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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03-02)


이스라엘 연합군과 모압과의 전쟁

 

열왕기하 3장 13-27절


모 스포츠 회사 광고 문구 중에 ‘불가능,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Impossible is Nothing)이라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복싱 선수인 알리가 했던 말입니다. 세상에 많은 일들 앞에서 연약한 우리에게는 불가능한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자신의 사역을 위해서 합당한 일꾼을 찾으시고 계십니다.

 

  •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호람은 반란을 일으킨 모압과 전쟁을 하기 위해 군사를 모으고,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동맹을 맺습니다. 하지만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면서 광야에서 물 부족을 겪게 되고 연합군이 위기를 겪게 되는 가운데 드디어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습니다. 이때 소개된 선지자가 바로 엘리사이고, 엘리사는 여호람 왕과 여호사밧 왕을 처음 만나게 됩니다.

 

여호람을 반기지 않는 엘리사(13-1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을 이루어 가실 때, 사람들을 부러서 사용하십니다. 사역자의 기준은 얼마나 많은 중요한 일을 감당했었느냐, 그 사람이 어떤 중요한 인물이냐를 중요하게 보지 않습니다. 다만 사역을 감당할 사람이 얼마나 깨끗한 그릇인지를 살펴보실 뿐입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 원하신다면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13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14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13-14)

 

원래 모압은 북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받치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 아합이 죽자, 모압이 반역을 해서 더 이상 조공을 받치지 않았습니다. 위협을 느낀 북이스라엘 왕이 여호람은 남 유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을 도와서 전쟁에 참여하고, 에돔 역시 이스라엘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세 연합군들은 전쟁에서 큰 어려움을 만나서 선지자 엘리사를 찾아옵니다.

 

북 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을 본 엘리사는 불쾌감을 감추지 않습니다. 그는 여호람에게 굉장히 쌀쌀맞게 대합니다. ‘당신과 내가 무슨 상관있냐’며, 그러면서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고 빈정거립니다. 여기서 여호람의 부친인 아합의 선지자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따르면 아합이 아람과 전쟁하기 위해 400명의 선지자를 불렀지만, 이들은 모두 아합이 이길 것이라는 거짓 예언을 합니다. 자신에게 좋은 말만 해주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만 듣었습니다. 여호람의 모친인 이세벨의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입니다. 이세벨은 결혼하면서 바알 선지자와 제사장들을 데리고 이스라엘에 왔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바알 신앙을 전파하기 위해 애를 쓴 인물입니다.

이렇게 아합과 이세벨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지자이자 엘리사의 스승인 엘리야를 죽이려고 찾아다닌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아들이 와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에 대해 엘리사는 여호람이 정말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은 건지 빈정거리며 의구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엘리사의 말에 여호람은 그럴 수 없다며,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라고 자신들이 위기에 처해서 찾아왔다고 고백합니다. 여호람은 자신들의 위기를 여호와께서 모압과의 전쟁에서 지게하려는 뜻으로 생각한다고 말합니다. 여호람은 전쟁을 준비하면서 여호와의 뜻을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하자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모압의 손에 넘기기 위해 부르셨다면서 하나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이런 여호람에게 엘리사는 자신의 하나님을 ‘만군의 여호와’라고 부르며, 유다 왕 여호사밧 때문에 여호람을 보는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여호람 쪽으로 얼굴도 돌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말합니다. 엘리사는 여호람을 전혀 신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는 모든 전쟁의 주관자이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이 라는 것을 나타내는 호칭입니다.

 

이 장면만 보면, 엘리사는 무례한 사람이고 여호람 왕은 매우 착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더욱이 열왕기하 3:2에서 여호람이 자신의 아버지 아함이 만들었던 바알의 주상을 없앴다고 나옵니다. 이런 모습으로 여호람은 괜찮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여호람에게 쌀쌀맞은 것은, 그 이유가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라고 여호람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가 아함이나 이세벨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악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사의 태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악인을 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물을 주심(15-20)

뜻하지 않는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을 중심으로 살라고 권고합니다. 어려울 때는 무엇인가 도움을 찾고 누구에게 인가 도움을 구할 때가 있습니다. 상황에 집착하면 힘들고 어렵지만, 눈앞의 상황에 함몰되기보다 말씀 앞에 서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자신의 신뢰의 깊이와 너비는 얼마나 됩니까?

