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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25-03)

 


젊은 사자 같이 진노하는 여호와

예레미야 25장 30-38절


 

살면서 제일 안타까운 것은뒤늦게 후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에 이미 경고를 하셨습니다. 순종하면 복이요 거역하면 멸망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허투루듣고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고 후회했을 땐 이미 늦었습니다. 본문은 우리에게 뒤늦은 후회를 막을 수 있는 주의사항을 알려 줍니다.

 

  • 민족들의 심판이라는 주제로는 앞 단락의 연속이지만, 표현과 관심 분야에서는 일부 차이를 보입니다. 진노의 잔의 표상이 더는 등장하지 않고, 목자와 양의 표상이 주로 사용됩니다. 또 심판의 대상보다 심판의 철저함에 초점이 맞추어집니다.

 

온 땅의 재앙(30-33)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 무섭게 진노하시며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악한 사람을 심판하시되, 악한 지도자들에게 더욱 무섭게 책임을 물으십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거부하며 원하는 대로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도 묻어 줄 사람이 없어 시체가 거름덩이처럼 땅 위에 뒹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시체가 매장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운 일 중 하나로 여겼습니다.

 

30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포효하시고 그의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내시며 그의 초장을 향하여 크게 부르시고 세상 모든 주민에 대하여 포도 밟는 자 같이 흥겹게 노래하시리라 31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내어 주셨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2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33그 날에 여호와에게 죽임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을 위하여 애곡하는 자도 없고 시신을 거두어 주는 자도 없고 매장하여 주는 자도 없으리니 그들은 지면에서 분토가 되리로다(30-33)

 

불순종은 이미 그 안에 사망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결국 인간에게 한시적 쾌락과 낙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말로는 장차 도살당할 짐승의 처지와 같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려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1) 모호하시는 여호와(30-31)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재앙이 ‘세상의 모든 주민’에게로 확대되는 것처럼(29), 여기서도 ‘그의 초장’과 ‘세상 모든 주민’이 다 여호와의 심판에 넘겨집니다. 여호와께서 독립인칭대명사 ‘너’를 사용해 민족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선포할 사명이 바로 예레미야에게 맡겨졌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30절 전반절은 38a절과 함께 전체 단락을 포효하는 사자의 음성으로 들려줍니다. 쉽을 끝내고 굴을 나서는 사자가 포효하듯이 여호와께서 당신 처소로부터 민족들을 향해 큰 소리로 고함을 치십니다. ‘높은 데’(참조. 17:12; 31:12; 51:53)와 ‘그의 거룩한 처소’는 그 자체로는 하늘의 성전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성전도 가리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도 심판의 대상에 포함되기에(18,29) 하늘의 성전이 문맥에 더 일치합니다. ‘그의 초장’은 예루살렘/시온(참조, 삼하 15:25)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한편으로는 29절의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 다른 한편으로는 36절의 ‘그들의 초장’에 연결됩니다. 수확한 포도를 술 틀에 넣고 발로 밟아 포도즙을 짜내는 일은 축제와 잔치에서 빠질 수 없는 포도주를 만드는 작업이기에 일차적으로는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하지만, 본문에서처럼 포도를 밟아 포도즙을 짜낼 때 붉은 포도즙이 마치 검붉은 핏자국처럼 온몸에 얼룩지기에 때로는 전쟁과 심판의 표상이 되기도 합니다(참조. 사63:1-6). 여기서는 후자의 의미로 사용된다. 포도를 밟을 때 포도즙이 옷에 튀어 온통 붉게 물들 듯이 여호와께서 그렇게 민족들을 짓밟으십니다.

