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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28-02)

 

 


예루살렘 지도자들에 대한 경고

이사야 28장 14-29절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보이는 형상, 즉 우상으로 만들지 못하게 금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나 계시고, 만질 수 없으나 일하고 계십니다.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손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만물이 움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백성에게 자세히 말씀하십니다.

 

 

  • 무능력과 타락은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 왕궁의 정치가들도 제 역할을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애굽에서 피난처를 찾았습니다. 애굽과 조약을 맺었기에 안전하다고 떠벌이며 백성에게 거짓 믿음을 신뢰하게 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이방인이었습니다.

 

시온의 모퉁잇돌(14-22)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서 열매를 바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실 때, 심심풀이로 하시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열매를 맺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어떤 환경에서든 최고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드리려 최선을 다시기 바랍니다.

 

14이러므로 예루살렘에서 이 백성을 다스리는 너희 오만한 자여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15너희가 말하기를 우리는 사망과 언약하였고 스올과 맹약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을 우리의 피난처로 삼았고 허위 아래에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1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17나는 정의를 측량줄로 삼고 공의를 저울추로 삼으니 우박이 거짓의 피난처를 소탕하며 물이 그 숨는 곳에 넘칠 것인즉 18너희가 사망과 더불어 세운 언약이 폐하며 스올과 더불어 맺은 맹약이 서지 못하여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 때에 너희가 그것에게 밟힘을 당할 것이라 19그것이 지나갈 때마다 너희를 잡을 것이니 아침마다 지나가며 주야로 지나가리니 소식을 깨닫는 것이 오직 두려움이라 20침상이 짧아서 능히 몸을 펴지 못하며 이불이 좁아서 능히 몸을 싸지 못함 같으리라 하셨느니라 21대저 여호와께서 브라심 산에서와 같이 일어나시며 기브온 골짜기에서와 같이 진노하사 자기의 일을 행하시리니 그의 일이 비상할 것이며 자기의 사역을 이루시리니 그의 사역이 기이할 것임이라 22그러므로 너희는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 너희 결박이 단단해질까 하노라 대저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신 것을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14-22)

 

술독에 빠진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은 한편으로 동맹정치를 믿고 헛된 자기안전감에 사로잡혀 있고, 다른 한편으로 선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이중적인 형태를 보였습니다.

 

(1) 예언자의 고발(14-15)

 

이사야의 고발이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에서 정치지도자들로 향합니다. 말만 앞세우고 허풍 떠는 자들이 예루살렘의 정치를 책임진 자들이었습니다(14). 종교지도자들은 술독에 빠져 비틀거리는 주정뱅이였고, 정치지도자들은 자기기만에 사로잡힌 허풍쟁이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허황한 자만에 사로잡혀 현실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이들은 동맹정치에 의존해 예루살렘의 안전을 자신했습니다(15). 이사야는 이들이 자랑하는 애굽과의 동맹을 ‘사망과 맺은 언약, 스올과 체결한 협약’이라고 풍자적으로 고발합니다. 위정자들은 유다의 정치적 후견인이 된 애굽이 앗수르의 위협을 막아주리라 자신하였지만, 이는 헛된 기대일 뿐입니다. 애굽과 체결한 조약은 문자 그대로 사망/스올과 맺은 조약입니다. 애굽과 조약을 체결한 유다는 죽어 스올로 내려가야 합니다. 애굽과의 동맹은 사망과 스올에 자신을 맡기는 자기파멸적 결정이기에 사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들은 애굽이 홍수처럼 밀려오는 재앙에서 예루살렘을 안전하게 숨겨주는 피난처라고 주장하지만, 애굽은 거짓 피난처로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2) 여호와의 심판선언(16-19)

 

