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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62-01)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구원하심

이사야 62장 1-12절


 

시온을 향한 새로운 사회 비전을 제시하는 63-66장은 심판으로 시작해서 심판으로 끝났습니다. 아는 새로운 비전은 악에 대한 정의로운 심판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심판을 통해 새로운 창조와 회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자이며 동시에 구원자가 되십니다.

 

  • 예루살렘의 구원 약속(62장) 다음에 에돔의 심판선언(63:1-6)이 나옵니다. 4절이 잘 보여주듯이 에돔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회복이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됩니다. 35장에서처럼 에돔은 사해 동남쪽에 위치한 특징 나라이자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민족들의 대표를 등장합니다. 에돔은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지만, 민족들의 경우는 에돔의 멸망을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여호와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도 있습니다.

 

구원 약속: 여호와 손의 아름다운 관(1-5)

영적 침체는 개인과 가정, 교회와 신앙공동체 모두에게 찾아올수 있습니다. 그것은 죄의 직접적인 결과일 수도 있고, 오랜 세월 누적된 영적 권태감의 발로일 수도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영적 침체에서 회복되는 장면을 보여 줍니다. 그들은 어떻게 영적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영적 침체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1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2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 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3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4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5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1-5)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기도합니다(1). 그뿐만 아니라 그는 자기가 드리는 이 중보기도에 함께 동참할 파수꾼을 찾습니다(6). 우리에게 찾아온 영적 침체를 극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비결은 바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1) ‘잠잠하지 아니하며’(1)

 

예언자가 자신의 기도 의지를 단호하게 표명한다. 여호와께서 침묵을 깨고 개입하실 때까지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하고” 그분께 간구할 것입니다(1). 예언자는 자신이 선포한 시온의 구원이 더딘 것에 반응하여 구원 약속이 성취될 때까지 하나님과 기도의 싸움에 나서기로 결심한 것 같습니다. 새벽어둠을 깨고 갑작스럽게 빛이 밝아오는 것처럼 시온의 의가, 어둠을 밝히며 환하게 타는 횃불처럼 예루살렘의 구원이 갑작스럽게 드러날 것입니다. “시온의 의”는 병행하는 “예루살렘의 구원”이 보여주듯이 시온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광채’를 의미하는(겔 1:4,27,28; 10:4) ‘노가흐’(“빛”)는 종종 어둠의 대립 개념으로 사용되고(9:2;50:10; 60:2-3), “횃불”(라피드)은 신현 묘사에 자주 등장합니다(창 15:17; 출 20:18; 겔 1:13; 단 10:6). 시온의 미래가 영화롭게 묘사됩니다.

 

(2) 시온의 영광(2-3)

 

이방 민족들과 왕들이 시온의 공의와 영광을 보고, 시온은 여호와께서 지어주신 새 이름으로 불립니다(2). ‘시온의 공의’는 여호와에 의한 승리 또는 의로움의 입증을 의미합니다. ‘의, 공의’(체데크/처다카)는 이사야서 후반부의 중심 개념에 속합니다(41:2,10; 45:8,13; 51:5,6,8; 58:8; 59:17). 민족들과 그의 통치자들이 여호와의 영광을 본다는 주제도 드물지 않게 등장합니다(58:8; 59:19; 60:3). 땅의 모든 왕이 하늘 왕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새 이름”은 새 신분을 상징합니다(참조, 1:26). 미래의 시온은 현재의 시온과 구별될 것입니다. 심판으로 황폐해진 시온이 구원과 축복이 약속된 새로운 시온으로 대체됩니다. “오래 황폐하였던”(61:4) 시온이 여호와의 손에 들린 “아름다운 관”, “그분 손바닥에 놓인 왕관”이 됩니다(3). 면류관과 왕관은 통치권을 상징합니다. 시온이 여호와의 왕도가 됩니다(60:14).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왕이 되셔서(24:23) 통치하십니다(40:9-11). 성읍을 그 성읍을 수호하는 신의 (면류)관과 왕관으로 묘사하는 예는 바벨론에서도 발견됩니다.