 

(2) 나라들에 임하는 재앙(32)

 

여호와께서 세상 모든 주민을 거슬러 외치시기에 온 땅이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31a절은 민족들의 심판을 사법적 관점에서 기술합니다. ‘다투시며’는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다’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을 불러 옳고 그름을 따지신(2:9)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불러 소송하십니다. ‘모든 육체의 하나님’(32:27)께서 ‘모든 육체’를 ‘악인’으로 판결하시고 칼에 넘기십니다. 뭇 민족과 모든 육체와 악인은 동격입니다. ‘육체’는 인간의 덧없음과 사멸성을 내포한 표현입니다. 재판관이신 여호와 앞에 민족들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악인’은 하나님 심판의 정당성을 시사합니다. 민족들이 악인으로 판결 받았기에 멸망의 형벌에 넘겨집니다. 32절 서두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는 다시금 온 땅의 심판을 집행하시는 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재앙(29)이 민족에서 민족으로 퍼져 나갑니다. 모든 민족이 들불처럼 번지는 전쟁/칼의 재앙에 사로잡힙니다. ‘큰 바람’은 거센 폭풍으로 파괴적 전쟁을, ‘땅 끝’은 땅의 가장 먼 지역으로, 두려움과 사나움과 낯섦을 함축합니다. 이제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전쟁의 광풍이 일어나 모든 민족을 파괴해버립니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내리실 재앙은 전면적이고 파멸적입니다.

 

(3) 죽음뿐인 세상(33)

 

땅이 끝에서 땅 저 끝까지 여호와께 죽임을 당한 자들이 널려 있는데도, 그들을 위하여 애도하는 사람이 없고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낼 사람도 없어 땅바닥에 뒹굴다 거름이 됩니다. ‘세상 모든 주민’(29,30)이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살아남은 자가 없기에 죽은 자들이 거름처럼 그대로 버려집니다. 33b절은 예루살렘과 유다에 임할 재앙을 선포하는 말씀에도 등장합니다(참조. 8:2; 9:22; 16:4). 하나님 백성과 민족들이 동일한 운명에 떨어집니다. 하나님께 불순종한 유다가 이방 민족과 다르지 않음을 시사합니다(참조.9:25-26).

 

목자들의 멸망(34-38)

구하며 살았던 사람들은 거름덩이처럼 될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살았던 지도자들은 깨진 항아리처럼 될 것입니다. 목장의 풍요로움과 황폐함은 결국 그 목장을 책임진 지도자의 경건에 달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복을 받고 거역하면 저주를 받습니다. 공동체의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들이 바믿음과 경건함으로 공동체를 이끌어 가도록 기도합시다.

 

34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 떼의 인도자들아 잿더미에서 뒹굴라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 35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 떼의 인도자들은 도주할 수 없으리로다 36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 떼의 인도자들이 애곡하는 소리여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함이로다 37평화로운 목장들이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 앞에서 적막하게 되리라 38그가 젊은 사자 같이 그 굴에서 나오셨으니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 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 그들의 땅이 폐허가 되리로다 하시니라(34-38)

 

목자들에게 주는 심판의 말씀입니다. 34절은 목자들을 이인칭 복수 ‘너희’로, 35-38절은 그냥 ‘목자들’ 또는 삼인칭 ‘그들’로(36,38) 칭합니다. 전자는 목자들에게 직접 심판을 선포하고, 후자는 이들의 절망적 형편과 그 배경을 알려줍니다. 여호와는 일관하여 삼인칭으로 등장합니다.

 

(1) 죽음에 넘겨지는 목자들(34-35)

 