동맹정치에 의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고발의 말씀 다음에 ‘그러므로’로 연결된 16절은 심판뿐만 아니라 구원의 말씀으로 읽는 것도 가능합니다. 시온의 기초석은 동사 ‘삼다’의시제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과거로 옮기면(삼았노라) 여호와께서 시온에 초석으로 두신 돌은 성전이나 시온이나 다윗 왕조를 가리키고, 현재 또는 미래로 옮기면(‘삼으리니’) 메시아, 하나님 나라, 남은 자, 믿음의 공동체 또는 믿음 등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백성의 구원자는 시온산에 계시는 여호와이시지 정치가들이 떠드는 애굽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의 보루로 주신/주실 것을 믿는 자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걸려 실족하지 않습니다. 현재 문맥에서 이사야 자신이 ‘믿는 이’의 본보기가 됩니다. 이사야의 선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넘치는 재앙이 밀려올지라도’ 다급하게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측량줄과 공의의 저울추를 갖고 사망과 언약을 맺었다고 자만하는 자들을 샅샅이 검사하셔서 멸망에 넘기실 것입니다(17). 측량줄과 추를 사용해서 건물을 짓거나 수선하듯 정치가들의 허풍과 자만심을 낱낱이 검사해 감춰진 거짓과 속임수를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의의 측량줄과 공의의 저울추로 조사해본 결과 예루살렘의 심판은 필연입니다. 거짓의 피난처와 은신처에 몸을 숨긴 자들을 우박과 물로 진멸하실 것입니다.

사망과 맺은 언약과 스올과 체결한 협약은 여호와의 징벌 앞에 쓸모없는 것이 됩니다(18). 여호와께서 ‘흉흉하고 창일한 큰 하수’(8:7) 앗수르를 불러 유다를 징계하실 때, 애굽의 실체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유다와 함께 멸망 당합니다(30:1-7; 31:1-3). 매일(‘아침마다’) 시도 때도 없이(주야로)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19). 사납게 넘실대는 홍수처럼 심판이 닥친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그분께서 결정하신 재앙에서 안전한 곳은 없습니다.

 

(3) 예언자의 심판선언(20-22)

 

‘오만한 자들’이 예루살렘의 안전을 위해 준비해놓았다고 자랑하는 대책은 ‘짧은 침상, 좁은 이불’에 불과합니다(20). 침상이 작아서 누울 수 없고 이불이 좁아서 덮을 수 없듯이, 애굽과의 조약은 예루살렘을 멸망의 홍수에서 보호해주지 못합니다. 예루살렘 위정자들의 자만에는 나름 신학적 근거가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오직 구속사의 전통 안에서만 이해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구원과 축복을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정치적 신학적 편견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자랑스러운 구속사를 역으로 이용하여 심판을 선언합니다. 블레셋의 위협에서 다윗과 예루살렘을 구해주신 바로 그 하나님께서(삼하 5:17-25), 이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의 심판자가 되십니다(21).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일하시고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켜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낯선 존재가 되십니다. 당신 백성의 배반과 불의에 질투하시고 진노하십니다. 바로 이 점에서 그분의 일은 비상하고 그분의 사역은 기이합니다. ‘비상’과 ‘기이’로 번역한 ‘자르’와 ‘노크리’는 원래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다윗의 하나님께서 당신께 의존하기를 거절하는 후손들에게 이방인이 되십니다. 심판을 선언한 이사야는 다시 허풍 떠는 자들에게 회개를 요청합니다(22). 온 땅을 멸하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심판에서 살아남기를 원한다면, 이스라엘은 큰소리치지 말고 겸비하게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계속 허풍을 떤다면 결박이 더욱 무거워질 것입니다. 결박은 15절의 사망과 맺은 언약과 관련됩니다. 이스라엘이 의존하는 정치적 동맹은 죽음의 결박으로 더욱 세게 조여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심판이 이미 결정되기는 했지만, 그 재앙에서 벗어날 길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자기 계획과 결정에 의존하지 않고 겸손히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면, 죽음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사야는 선포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며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내가 만군의 주 여호와께로부터 들었느니라.’ 이스라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으로, 회개하지 않는다면 임박한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농부의 비유(23-29)

어떤 사람은 조금만 이야기해도 알아듣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습니다. 세게 맞아야 정신을 차립니다. 이렇듯 징계의 방법은 달라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은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껍질 없는 악곡을 원하십니다. 쓸모없는 껍질이 벗겨지고 알곡만 남도록 하나님께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사람을 다루십니다.