 

15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16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15-20)

 

엘리사는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라고 요청합니다. 여기서 ‘거문고 탈 자’는 ‘현악기를 타는 자’라는 뜻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사용되던 현악기는 일반적으로 수금으로 번역됩니다. 아마도 다윗이 사울을 위해 연주한 것과 같은 종류의 악기 일 것입니다. 엘리사가 수금 타는 자를 불러 달라고 한 이유는 하나님의 신탁을 받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선지자들이 정확히 어떤 의식을 통해 하나님의 신탁을 받았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사무엘상 10:5에 따르면 선지자 무리가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수금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앞세우고 예언하며 내려올 것이라는 신탁이 나옵니다. 이것을 보면 선지자들이 예언을 받을 때 음악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음악을 매개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꿈이나 환상 혹은 음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탁을 받습니다(예레미야 1:11,15). 음악이 연주될 때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에게 임합니다. 손은 구약에서 권능의 상징으로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임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엘리사에게 신탁을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엘리사는 이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명령하며, 하나님께서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바람도 비도 보지 못하고’란 말은 골짜기에 물이 가득 차는 것이 자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는 의미입니다. 물의 양이 넉넉하여 군인들뿐 아니라 그들이 데리고 온 모든 가축들까지 먹을 수 있을 정도라고 하십니다. 이 정도의 일은 여호와께 매우 사소한 일이며, 이제 세 나라 연합군의 손에 모압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구체적으로 연합군이 모압의 모든 성읍을 헐고 완전히 폐허로 만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즉, 물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모압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주실 것에 대한 징표인 것입니다. 엘리사가 말한 대로 아침 소제 드릴 때 물이 에돔으로부터 흘러와 그 땅을 가득 채웠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연합군이 모압을 이김(21-25)

멸망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우상의 힘을 의지할 뿐입니다. 때로는 우상의 경배하는 방식은 자녀를 불살라 바치는 끔찍한 인신제사까지도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한 이들의 최후는 이토록 비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승리를 주십니다.

 

21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21-25)

 

21-23절은 모압의 관점으로 모압 사람들은 세 나라 연합군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전쟁을 할 만한 남자들을 모두 소집하여 전쟁을 준비합니다. ‘갑옷 입을 만한 자’는 무장한 사람이란 뜻으로 주로 가볍게 무장한 사람들을 나타내는데, 이것은 소집된 사람들이 훈련된 정규군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이란 의미입니다.

22절은 20절과 같은 시간으로 20절은 연합군의 시점에서 본 것이고, 22절은 모압의 시점에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경계를 서던 모압 사람들은 골짜기에 흐르는 물에 태양이 떠오르며 붉게 비치는 모습을 보고 피라고 착각합니다. 전날 밤까지 골짜기에 물이었기 때문에 붉게 흐르는 물을 그냥 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여호와의 역사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는 의미입니다. 붉은 물을 피 라고 착각한 모압 사람들은 세 연합군의 왕들이 서로 싸워 살육하였고, 그 결과 피가 이렇듯 강처럼 흐르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판단을 한 모압 군대는 이런 추론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서로 죽여 초토화된 진영에 들어가서 노략하자면서 이스라엘 진으로 쳐들어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으로 쳐들어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진은 모압 사람들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잘 준비되어 있었고, 모압 사람들을 쳐서 죽이고 도망가는 사람들을 쫓아 모압 지역 까지 밀고 들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모압 지역을 초토화합니다. 연합군은 밭에 돌을 가득 던져 넣고 샘을 메워 유실수들을 베어버림으로 모압 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마지막에 남은 백성들은 칼이나 활이 아닌 물매꾼들이 던진 물매에 맞아 죽습니다. 이것은 모압이 매우 처참하게 패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압 왕이 아들을 번제로 드림(26-27)

권력과 신앙이 잘못된 만남의 결과로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성도들을 핍박하고 탄압합니다. 잘못된 사상은 하나님을 내려놓고 피조물을 우상화 작업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적 교통이 막히기 때문에 점점 악한 방법으로 그들의 우상을 섬기게 되어 집니다. 대표적인 모습을 모압 왕에게서 봅니다.

 

26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26-27)

 

상황이 심각하여 연합군에게 전멸당할 위기에 처하자, 모압 왕은 칼 찬 군사, 즉 잘 훈련된 정예 병사 700명을 이끌고 연합군의 진을 돌파하여 에돔 왕에게 가려고 시도하였지만 실패합니다. 현재 에돔 왕도 연합군에 속해 있기 때문에, 모압이 에돔 왕에게 피하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렇게 죽을 위기로 몰리자 모압 왕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데,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성 위에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자식을 신에게 번제로 바치는 풍습은 구약에서 몰렉에게 자식을 드리지 말라는 율법의 금지 조항에 등장합니다. 이 제사는 이스라엘에선 금지되었지만, 고대 근동에선 종종 행해지던 것으로 위급한 상황에서 신에게 최대의 충성을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이런 행동을 본 모압 사람들은 맹렬한 분노를 품고 죽기 살기로 연합군에게 대항하였고, 결국 연합군은 이들에게 밀려 각자의 나라로 돌아갔습니다. 결국 모압을 완전히 멸망시키거나 진멸하지 못하고 전쟁에 승리하는 수준에서 전쟁을 마치고 돌아갑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압을 진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신의 언약에 대해 신실한 한 사람, 전심으로 기도하는 한 사람, 모든 인간적인 계산을 넘어서 하나님께서 열어 가실 시간을 기대하고 상상하는 한 사람, 그 한 사람을 보시고 용서하시고, 그 한 사람을 인하여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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