 

(3) 시온의 새 이름(4)

 

시온에게 새 이름, 새 신분이 주어집니다. ‘버림받은 여자’(아주바)라 일컬어지던(60:15) 시온이 앞으로는 ‘내가 기뻐하는 여자’로, ‘황무지’라 일컬어지던(61:4) 시온의 땅이 ‘결혼한 여자’라 불릴 것입니다(4). 여호와께 버림을 받았던 시온이 그분께서 기뻐하시는 그분의 아내로 받아들여집니다. “뿔라”의 ‘버울라’는 ‘소유하다’, ‘결혼하다’를 의미하는 동사 ‘바알’의 수동 현재분사 여성형으로 ‘남자의 소유가 된 여자’, ‘결혼한 여자’를 의미합니다. ‘버림받은 여자’의 아주바도 ‘버리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잡’의 수동 현재분사 여성형입니다. “헵시바”의 ‘헤프지 바흐’는 ‘나의 기쁨이 그녀에게 [있다]’로 ‘내가 기뻐하는 여자’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이 아니라 그 땅을 당신 아내로 맞아들이십니다. 황폐해진 땅이 비옥한 땅이 돼서 다시 결실을 얻게 될 것을 시사하는 표현입니다.

 

(4) 시온을 기뻐하시는 하나님(5)

 

청년이 처녀와 결혼하듯이 시온의 아들들이 시온과 연합하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하듯 시온의 하나님께서 시온을 기뻐하십니다(5). 신부 시온을 맞는 신랑 여호와의 기쁨에 초점을 맞춥니다. 시온이 여호와께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남편에게 기쁨을 주는 아내이기에 여호와께서 반드시 시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파수꾼들의 쉼 없는 간구: ‘너희는 그분을 쉬시게 하지 마라’(6-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보다 더 간절히 이스라엘의 회복을 원하셨습니다. 그들이 적국의 포로로 끌려가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는 절망의 자리에 있을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회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만드신 관으로 그들의 머리를 장식해주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들이 회복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6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하여금 주야로 계속 잠잠하지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6-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셨습니다. 파수꾼은 성을 지키며 보호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종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깨우치고 그들을 진로의 길로 인도하길 원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신부로 만들기 위해 수고하였습니다.

 

(1)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6)

 

화자 ‘나’의 신분이 불분명하지만, 역할의 유사성에 근거해서 1절의 경우처럼 예언자로 간주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과 기도의 싸움에 나선(1) 예언자는 더 많은 사람을 참여시킵니다. 그는 여호와의 개입을 촉구하기 위해 가용자원을 모두 동원해 그분께 매달립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벽에 파수꾼을 세워 낮이고 밤이고 한순간도 잠잠하거나 쉬지 않고 여호와께 간구하게 합니다. 파수꾼으로 세워진 자들은 예언자의 동역자들이거나 구원 약속의 성취를 고대하는 자들인 것 같습니다.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은 이들의 역할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의 구원을 위해 조속히 개입하시도록 쉬지 않고 그분의 기억을 일깨우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창 20:7)과 모세처럼(출 5:22-23; 8:12-13; 32:11-14) 중보기도의 역할이 이들에게 맡겨집니다.

 

(2) ‘그로 쥐지 못하시게 하라’(7)

 

예언자는 함께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일으켜 세우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고 권면합니다. 세움을 받은 파수꾼은 여호와께서 쉬지 못하시도록 한순간도 잠잠하지 않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약속에 따라 예루살렘을 다시 굳건하게 세우셔서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실 때까지 귀찮아하실 정도로 그분께 매달려야 합니다. 예언자는 기도를 통한 여호와의 개입으로 가까이 온 구원(56:1)이 온전히 성취될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여호와의 응답(8-9)

우리가 기도했다고 영적 침체를 벗어나는 데 필요한 모든 일을 한 것은 아닙니다. 이사야는 파수꾼들과 이스라엘을 위해 함께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며 그가 해야 할 일들에 수고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기도했다면 우리가 드린 기도에 합당한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8여호와께서 그 오른손, 그 능력의 팔로 맹세하시되 내가 다시는 네 곡식을 네 원수들에게 양식으로 주지 아니하겠고 네가 수고하여 얻은 포도주를 이방인이 마시지 못하게 할 것인즉 9오직 추수한 자가 그것을 먹고 나 여호와를 찬송할 것이요 거둔 자가 그것을 나의 성소 뜰에서 마시리라 하셨느니라(8-9)