 

23너희는 귀를 기울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자세히 내 말을 들으라 24파종하려고 가는 자가 어찌 쉬지 않고 갈기만 하겠느냐 자기 땅을 개간하며 고르게만 하겠느냐 25지면을 이미 평평히 하였으면 소회향을 뿌리며 대회향을 뿌리며 소맥을 줄줄이 심으며 대맥을 정한 곳에 심으며 귀리를 그 가에 심지 아니하겠느냐 26이는 그의 하나님이 그에게 적당한 방법을 보이사 가르치셨음이며 27소회향은 도리깨로 떨지 아니하며 대회향에는 수레 바퀴를 굴리지 아니하고 소회향은 작대기로 떨고 대회향은 막대기로 떨며 28곡식은 부수는가, 아니라 늘 떨기만 하지 아니하고 그것에 수레 바퀴를 굴리고 그것을 말굽으로 밟게 할지라도 부수지는 아니하나니 29이도 만군의 여호와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의 경영은 기묘하며 지혜는 광대하니라(23-29)

 

예루살렘이 살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계획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만이 아니라 심판에 있어서도 용의주도하실 것입니다.

 

(1) ‘내 말을 들으라’(23)

 

보내신 분과 보냄을 받은 자 사이에 내적 일치가 존재하기에 예언자는 자신의 말(‘내 목소리’, ‘내 말’)로 선포합니다(23).

 

(2)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24-26)

 

밭을 가는 자가 씨를 뿌리기 위해 온종일 밭만 갑니까? 땅을 파 뒤집고 온종일 써레질만 합니까? 밭을 갈고 땅을 고르게 하는 일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씨를 뿌리기 위한 준비 작업에 속합니다(24). 농부는 씨를 뿌려 결실을 맺으려는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밭을 갈고 땅을 고릅니다. 땅을 파 뒤집어 흙을 부드럽게 하고 밭을 잘 고른 후에 씨를 뿌릴 때도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습니다(25). 소맥(밀)과 대맥(보리)과 귀리는 정성껏 심고, 향신료로 사용되는 식물인 소회향(검정품)과 대회향(회향)은 씨를 흩뿌립니다. 소맥과 대맥에 비교해서 귀리의 알곡은 잘 떨어지지 않기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밭 가장자리에다 심는다. 농부는 곡물의 종류에 따라 적합한 방법을 선택해서 그 곡물에 가장 적합한 자리에 씨를 뿌리거나 심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농사법에 따라 농사를 지을 때만 풍부한 수확이 보장됩니다(26).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농사법에 따라 농사를 짓는다는 의미에서 농부는 말씀의 씨를 뿌리는 예언자를 상징할 수 있습니다.

 

(3) 추수하는 농부의 비유(27-29)

 

다음에는 추수 과정을 활용해 가르침을 줍니다. 곡식을 풍족하게 거둬들여도 타작하는 방법이 잘못되면 큰 손실이 발생합니다. 소회향과 대회향의 알곡을 거둬들일 때는 타작기(도리깨)나 수레바퀴가 아니라 막대기와 작대기를 사용합니다(27). 단단한 알곡을 탈곡할 때와 약한 알곡을 탈곡할 때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알곡에 따라 탈곡하는 방법이 달라져야 합니다. 타작마당에서 밀과 보리와 귀를 타작할 때도 지혜가 필요합니다(28). 알곡을 펼쳐놓은 타작마당 위로 수레바퀴를 너무 오랫동안 굴리거나 수레바퀴를 끄는 말의 발굽에 너무 심하게 짓밟히면 곡식들이 바숴져서 손실이 커집니다. 밀알을 떨 때도 적합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도 무작정 심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형편에 상응하는 방법을 찾아 강도를 조절하며 하십니다. 농부가 알곡을 거두기 위해 타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새로운 출발을 위해 이스라엘을 심판에 넘기십니다. 그분의 경영(의지)과 지혜는 사람의 이해를 훨씬 뛰어넘습니다(29; 55:8-9).


허영심과 탐욕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말씀을 자세히 듣기 바라십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는 데 쓰인 유일한 도구였던 하나님의 말씀은 지혜의 원천입니다. 헛된 욕망을 비워 내고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구합시다. 하나님이 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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