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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02-01)

 


우연히 보아스를 만난 룻

룻기 2장 1-13절


인생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섣부른 희망이나 손 빈 위로가 아닙니다. 작은 몸짓이라도 그들과 함께 슬픔의 연대를 함께할 때 서로의 체온을 나눠 가질 수 있습니다. 혼자만의 겨울을 우리 모두의 봄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시련을 헤아린 룻처럼, 룻의 시련 마음을 헤아린 보아스처럼 누군가의 시린 마음을 보듬어야겠습니다.

 

모압 땅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베들레헴에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자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길을 떠납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나오미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나오미는 구 며느리와 함께 출발하였지만 중간에 그들에게 고향으로 새로운 남편과 결혼하라고 설득합니다. 이것이 그가 며느리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의였습니다. 이에 오르바는 돌아가고 룻은 나오미 곁에 남아 있겠다고 매달립니다.

 

보아스에 대한 소개(1)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자기 백성의 선대를 통해 이 세상에 은총을 나타내십니다. 성도들은 은혜 아래 있음을 보여주는 사랑의 열매가 삶에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도움이 필요하기에 곁에 있어 주어야 할 삶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헤세드)을 나누어 주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1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1)

룻기 2장을 시작하며 새로운 인물이 소개됩니다.

1절은 ‘나오미에게는’(부레노오미)으로 시작되는데 ‘나는 텅 비었다’고 말한 것(1:21)에 대한 화자의 반응으로, 나오미에게는 남편의 친척인 보아스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유력자’(이쉬 김보르 하일)인데, 유력자는 돈 많은 재력가만 아니라 재판을 주재하는 권력을 지닌 사람을 가리킵니다. 부와 권력의 두 요소는 ‘고엘’, 즉 ‘기업을 물러줄 자’가 가져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화자는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먼저 보아스를 고엘로서 행동할 충분한 외적 자격을 갖춘 인물로 소개합니다.

한편 보아스의 아버지 이름이나 가문이 소개되지 않는데, 이는 화자가 나오미와 룻을 중심인물로 삼고, 보아스는 고엘로서 그들을 돕는 인물로 한정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양식을 구하러 나간 룻(2-3)

지금까지 우리 인생의 여정에도 우연을 가장한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가득합니다. 그 수 많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모든 우연을 장중에 붙드시고 예측할 수 없는 만남과 일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를 이루어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있습니다. 그 손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2모압 여인 룻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내가 밭으로 가서 내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서 이삭을 줍겠나이다 하니 나오미가 그에게 이르되 내 딸아 갈지어다 하매 3룻이 가서 베는 자를 따라 밭에서 이삭을 줍는데 우연히 엘리멜렉의 친족 보아스에게 속한 밭에 이르렀더라(2-3)

2절에서 ‘룻이 모압 여인’으로 언급됩니다. 이로써 룻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며, 이방인 신분을 가진 룻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룻은 나오미에게 이삭을 주우러 밭에 나가는 것을 허락해달라고 조심스럽게 요청합니다. 그는 비록 이방인이지만 지금 자신과 나오미의 삶에 대한 주도권을 가지고 행동합니다. 룻이 모압에서 어떤 신분과 어떤 경제적 여건 속에 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지금처럼 남의 땅에서 이삭을 주워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극빈층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모압 땅에서는 모압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수 있었고, 그 신분으로 일거리를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이방인 룻의 처지는 달랐고, 남의 밭을 전전하며 이삭을 꼽는 신세로 전락했습니다. 고향을 떠난 룻의 비참한 현실입니다. 이런 힘겨운 상황을 예측했지만 룻은 기꺼이 나오미를 따라서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룻은 ‘누구에게 은혜를 입으면 그를 따라가서 이삭을 줍겠다’고 말합니다. 신명기 법에 가난한 자를 위해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라고 명시되어 있지만, 처벌 조항이 없었기 때문에 밭 주인의 호의나 허락 없이는 그 일이 어려웠던 것으로 보입니다.

3절은 이 일을 다닌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요약한 것입니다. 그는 이리저리 다니며 이삭을 주웠고, 그러던 어느 날 보아스의 밭까지 오게 됩니다. 여기에 우연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 ‘우연히’를 넣은 번역도 좋은 번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우연을 통해 유력자 보아스와 룻이 만날 기회가 생겼습니다.

 

룻을 발견한 보아스(4-7)

자기연민이나 낙심에 빠지지 않고,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엄청난 믿음, 특별한 기적이 일어나야 우리가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과 지금 하는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의 길을 예비하고 섭리하십니다. 일상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의 역사를 펼쳐 가시길 바랍니다.

4마침 보아스가 베들레헴에서부터 와서 베는 자들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 그들이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5보아스가 베는 자들을 거느린 사환에게 이르되 이는 누구의 소녀냐 하니 6베는 자를 거느린 사환이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나오미와 함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모압 소녀인데 7그의 말이 나로 베는 자를 따라 단 사이에서 이삭을 줍게 하소서 하였고 아침부터 와서는 잠시 집에서 쉰 외에 지금까지 계속하는 중이니이다(4-7)

3절에 이어 4절에서 또 다른 우연이 일어납니다. 룻이 보아스의 밭에 간 날 마침 보아스가 온 것입니다. 본문에서 ‘보라 보아스가 왔다’고 말한 것은 그 시간 보아스가 나타난 것에 대한 우연성과 드디어 중요 인물인 보아스의 등장, 두 가지를 강조한 표현입니다. 우연히 룻이 보이스의 밭에 간 날, 때마침 보아스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우연은 종종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암시합니다. 우리에게는 우연이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있습니다.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 우연은 없습니다.

