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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04-01)


룻을 향한 보아스의 배려

룻기 3장 14절–4장 6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지만 성도가 되었다고 구원의 완성에 다다른 것은 아닙니다. 성도로서 합당한 삶의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로 합당하게 살려면 성도의 사명을 알아야 합니다.

 

룻의 헤세드는 나오미의 마음을 풍성하게 하였고, 이제 나오미는 룻을 위해 움직이기로 결심합니다. 나오미는 룻에게 보아스와 결혼하면 좋겠다고 제안하며 방법을 알려주었고 룻은 나오미의 계획을 그대로 실행합니다. 룻은 보아스에게 기업 무를 자이니 자신과 결혼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를 위해 자신과 결혼하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는 룻의 넘치는 헤세드에 감동하며 자신도 룻과 나오미를 위해 헤세드 베풀기를 계속하겠다고 약속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룻(14-18)

사회가 아무리 이기적이라 해도 그리스도인다움 변하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누고 베푸는 인생을 살기 원하십니다. 초대 교회 부흥의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이 자기 소유를 팔아 나누고 베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초대 교회에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교회가 성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14룻이 새벽까지 그의 발치에 누웠다가 사람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울 때에 일어났으니 보아스가 말하기를 여인이 타작 마당에 들어온 것을 사람이 알지 못하여야 할 것이라 하였음이라 15보아스가 이르되 네 겉옷을 가져다가 그것을 펴서 잡으라 하매 그것을 펴서 잡으니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 주고 성읍으로 들어가니라 16룻이 시어머니에게 가니 그가 이르되 내 딸아 어떻게 되었느냐 하니 룻이 그 사람이 자기에게 행한 것을 다 알리고 17이르되 그가 내게 이 보리를 여섯 번 되어 주며 이르기를 빈 손으로 네 시어머니에게 가지 말라 하더이다 하니라 18이에 시어머니가 이르되 내 딸아 이 사건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 하니라(14-18)

배려는 그리스도인 다음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보아스를 찾아갔던 룻이 약속받고 나오미에게 돌아왔습니다. 보아스는 룻이 곤란한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배려애서 새벽에 룻을 돌려보냈습니다.

(1) 조용히 룻을 보내는 보아스(14-15)

룻은 보아스의 발치에 누웠다가 새벽, 즉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기 어려운 미명에 일어났고, 보아스는 사람들이 그가 타작마당에 들어온 것을 모르게 하라고 당부합니다(14). 룻의 명예를 지켜주려는 조처입니다.

그리고 보아스가 겉옷에 보리를 여섯 번 되어 룻에게 지워주고, 성읍으로 들어갑니다(15). 보리 양이 어느 정도인지 알기 어렵지만 젊은 여자가 어깨에 짊어지고 갈 정도면 적지 않은 양으로 보입니다. 보아스는 끝까지 룻을 자상하게 보살펴줍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자신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성읍으로 들어갔습니다.

(2) 집으로 돌아온 룻(16)

나오미는 룻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현재 어떤 상황인지 묻습니다(16). 우리말 해석은 “어떻게 되었느냐?”이지만, 원문은 ‘너는 누구냐?’입니다. 이것은 나오미가 룻임을 몰라서 묻는 질문이 아닙니다. 바로 뒤에 ‘내 딸아’라는 호격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룻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즉, 계획이 성공하여 룻이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냐고 물은 것입니다. 밤새도록 긴장하며 룻을 기다렸을 나오미의 초조함이 잘 드러나는 질문들입니다.

이에 대해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한 일을 나오미에게 다 알려주는데 청중이 알고 있는 이야기뿐만 아니라 알지 못했던 부분까지 말해줍니다. 룻은 보아스가 자신에게 한 일을 다 말하고, 시어머니에게 빈손으로 가지 말라며 보리를 준 사실도 전합니다. 보아스가 보리를 준 이유는 나오미에게 자신이 룻과 결혼할 의사가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징표인 것입니다. 여기서 ‘빈손’(레캄)은 직역하면 ‘텅 빈’이란 뜻으로 1:21에서 나오미가 자신이 ‘비어서’ 돌아왔다는 것을 고백할 때 사용한 단어입니다. 룻이 짊어지고 온 보리 자루는 보아스가 룻을 통해 나오미의 텅 빈 형편을 채워주고 앞으로도 더 크게 채워줄 것이라 고 징표고, 또 나오미의 의도대로 룻을 아내로 맞이할 마음이 있음을 전달하는 매개입니다. 모든 사건의 전말과 보아스의 말과 그가 보낸 보리를 본 나오미는 보이스의 생각을 분명히 일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룻에게 일이 어떻게 될지 알기까지 앉아 있으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보아스가 일이 성취되기 전까지 쉬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앉다’와 ‘쉬지 않다’가 대조를 이루는데 이제 룻이 할 일은 다 했으며 가만히 결과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습니다. 이후의 일은 모두 보아스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오늘 이 일을 성취하기 전에는 쉬지 아니하리라”는 여기서 보아스에 대한 나오미의 절대적 신뢰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나오미의 모습은 궁극적으로는 보아스 뒤에 계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인생을 쓰게 만드셨다고 고백했던 나오미는 보아스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느끼며 그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고 그의 손길을 신뢰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나오미가 계획하고 이 실행에 옮긴 룻의 결혼 작전은 이제 공이 보이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결과만을 기다리는 상황으로 3장이 마무리됩니다.

