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훔서(03-01)
구경거리로 전락한 니느웨
나훔 3장 1-13절
승승장구하던 사람이 몰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앗수르도 그랬습니다. 잘 나가던 나라, 가장 강한 나라가 앗수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교만하게 행한 결과, 멸망이 홀연히 앗수르에 임했습니다. 앗수르의 죄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장에서 멸망을 예언한 후에, 3장에서는 이 니느웨가 분명히 망할 것이라는 사실을 여러 방식으로 강화합니다. 재앙 신탁의 형식으로 이미 니느웨에 재앙이 임한 것처럼 전달하기도 하고(1-7), 그들이 멸망시킨 노아몬과 마찬가지의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8-13). 조롱의 어투로 전쟁을 대비하라고 명령하기도 하고(14-17). 장송곡의 형상으로 니느웨의 멸망을 분명히 합니다(18-19).
니느웨에 대한 재앙 신탁(1-7)
스스로 자신만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속이는 길입니다. 그 길은 필경 멸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높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믿고 겸손하게 하나님만 섬기는 현숙한 여인과 같은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앗수르는 처음에는 화려하고 창대해 보였지만, 마지막은 비참하게 몰락하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조롱을 받을 것입니다.
1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 2휙휙 하는 채찍 소리, 윙윙 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3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번개 같은 창, 죽임 당한 자의 떼, 주검의 큰 무더기, 무수한 시체여 사람이 그 시체에 걸려 넘어지니 4이는 마술에 능숙한 미모의 음녀가 많은 음행을 함이라 그가 그의 음행으로 여러 나라를 미혹하고 그의 마술로 여러 족속을 미혹하느니라 5보라 내가 네게 말하노니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네 치마를 걷어 올려 네 얼굴에 이르게 하고 네 벌거벗은 것을 나라들에게 보이며 네 부끄러운 곳을 뭇 민족에게 보일 것이요 6내가 또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을 네 위에 던져 능욕하여 너를 구경 거리가 되게 하리니 7그 때에 너를 보는 자가 다 네게서 도망하며 이르기를 니느웨가 황폐하였도다 누가 그것을 위하여 애곡하며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할 자를 구하리요 하리라(1-7)
일반적인 재앙 신탁에서 전형적으로 드러나는 특징을 여기서도 보여주는데, 보통 재앙 신탁은 죄에 대한 고발과 그 죄로 말미암은 심판을 선포하는 것으로 구성됩니다. 1-4절은 니느웨의 죄악을 고발하고, 5-7절은 이와 같은 니느웨의 죄악에 근거하여 니느웨가 당할 징벌을 선언합니다.
(1) 니느웨의 죄악 고발(1-4)
1절의 “화 있을진저”는 이 단락이 재앙 신탁임을 알려줍니다. “피의 성이여”라는 표현은 단적으로 니느웨의 정체성을 규정짓습니다. 피를 흘린 성읍(겔 24:9), 피로 건설한 성읍(합 2:12)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그 안에는 거짓이 가득하고 포악이 가득하며”는 직역하면 ‘모든 성읍은 충만한 거짓과 전리품이다’가 되는데, 성읍 자체가 거짓이며 전리품이라는 의미입니다. 거짓 자체라는 의미는 랍사게의 사건에서 잘 드러납니다. 앗수르에게 항복하면 풍요로운 땅으로 옮겨주겠다고 약속하지만, 거짓에 불과합니다(왕하 18:31-32), 정복하는 나라에 온갖 거짓으로 약속하지만 감언이설일 뿐입니다. 또한 성읍 자체가 전리품일 정도로 전쟁을 일삼았습니다. “탈취가 떠나지 아니하는도다”라는 표현 역시 전쟁으로 생긴 탈취물, 전리품이 끊이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2-3절은 1절에서의 잔혹함으로 가득한 성읍의 모습을 다시 묘사하여, 앗수르가 이웃 나라들을 정복하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2-3절의 묘사는 역설적이게도 2:3-4에서 ‘파괴하는 자’에게 공격당하는 상황과 비슷합니다. 앗수르가 공격하며 잔혹한 행위를 일삼은 모습을 떠올리게 하면서, 그들이 행한 그대로 당할 것이라는 것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4절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하나는 ‘음행’과 ‘마술’에 대한 묘사는 실제로 니느웨에서 행해졌던 우상숭배 행위를 가리킨다는 것입니다. ‘음녀’는 성전 창녀를 가리킬 것입니다.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성전에 거주하는 창녀와의 성행위로 신들을 흥분시켜 비가 오게 하거나 풍요를 기원하는 풍습을 시사합니다.