예레미야가 화자로 선포하는 말입니다. 34a절은 세 개의 명령을 사용해 목자들의 절망적 처지를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예언자는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칼의 재앙에 넘겨진 세상 모든 나라의 왕들에게 통곡하고 울부짖으며 재에 뒹굴라고 명령합니다. ‘외쳐 애곡하라’(‘통곡하고 부르짖으라’)는 애도 행위의 표현으로, 47:2에서는 블레셋의 멸망, 48:20,31에서는 모압의 멸망, 49:3에서는 암몬의 멸망과 관련해 사용됩니다. ‘뒹굴라’도 죽은 자를 위한 애도 의식에 속하는 행위로 다른 곳에서는 ‘재’와 함께 나옵니다(참조. 렘 6:26; 겔 27:30; 미 1:10). 죽은 자를 위한 애도 의식의 명령은 목자들이 다스리는 나라들의 멸망이 확정됐음을 전제하는데, 34b절은 이를 명시적으로 언급합니다. ‘이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이 떨어짐 같이될 것이라.’ 기한이 다 찼고 멸망의 징벌이 시작되기에 죽음을 애도하는 것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습니다. ‘너희가 도살 당할 날’에서 풍자적 함의를 읽어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원래 ‘양과 같은 짐승을 잡다’를 의미하는 동사 ‘도살하다’가 ‘양 떼의 인도자들’인 ‘목자들’에게 적용됩니다. 도살당하는 양의 운명이 바로 양을 먹이는 목자들의 운명이다. 멸망은 회복이 불가능하게 철저하게 집행됩니다. 귀중한 그릇일지라도 한번 떨어져 깨지면 버려질 수밖에 없는 것처럼 재앙에 넘겨진 목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참조. 19:11; 13:7,10). 다시 통치자의 지위를 회복하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집니다. 여호와의 칼은 피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미래를 기대할 수 없게 철저하게 집행됩니다. 전쟁에서 패했을 때 왕들과 귀족들은 도망해 목숨을 구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그런 행운이 허락되지 않습니다(35). 처음 두 절이 목자들에게 초점을 맞춰 멸망을 선포한다면, 다음 두 절은 시선을 목장으로 돌립니다. 36a절은 34a절의 청각과 관련한 처음 두 동사의 순서를 바꿔 명사로 사용합니다. 앞에서 목자들과 양 떼의 인도자들에게 애곡하고 부르짖으라고 명령한 예언자가 여기서는 이들이 부르짖고 애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전자에서는 ‘너희가 도살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기’ 때문이고, 후자에서는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을 황폐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초장을 황폐하게 하는 심판이 시작됐기에 예언자는 목자들이 부르짖는 소리와 양 떼 인도자들이 애곡 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양 떼가 꼴을 먹고 물을 마시는 초장을 여호와께서 보내신 칼이 황폐하게 하지만, 목자들은 부르짖고 애곡할 뿐 속수무책입니다.

 

(2) 폐허가 되는 목장(36-37)

 

37절은 내용상 36b절의 반복인데, 심판의 철저성을 이중적으로 강화합니다. 먼저 목장을 황폐하게 하는 주체를 ‘여호와의 진노하시는 열기’로 표현합니다. 분노로 열이 나신 여호와께서 목장을 폐허로 만드십니다. 다음은 심판 이전의 모습과 심판 이후의 모습을 대비합니다. ‘평화로운 목장들’이 황무지가 됩니다. 진노의 열기가 모든 것을 불살라버립니다. ‘평화로운 목장들’은 적의 침략을 당한 적이 없는 목장들(나라들)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양 떼가 목장에서 누리는 평화는 일시적인 평화일 뿐입니다. 진노하신 여호와의 개입으로 목장들이 황폐해진다.

 

(3) 여호와의 분노와 진노(38)

 

여호와를 사자에 비유한 38a절은 표상에서 30a절에 연결됩니다. 높은 곳에 있는 당신 처소에서 사자처럼 포효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당신 처소를 떠나십니다. 심판이 시작됐기에 목자들과 목장들이 여호와의 타오르는 진노를 피해 살아남을 길은 없습니다. 후반절은 내용상 37절과 일치합니다. ‘그 호통치시는 분의 분노와그의 극렬한 진노로 말미암아’는 대략 ‘압제자의 열기와 그분 분노의 열기로 말미암아’로 옮길 수 있습니다. ‘압제자의 열기’를 덧붙여 여호와의 진노의 정도를 한층 더 높입니다. 여호와의 끓어오르는 분노는 목자들의 땅이 완전히 폐허가 되기까지 가라앉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유다와 열방을 향해 심판의 칼을 빼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들은 종국에 파멸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심판이 닥쳤을때 후회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이 복이며 불순종함이 멸망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파멸로 후회하는 인생이 아니라, 매 순간 하나님의 말씀과 동행하는 인생을 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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