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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3-01)


구원하시기 위해 전사로 오신 하나님

이사야 63장 1-14절


 

시온을 향한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63-66장은 심판으로 시작해서 심판으로 끝났습니다. 아는 새로운 비전은 악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심판을 통해 새로운 창조와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며 동시에 구원자가 되십니다.

 

  • 예루살렘의 구원 약속(62장) 다음에 에돔의 심판선언(63:1-6)이 나옵니다. 4절이 잘 보여주듯이 에돔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회복이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됩니다. 35장에서처럼 에돔은 사해 동남쪽에 위치한 특징 나라이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민족들의 대표를 등장합니다. 에돔은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지만, 민족들의 경우는 에돔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여호와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에돔의 심판(1-6)

무언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특히 고난 중에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때에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바란다면 그 하나님의 때를 묵묵히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1에돔에서 오는 이는 누구며 붉은 옷을 입고 보스라에서 오는 이 누구냐 그의 화려한 의복, 큰 능력으로 걷는 이가 누구냐 그는 나이니 공의를 말하는 자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니라 2어찌하여 네 의복이 붉으며 네 옷이 포도즙틀을 밟는 자 같으냐 3만민 가운데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틀을 밟았는데 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무리를 밟았고 분함으로 말미암아 짓밟았으므로 그들의 선혈이 내 옷에 튀어 내 의복을 다 더럽혔음이니 4이는 내 원수 갚는 날이 내 마음에 있고 내가 구속할 해가 왔으나 5내가 본즉 도와 주는 자도 없고 붙들어 주는 자도 없으므로 이상하게 여겨 내 팔이 나를 구원하며 내 분이 나를 붙들었음이라 6내가 노함으로 말미암아 만민을 밟았으며 내가 분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취하게 하고 그들의 선혈이 땅에 쏟아지게 하였느니라(1-6)

 

하나님의 길을 누가 막으며 대적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대적들에게 복수하실 때 온 땅은 피로 물들 것입니다. 원수들은 술에 취한 듯 휘청거리며 혼돈에 빠질 것입니다. 택하신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심은 결코 끝나지 않습니다.

 

(1) 예언자의 질문(1a)

 

예언자가 망루에서 밖을 감시하는 파수꾼이 되어 붉은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이에게 질문하고, 여호와께서는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전장에서 돌아오는 용사가 되셔서 답변하십니다.

 

(2) 여호와의 답변(1b)

 

본문은 심판의 철저한 집행에 초점을 맞추고 에돔이 심판을 받는 이유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던 파수꾼 예언자는 붉게 물든 옷을 입고 에돔에서 오는 한 사람을 보고 그의 신분에 관해 묻습니다(1). 전쟁에서 돌아오는 장수처럼 그의 화려한 의복은 피로 물들어 있습니다. 오고 있는 방향은 에돔을 심판하고 돌아오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이 질문에 이중적으로 답변합니다. ‘나이니’는 누구와도 비교를 거절하는 절대 권력자의 자기과시입니다(출 3:14). “공의를 말하는 이요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이”는 여호와께서 자신을 우상들과 구별하는 자기선언입니다(참조. 45:19, 23-24). ‘진리’로 옮길 수도 있는 “공의”는 ‘미래의 예견’을 가리킵니다. 그분은 우상들과 달리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미래를 예견하시고 이를 이루시는 큰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하는 능력”은 에돔을 심판하는 목적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있음을 시사해줍니다. 에돔은 이스라엘과 형제지간이지만(창 25:30), 유다가 바벨론에 멸망 당한 후에는 철천지원수가 됐습니다. 에돔의 수도 보스라는 사해 남단에서 북동쪽에, 페트라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해발 1,022m의 고지대에 위치했습니다.

 

(3) 예언자의 질문(2)

 

파수꾼-예언자의 두 번째 질문은 화려한 의복의 얼룩진 색에 대한 것입니다(2). 어찌하여 의복이 붉으며, 옷이 포도즙 틀을 밟은 사람 같은가하고 묻습니다.

 

(4) 여호와의 답변(3-6)

 

바위에 판 큰 틀 안에다 포도를 넣고 발로 밟아서 그 즙을 짤 때 포도즙이 튀어 옷이 젖듯이 피에 붉게 물들었습니다. 여호와의 답변도 포도즙틀을 비유로 사용합니다(3). 포도즙틀에서 짓밟히는 포도는 민족들을, 포도즙은 피를 상징합니다. 공의로우신 그분의 ‘노함과 분함’은 불의와 폭력에 대한 그분의 징벌적 응답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홀로 포도즙틀을 밟으셨습니다. 원수의 피로 당신 옷이 붉게 물들기까지 짓밟으셨습니다. 심판의 대상이 에돔을 넘어 모든 민족에게로 확대됩니다. 에돔의 심판이 민족들 심판의 서곡이 됩니다. 민족들이 에돔처럼 이스라엘에 악을 행하고 그 땅을 탐낸다면(참조. 겔 35:10) 그분의 노함과 분함을 피할 수 없습니다. 에돔(민족들)을 심판하는 날은 여호와께서 “원수 갚는 날”이요, 그분께서 “구속할 해”이기도 합니다(4). 그분의 정의에 따라 불의한 민족은 심판에 떨어지고, 백성은 구원과 해방의 기쁨을 경험합니다. 에돔(민족들)을 심판하고 당신 백성을 구해내는 것이 그분의 계획임을 분명하게 알려줍니다. 내용상 3a절을 받는 5절은 59:16의 변형에 속합니다. 여호와의 심판 의지를 깨닫고 그분을 거들어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홀로 당신의 능력의 팔과 분노로 에돔(민족들)을 심판하셨습니다. “내 팔”은 애굽의 바로를 굴복시키고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셨던 능력의 팔입니다. 6절은 3절을 거의 그대로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노함과 분함’으로 민족들을 짓밟아 으깨셔서 포도즙이 흘러내리듯이 대적의 선혈이 땅에 쏟아졌습니다.