자신들의 풍습을 지킬 뿐만 아니라 ‘미혹’했다는 것은 정복한 나라들에게도 그 풍습을 전파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해석은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것인데, 창녀가 결국에는 사람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마술이 사람을 현혹하는 것처럼, 니느웨가 이웃 나라들에게 한 행위가 자신들을 파멸에 이르게 하고 현혹하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두 가지를 모두 의도했을 수도 있습니다.
(2) 니느웨가 당할 징벌(5-7)
5-7절은 여호와의 대적자가 당할 징벌을 묘사합니다. 5절은 앗수르가 정복한 나라에 행한 그대로 자신들이 수치를 당할 것을 예언합니다. 6절의 가증하고 더러운 것들은 우상을 가리키며, 니느웨가 섬긴 신들을 의미합니다. 랍사게 사건에서도 드러나듯이(왕하 18:33-35; 19:4), 앗수르가 이웃 나라들을 정복한 것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더 강력하기 때문이라는 사상이 고대 근동에 만연했습니다. 따라서 7절의 표현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이 여호와 하나님보다 우월하다고 하는 자부심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7절은 애곡하는 2:10-12을 떠올리게 하는데, 니느웨의 멸망을 장례에 비유한 것이며, 곡할 자조차 없을 정도로 비참한 멸망을 의미합니다.
경고: 노아몬과 같은 운명(8-13)
사람들은 철저한 대비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적인 노력만으로 소용없습니다. 자기를 지키는 가장 좋은 길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들은 이웃을 약탈하며 자기의 안전을 도모합니다. 결국 그들은 멸망의 때에야 자기들이 행한 일들이 무가치했음을 깨달을 것입니다.
8네가 어찌 노아몬보다 낫겠느냐 그는 강들 사이에 있으므로 물이 둘렸으니 바다가 성루가 되었고 바다가 방어벽이 되었으며 9구스와 애굽은 그의 힘이 강하여 끝이 없었고 붓과 루빔이 그를 돕는 자가 되었으나 10그가 포로가 되어 사로잡혀 갔고 그의 어린 아이들은 길 모퉁이 모퉁이에 메어침을 당하여 부서졌으며 그의 존귀한 자들은 제비 뽑혀 나뉘었고 그의 모든 권세자들은 사슬에 결박되었나니 11너도 술에 취하여 숨으리라 너도 원수들 때문에 피난처를 찾으리라 12네 모든 산성은 무화과나무의 처음 익은 열매가 흔들기만 하면 먹는 자의 입에 떨어짐과 같으리라 13네 가운데 장정들은 여인 같고 네 땅의 성문들은 네 원수 앞에 넓게 열리고 빗장들은 불에 타도다(8-13)
노아몬과 비교하며 시작합니다. 이후로 노아몬에 대한 묘사는 니느웨에 대한 묘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8b-9절에서는 노아몬이 얼마나 강력한 성읍이었는지를 묘사합니다. 10절에서는 그렇게 강력한 성읍도 멸망당하고 패배한 결과를 처참하게 맛볼 것을 묘사합니다. 노아몬은 니느웨만큼 강했고 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었음에도 멸망당했듯이, 니느웨 역시 멸망당할 것이라는 역사적 교훈을 상기시킵니다.
(1) 노아몬의 운명(8-10)
8절의 노아몬(테베)에 대한 묘사에서 ‘바다’는 테베가 지리적으로 바다에서 65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므로 사실적이라고 보기 힘들지만, 난공불락의 성읍임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8절에서 위치상 정복하기 힘든 점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9절에서는 구스와 붓과 루빔이라는 이집트 주변 나라들과의 연합군이 지키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도 쉽지 않다고 강조합니다.
8-9절에서처럼 노아몬이 점령하기 힘들었음에도, 10절에서는 점령당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성읍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묘사합니다. 존귀한 자들은 고위직 관료들을 가리키며, 모든 권세자들은 그보다 높은 지위의 귀족들이나 관료들을 가리킵니다.
(2) 노아몬과 같은 멸망(11-13)
8-10절에서 노아몬의 운명을 묘사한 후에, 11-13절의 소단락은 니느웨도 같은 운명을 맞이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1절에서는 술 취한 자에 비유하여 무기력하게 정복당할 것을 예언합니다(1:10), 12절에서는 마치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흔들어 따듯이 산성이 쉽게 정복당할 것을 말합니다. 13절의 “장정들은 여인 같고”는 군대의 나약함을 가리킵니다(사 19:16).
