고 그의 고관들은 기치로 말미암아 놀라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호와의 불은 시온에 있고 여호와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6-9)

 

악한 자들이 통치하는 세상에서는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자들이 존경을 받지 못합니다. 오히려 악하고 부패하여 탐욕이 강한 자들이 높임을 받습니다. 경건함이 없는 곳에서 악인들은 계속해서 악한 일을 계확하고 실행합니다.

 

(1) 권면(6)

 

예언자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보호자이시기에 이스라엘은 ‘심히 거역하던 자에게로’ 돌아와야 합니다(6). 앗수르의 위기는 이스라엘의 배반을 징벌하는 심판이기에, 이들이 시온 산에 거하시는 여호와께로 돌아와 그분을 앙모하고 구하면 해결됩니다.

 

(2) 버려지는 우상(7)

 

회개는 구체적으로 우상숭배에서 떠나는 것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7). 자기 손으로 은 우상과 금 우상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 우상숭배가 노골적이고 의지적이었음을 시사합니다. 회개와 우상 제거가 구원의 전제 조건은 아니지만 이를 통해 구원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앗수르의 심판과 예루살렘의 구원은 여호와의 ‘온 세계를 향하여 정한 경영’(14:26)에 따른 것입니다.

 

(3) 앗수르의 멸망(8-9)

 

앗수르는 사람의 칼이 아닌 (다른) 칼에 맞아 죽을 것입니다(8).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를 쳐서 쓰러뜨리시는(3) 여호와께서 이들을 공격하는 자들을 칼에 넘겨 쓰러지게 하십니다. 흔들리지 않는 ‘반석’이 되어야 할 앗수르 왕과 고관들이 놀라 도망합니다(9). 앗수르의 반석 (앗수르 왕)이 이스라엘의 반석(여호와 하나님)에 질겁하여 물러갑니다. 시온에 불을, 예루살렘에 풀무를 가지신 여호와의 말씀이기에 예언자의 선포는 반드시 성취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에 갖고 계신 불과 풀무는 성전과 제단 위의 불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의 정치가들이 등을 돌린, 시온 산에 계시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앗수르를 멸망시키시고 예루살렘을 구원하십니다.


공의와 정의의 왕은 절망에 빠진 백성에게 희망과 소망이 됩니다. 히스기야는 타락한 남 유다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시 세울 것입니다. 하지만 완전한 공의와 정의의 세상은 메시아의 통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참된 소망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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