 

우리를 영적 침체에서 회복시키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놓치지 마십시오. 우리가 기도하고 우리 몫의 수고를 다할 때, 하나님은 속히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1) 원수에게 빼앗기지 않는 양식(8)

 

예언자의 간절함과 절박함이 마침내 여호와를 움직이는 데 성공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자신을 두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장엄하게 맹세하여 구원 약속이 반드시 성취될 것을 보여줍니다. ‘오른손을 들다’는 맹세할 때의 전형적 몸짓에 속하고(신 32:40; 단 12:7), “능력의 팔”(시 89:10)은 출애굽 전승에 나오는 강한 손과 편 팔을 회상시킵니다. 예루살렘 공동체는 곡식과 포도주를 다시는 이방인들에게 빼앗기기 않을 것입니다. 포로기 이후의 공동체는 애써 농사를 지어 수확해도 상당 부분을 세금이나 공물로 빼앗겼습니다(참조 느 5:15). 이방인에 의한 농작물의 수탈은 언약을 파기한 백성에게 임할 저주 가운데 하나로 자주 언급됩니다(신 28:30,33).

 

(2) 추수한 자가 먹게 될 양식(9)

 

구원 시대에는 원수에게 약탈당하지 않고 수확한 곡식이 모두 수확한 자의 양식이 됩니다. 이들은 수확한 곡식의 첫 열매를 성전에 감사예물로 드리고(신 26:2) 여호와의 축복을 찬송합니다.

 

권면과 격려: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10-12)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주실 놀라운 선물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요 3:16).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모든 좋은 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무력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10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11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12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10-12)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이스라엘이 가장 먼저 무엇을 했는지 주목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만민을 위해 깃발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임한 구원을 선포했습니다. 우리 안에 구원의 감격이 계속되기 원한다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님을 이웃에게 증거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1) 구원자 여호와를 맞을 준비(10-11)

 

예언자는 이미 시작된 왕의 귀환을 위해 준비할 것을 제자들에게 명령합니다(10, 40:1-11; 52:7-10). 왕이신 여호와의 귀환에 앞서 공동체는 모든 영적 걸림돌과 잘못된 관습을 제거해야 합니다. 현실적 어려움으로 인해 여기저기 파손된 길(그분께 대한 신뢰)을 다시 닦아야 합니다. 그분께로 나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것은 모두 깨끗하게 내다 버려야 합니다. 예언자와 그의 제자들은 중재자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막힌 길을 다시 이어주어야 합니다. “백성이 올 길”은 ‘백성을 위한 길’로 옮겨야 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만민을 위하여(민족들위에) 기치를 들라”는 새로운 종말론적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말로,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사건에 세계사적 의미가 주어집니다. 11b절은 40:10b의 문자적 반복입니다. 지체되기는 했지만, 약속은 반드시 그대로 성취될 것입니다.

 

(2) 시온의 새 이름(12)

 

12절은 주제에 있어 26절과 4절에 연결됩니다. 시온의 백성은 ‘거룩한 백성,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들’이라, 시온은 “찾은 바 된 자,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불릴 것입니다. “거룩한 백성”은 ‘여호와께 바쳐진 자들, 그분만을 경배하는 자들’을 의미합니다.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들”는 35:8-9의 ‘거룩한 길’로 다니게 될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 연결될 수 있습니다.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은 운명의 극적 전환을 시사해줍니다. 여호와께 버림받고 그분이 찾지 않던 시온이 그분께서 기뻐 찾으시는 성읍이 됩니다(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과 타락 때문에 침묵하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백성에게 계속해서 침묵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찾아오시며 그들의 구속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에는 아무런 조건도 없습니다. 아무 공로 없이 회복과 구원의 은혜를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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