12-13절에서는 니느웨의 정복을 산성에서 시작하여 산성을 지키는 군대의 무력함과 빗장이 쉽게 열리는 것으로 점진적으로 묘사하여, 철저하게 멸망할 것임을 강조합니다.
노아몬에 대한 언급 자체가 앗수르에게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남유다 역시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통해 자신들도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웃 민족들에 대한 심판과 징벌의 예언은 동일한 죄악에 빠진 이스라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유다는 잘못된 선민의식에 사로잡혀 자신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북이스라엘도 앗수르를 통해 멸망시켰습니다. 남유다 역시 하나님의 언약에 신실하지 못하고 언약을 파기한다면 동일한 운명을 맞이할 것입니다.
니느웨에 대한 조롱(14-17)
권세만 믿고 아랫사람들과 이웃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어리석은 자들은 결국 멸망할 운명에 처합니다. 의인이 고통을 당하면 사람들이 떠나고, 오히려 그가 고통 당함을 즐거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14너는 물을 길어 에워싸일 것을 대비하며 너의 산성들을 견고하게 하며 진흙에 들어가서 흙을 밟아 벽돌 가마를 수리하라 15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느치가 먹는 것 같이 하리라 네가 느치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네가 메뚜기 같이 스스로 많게 할지어다 16네가 네 상인을 하늘의 별보다 많게 하였으나 느치가 날개를 펴서 날아감과 같고 17네 방백은 메뚜기 같고 너의 장수들은 큰 메뚜기 떼가 추운 날에는 울타리에 깃들였다가 해가 뜨면 날아감과 같으니 그 있는 곳을 알 수 없도다(14-17)
마지막 단락들을 조롱과 장송곡으로 마무리하면서 니느웨의 멸망을 기정 사실화하며 강조합니다. 특히 이 단락에서는 전쟁을 대비하라는 조롱 조의 명령과 멸망에 대한 선포를 번갈아 가며 언급함으로써, 전쟁을 대비하는 것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4절은 장기간 포위됐을 경우의 식수를 대비하라는 것이며, 산성을 수리하여 견고하게 하라는 명령입니다. “진흙에 들어가”는 벽돌을 만드는 과정에서 진흙에 들어가 작업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15b절은 군사를 정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런 대비들이 소용없게 될 것입니다.
15절과 16-17절에서는 전쟁에 패배할 것을 예언합니다. 15절의 ‘불’(사 43:2)과 ‘칼’(신 28:22)은 전쟁으로 인한 멸망을 묘사하는 데 자주 사용됩니다. 16절에서는 부를 많이 쌓았으나 느치가 날아감 같이 흔적도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17절에서도 역시 군대 장교들이 많을지라도 흔적조차 없어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멸망할 것을 강조합니다.
니느웨에 대한 장송곡(18-19)
어떤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이 전혀 애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손뼉 치면서 반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자업자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앗수르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앗수르가 멸망할 때, 사람들은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앗수르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서는 안 됩니다.
18앗수르 왕이여 네 목자가 자고 네 귀족은 누워 쉬며 네 백성은 산들에 흩어지나 그들을 모을 사람이 없도다 19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중하도다 네 소식을 듣는 자가 다 너를 보고 손뼉을 치나니 이는 그들이 항상 네게 행패를 당하였음이 아니더냐 하시니라(18-19)
이미 7절에서도 장례의 비유로 니느웨의 멸망을 예언하였듯이, 여기서도 나훔서의 마지막을 장송곡으로 마무리하면서 니느웨의 멸망을 강화합니다. 18절에서 목자와 귀족과 백성은 니느웨의 각계각층을 가리키며, 온 성읍이 흩어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19절은 니느웨의 패망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며, 그 패망에 대해 이웃 나라들이 조롱하는 것을 묘사합니다. 니느웨는 자신들이 이웃 나라에 행한 그대로 당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줍니다.
나훔은 악인이 멸망함으로써 의인이 구원을 얻고 기쁨을 누리리라고 선포합니다. 우리가 악한 세상 가운데서 의의 길 걷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최후의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악인이 잠시 번성하는 것을 보고 그 길에 편승한다면, 결국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고 우리가 망하는 것을 이웃들이 즐거워하는 일을 겪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의인의 길을 꿋꿋이 걸으며 악인의 번성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면 주님의 백성으로 견고히 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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