일꾼들과 인사를 마친 보아스는 바로 룻에게 관심을 두고 어느 집 소녀인지 묻습니다. 일꾼은 나오미와 함지온 모압 소녀라고 소개합니다. 나오미의 며느리라고 소개하지 않고 모압 소녀라고 말한 것은 당시 베들레헴 사람들이 이방인 룻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사환은 룻이 아침부터 지금까지 서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우리말은 계속 일하고 있었다는 뉘앙스로 번역했지만, 동사 ‘아마드’는 ‘서 있다’라는 뜻으로 주인에게 이삭을 주울 수 있는 허락을 받기 위해 끈질기게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합니다. 이런 룻의 모습은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의 수군거림이나 불쌍하게 여기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언제 올지 모르는 밭 주인을 꿋꿋하게 기다리는 룻의 끈기와 당찬 성격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루하루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궁핍한데도 다른 사람의 은혜를 얻지 못하고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이방인의 불쌍한 처지도 보여줍니다. 이렇게 룻은 이방인으로서 자신을 받아 들여주지 않는 공동체를 향해 끈질기게 버티고서 있었습니다.

 

롯과 보아스의 만남(8-13)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습니다. 인생의 겨울을 맞아 누군가의 밭에서 서성이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밭에서도 하나님의 선대의 손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한 형편에서 남아 있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으러 나가시길 바랍니다.

8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내 딸아 들으라 이삭을 주우러 다른 밭으로 가지 말며 여기서 떠나지 말고 나의 소녀들과 함께 있으라 9그들이 베는 밭을 보고 그들을 따르라 내가 그 소년들에게 명령하여 너를 건드리지 말라 하였느니라 목이 마르거든 그릇에 가서 소년들이 길어 온 것을 마실지니라 하는지라 10룻이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며 그에게 이르되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보시나이까 하니 11보아스가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네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네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12여호와께서 네가 행한 일에 보답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 아래에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13룻이 이르되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나는 당신의 하녀 중의 하나와도 같지 못하오나 당신이 이 하녀를 위로하시고 마음을 기쁘게 하는 말씀을 하셨나이다 하니라(8-13)

롯에 대한 설명을 들은 보아스는 룻에게 ‘내 딸아’라고 부르며 직접 말을 건넵니다. 룻을 이방인으로 여기지 않고 친척 아이로, 돌봐야 할 가족으로 자신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다른 밭으로 가기 위해 여기를 떠나지 말고 자신의 여자 일꾼들과 꼭 붙어 있으라고 명령합니다. ‘여기를 떠나지 말라’는 강한 금지 명령입니다. 또 ‘함께 있다’로 번역된 단어는 룻이 시어머니를 ‘붙다’(다바크)라는 단어와 동일하며 ‘꼭 붙어 있다’라는 의미입니다. 이어서 자신의 일꾼들에게 룻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고 명령하였음을 알려주며 룻을 안심시킵니다. 이것을 보면 밭의 일꾼들이 이삭 줍는 사람들을 거칠게 밀어내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성희롱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 줍는 것이 법에는 기록되어 있었지만, 이삭 줍는 사람을 그다지 호의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일꾼들만 먹을 수 있는 물도 먹을 수 있게 허락합니다. 보아스는 룻을 자신의 보호 아래 있는 식구처럼 챙깁니다.

이런 보아스의 모습에 룻은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이런 은혜를 베푸는지 질문하며 당황스러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이런 룻의 질문 배경에는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알게 모르게 배제당하고 차별당한 경험이 있습니다. 룻은 보아스가 베푼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왜 이렇게 과한 은혜를 베푸는지 의아한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룻의 경계심은 그가 아직 보아스가 자신의 친척이라는 것을 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룻이 적극적인 성격이 드러납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대신 질문을 통해 자신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고 합니다. 룻의 질문에 보아스는 룻이 시어머니에게 베푼 행동과 고국과 부모를 떠나 이스라엘에 온 것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고 답합니다. 룻이 나오미를 위해 베푼 헤세드가 보아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이제는 그가 룻에게 헤세드를 베풉니다.

보아스는 하나님께서 롯에게 상 주시기를 원한다고 기원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날개’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편 기자들은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를 날개 비유로 묘사합니다(시 17:8; 36:7; 57:1; 61:4; 63:7; 91:4). 보아스가 이런 표현을 쓴 것은 룻을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 백성으로 여긴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아스는 룻이 자신의 고국과 부모를 떠나 이스라엘로 온 행동을 하나님 백성이 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 은혜를 기원할 뿐만 아니라 자신도 넘치게 은혜를 베풉니다. 이런 보아스의 말에 룻은 감격하고 자신을 위로해주고 기쁘게 하셨다며 감사합니다. 룻의 말에는 그동안 받았던 차별과 멸시에 대한 설움, 하루하루 양식을 구하기 위해 분투했던 생존의 고단함 등이 녹아 있습니다. 이렇게 힘든 삶을 살아가던 룻에게 보아스의 말은 진정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품을 떠나 징계를 받았을지라도 회개하고 들이키면 회복의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오미의 가정을 회복시켜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이 회복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안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회복의 섭리에 대해 순종과 성실로 화답하는 성도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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