 

구속사의 회고(7-14)

아버지가 자녀를 들고 안아서 보호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이스라엘을 들어 안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탈출시켰으며 광야에서 돌보셨습니다.

 

7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말하며 그의 사랑을 따라, 그의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 8그가 말씀하시되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라 하시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사 9그들의 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하여금 그들을 구원하시며 그의 사랑과 그의 자비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 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11백성이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여 이르되 백성과 양떼의 목자를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2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 그의 이름을 영원하게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을 갈라지게 하시고 13그들을 깊음으로 인도하시되 광야에 있는 말 같이 넘어지지 않게 하신 이가 이제 어디 계시냐 14여호와의 영이 그들을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같이 편히 쉬게 하셨도다 주께서 이와 같이 주의 백성을 인도하사 이름을 영화롭게 하셨나이다 하였느니라(7-14)

 

64:12까지 이어지는 공동체의 탄식시의 일부에 해당한다. 7-14절에서 우리 공동체는 과거 조상들에게 베푸신 여호와의 구속행위를 회상하고, 63:15-64:12에서 자신들의 비참한 형편과 죄를 고백하고 죄의 용서와 여호와의 개입을 간구합니다. 구속사의 회상은 물론 역사 공부를 위함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완강히 귀를 막고 자기 길을 가다가 멸망에 떨어졌다면, 그분의 도움을 간구할 수 있는 길도 없어진 것입니까?

 

(1) 큰 은총을 말하리라(7)

 

구속사는 자격 없는 이스라엘이 여전히 그분의 자비와 사랑에 매달려 호소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언자는 공동체에게 역사를 되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의 찬송”을, 사랑과 큰 자비에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회상해보도록 권면합니다(7). ‘자비’(헤세드)는 언약에 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랑을, ‘찬송’은 찬양받으실 그분의 업적을, ‘은총’은 행위 가운데 구체화되는 이스라엘을 향한 그분의 호의적 성품을 의미합니다. ‘사랑’(레헴)은 자궁에서 나온 단어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모성적 자기희생과 일방적 헌신에 근거함을 시사합니다.

 

(2) 이스라엘의 선택(8)

 

하나님께서 사랑과 자비로 베푸신 은총의 첫 번째 예로 이스라엘의 선택이 언급됩니다(8). “그들은 실로 나의 백성이요”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요’가 생략된 언약 양식(레 26:12;신 29:13)의 부분 인용이고, “거짓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녀”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선택한 이스라엘의 성실함을 의심하지 않으셨습니다. 신실하신 그분께서는 언약의 상대인 이스라엘의 신실함을 믿으셨습니다. ‘자녀’(아들들)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택(양자결연)에 의해 법적으로 그분의 자녀가 됐음을 시사해 줍니다. ‘구원자’는 절망적인 처지에 놓인 자들에게 도움을 베풀어주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3)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9)

 

하나님께서는 당신 백성의 모든 고난에 함께하셨습니다(9). 백성의 환난은 그분의 환난입니다. 그분은 자녀들을 홀로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사랑과 자비로 구원하셨습니다. “자기 앞의 사자”는 ’그분 얼굴의 사자’로 눈에 보이는 여호와의 현현을 가리킵니다. “옛적 모든 날에 그들을 드시며 안으셨으나”는 아버지의 애정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하고 보조해주셨음을 보여줍니다(참조, 46:3-4; 호 11:3a). 하나님의 값없는 선택과 헌신은 그분만의 일방적 사랑이었습니다. 그분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긋났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신실하심에 이스라엘은 반역으로 응답했습니다.

 

(4) 이스라엘의 반역(10)

 

이스라엘은 그분의 거룩한 영을 배반하고 괴롭혔고, 이에 이스라엘의 구원자 하나님께서 대적이 되셔서 몸소 그들을 치셨습니다(10).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에 근거한 이스라엘의 선택과 돌봄이 이들의 맹목적 배반으로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을 맞았습니다. ‘성령’(10,11)은 역사에 개입해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5) 출애굽의 여호와(11-13)

 

여기서는 구속사의 출발이자 전형에 속하는 출애굽 사건, 특히 홍해의 이적이 미래 구원의 모델로 제시됩니다. 심판을 당하고 난 다음에야 이스라엘은 “옛적 모세의 때”를 기억하고 양 떼의 목자들과 함께 그들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를 찾기 시작합니다(11). 환난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이전에 행하셨던 구원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그분의 도움을 간구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기억하다’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하다’를 의미합니다. “양 떼의 목자들”은 모세와 아론 그리고 미리암을, “바다에서 올라오게 하신 이”는 홍해를 가르고 마른 땅으로 만들어 이스라엘로 하여금 바다를 건널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을, “그들 가운데에 성령을 두신 이”는 이스라엘의 진영을 이끌고 회막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12절의 “그의 영광의 팔이 모세의 오른손을 이끄시며”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도와 당신 영광을 과시하셨음을 보여줍니다. 홍해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신 사건은 여호와의 이름(명성)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공개적 사건이었습니다. 평평한 광야를 다니는 말처럼 이스라엘은 아무 어려움 없이 바다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습니다(13).

 

(6) 가나안의 여호와(14)

 

홍해의 놀라운 도움은 가나안에서도 계속됐습니다. 여름에도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골짜기로 내려가는 가축 떼처럼 여호와의 영이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 편히 쉬고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14).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이 심판으로 시작합니다. 죄와 악에 대한 분명하고 정의로운 심판은 새로운 사회가 공평과 정의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가르치고 징계하듯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가르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끝까지 책임져 구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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