 

성문 장로 회의를 소집하는 보아스(4:1-2)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순결한 삶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이웃들에게 오해를 사는 행동도 자제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 보시기에 너무나 악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각심을 가지고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거룩함과 순결함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더 간절히 찾고 구해야 합니다.

1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2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1-2)

룻과 헤어진 보아스가 바로 성문으로 갑니다. 그는 룻과의 약속을 이행하는 데 지체하지 않습니다. 성문은 중요한 재판과 결정이 이루어지는 공적인 장소로 남성의 영역입니다. 보아스는 나오미의 대리인으로서 회의를 소집하기 위해 그곳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집 그곳을 지나는 기업 무를 자를 불러 앉힙니다. 여기서도 우연의 요소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기입하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한편, 보아스가 기업 무를 자의 이름을 올랐을 리 없음에도 화자는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아무개여“라고 부릅니다. 기업 무를 자의 익명성은 보아스와 대조하기 위한 문학적 장치입니다. 기업 무를 자를 부른 후에 보아스가 성읍의 열 장로를 초청합니다. 이렇게 보아스의 주도하에 법정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보아스가 유력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공식적인 법정을 여는 것이 수월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장로들의 역할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보아스가 연 법정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기업 무를 자에게 제안하는 보아스(4:3-6)

목적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내 생각과 뜻만을 주장하면서 공동체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내가 뜻하는 대로 밀어붙이기보다 최선을 다하되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의지를 지나치게 앞세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되,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자세를 배워야 합니다.

3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4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5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6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3-6)

보아스는 모인 장로들 앞에서 기업 무를 자에게 부른 이유를 설명합니다. 먼저 보아스는 나오미를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여자로 소개합니다. 나오미를 이렇게 간략하게 소개하는 것은 모든 베들레헴 사람들이 나오미가 모압 지방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고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을 전제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나오미가 남편의 땅을 팔려고 내놓았다고 말합니다. 보아스가 ‘팔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나오미가 남편 소유의 땅에 대한 모종의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히브리어 ‘마카르’는 완전히 파는 상행위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땅의 경우 일정 기간 땅의 사용권만 이전되는 상호 협정을 의미합니다. 신명기 법에서 땅의 경계표를 옮기지 말라고 명하기 때문에(신 19:14; 27:17) 이스라엘에서 땅은 매매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오미의 경우는 기업 무를 자가 사용권을 되찾아오더라도 땅의 소유권이 나오미에게 가지 않고 기업 무를 자에게 가게 됩니다. 당시 여성은 남편의 땅을 상속받을 수 없었고 나오미에게는 상속받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비록 나오미가 소유권을 가질 수는 없지만 엘리멜렉의 땅에 대한 권리를 어느 정도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나오미가 땅을 판다는 것은 땅에 대한 소유권과 그녀가 가지고 있는 땅에 대한 권한을 넘긴다는 의미입니다.

의제를 알린 보아스는 증인들과 장로들 앞에서 아무개에게 기업 무를 자의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 후, 그에게 그 권리를 행사할 의사가 있는지, 그리고 그가 거절하면 다음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기업 무를 자가 거절하면 자신이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가까운 친척은 자신이 무르겠다고 답합니다.

이런 대답에 보아스는 한 가지 조건을 첨가합니다. 즉, 나오미에게 땅을 사는 것은 곧 죽은 자의 아내 룻에게서 사는 것이고, 그러면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룻에 대한 호칭이 달라집니다. 이전까지 룻은 모압 여인 혹은 나오미의 며느리로 불렸지만 여기서는 죽은 자의 아내로 불립니다. 이것은 나오미가 가진 땅에 대한 권리를 나오미의 며느리인 룻이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것과 룻은 아직 젊기에 시형제 결혼을 통해 남편의 이름을 세울 수 있는 능력과 권리와 의무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땅을 사는 기업 무를 자는 룻과 결혼해서 아들을 낳아 형제 가문의 이름을 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기업 무를 자의 역할을 넘어간 것이며 그에게는 큰 손해가 나는 일입니다. 기업 무를 자는 처음 보아스의 말을 들었을 때 나오미와 룻에게 자손이 없으니 땅을 되사오면 그 땅은 자신의 소유가 될 것으로 생각하여 수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땅을 되찾아 나오미와 룻에게 주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손해가 되기 때문에 무르지 못하겠다고 거절합니다. 여기서 자신이 무르지 못하겠다는 것을 두 번이나 말하여 강조하는 것은 자신이 손해보는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진심으로 거절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아무개는 기업 무를 자의 권리를 보아스에게 넘깁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사명은 은혜를 베푸는 겁니다. 은혜는 배풀수록 더욱 커집니다. 자기만 아는 인색함, 자기만 높아지려는 교만함이 가득한 이 시대에 우리는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은혜를 더 많이 베풀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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