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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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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밀한 중에 살피시는 하나님

마태복음 61-15

 

사람들은 영적인 부분은 볼 수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전부로 생각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이는 부분만 위해서 많은 것을 투자하고 수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도 다 보고 계실 뿐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보이지 않다고 무관심한 부분을 더 지켜보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이익을 얻으려는 선행에 대해 경고하십니다.

 

예수님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이 아닌 사람 앞에서 사람으로부터 의로움을 인정을 받는 세 가지 효과적 방식이 구제, 기도, 금식입니다. 참된 경건을 위한 구제, 기도, 금식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그 기준은 누구 앞에서하느냐입니다. 사람들이 알도록 드러내느냐, 하나님께서 보시도록 은밀히 행하느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참된 경건의 태도와 방식을 명령하십니다.

 

구제에 대한 가르침(1-4)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선한 일을 이루어 갔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들이 자신의 자랑하는 수단으로 바꿔 버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을 의식해서 선을 행하는 자는 하나님께 상을 받지 못합니다.

1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2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네 구제함을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1-4)

사람들은 작은 선행을 행한 후 자신의 선행에 대해 자랑스러워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모든 행동들을 금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인정과 칭찬을 받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구제에 대해서도 예수님께서는 주는 사람 입장에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받는 사람 입장에서 실시하라고 합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의 의를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1) 경건 행위에 대한 가르침(1)

유대인들이 자신의 경건 생활을 위해 구제에 힘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구제행위에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먼저 그들의 잘못된 행위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려 했고, 사람들에게 인정과 영광을 얻으려 했습니다. 경건의 핵심은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결코 사람을 향해 경건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신앙생활은 경건 행위나 예배가 아니라 연극과 같습니다. ‘위선(僞善)’이 당시의 연극의 용어로 쓰인 것을 고려하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나팔을 불고, 길게 기도하고,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하는 모습은 연극배우가 관객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앞에서 경건 행위를 해야 합니다. 참된 경건은 의인들에게 상을 주실 하늘의 아버지께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2) 자선에 대한 교훈(2-4)

제자들은 자선을 베풀 때마다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자선 행위를 보여주는 위선자들과 달리 나팔을 불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구제를 시작할 때, 구제를 받아야할 사람이 빠지지 않도록 성전에서 구제를 시작한다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점점 사람들에게 이목이 중심되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의로움을 과시하기 위해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건을 인정받으려는 선전일 뿐입니다. 위선적인 구제 행위를 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을 이용해서 자기 영광을 얻으려는 악한 태도입니다. 자선 행위로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으면 더 이상 하나님에게서 받을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합니다.

구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은밀하게 해야 할 이유는 첫째, 구제를 받은 사람에게 자존심 상하여 상처를 주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둘째로, 사람들 앞에서 공공연하게 나팔을 불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다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바르게 세워진 사람들은(5:21-48),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도 바르게 세워집니다(6:1-18). 사람들과의 태도에서 서로 돕길 위해 의를 행할 때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외식적인 사람은 남에게 보이려고 하지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듯 은밀히 행합니다.

구제에 대한 바른 태도는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는 섬세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마땅히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의만 나타내야 합니다. 그래서 정말 아름다운 구제의 행위는 아무도 모르게 즉 은밀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궁핍함과 절박한 필요를 도움을 주는 것이 구제입니다.

 

기도에 대한 가르침(5-13)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 나라와 뜻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으로 주의 이름을 높이고 주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갈망하는 기도, 제자들도 순종의 삶을 통해 이 하나님의 통치와 뜻의 구현에 참여하기를 간청하는 기도가 아름다운 기도입니다. 모든 기도보다 앞서야 하고 이러한 기도가 기본적인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5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12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13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5-13)

예수님께서는 사람들과의 관계(구제)에서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기도)에서도 위선(僞善)을 금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외식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대한 거짓으로 연구하는 영화배우와 같습니다.

(1) 은밀한 기도(5-6)

제자는 위선을 피하고 은밀히 기도해야 합니다. 위선자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하면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회당이나 길모퉁이에 서서 손을 들고 기도하기를 좋아하였습니다. 본문에서 큰 거리 어귀는 갈릴리의 헬라식 도시 세포리스에 있었던 주랑(기둥)이 세워진 거리를 가리킵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고 연극배우처럼 기도를 연기하는 사람은 사람들의 칭찬으로 보상을 이미 받은 것이 됩니다.

기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위선자들은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행동과는 대조적으로 제자들은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고 문을 닫고 기도하듯이 은밀히 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아무도 모르게, 오직 아버지만 아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골방은 칭찬과 존경을 표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한 분만으로 초대해서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초대해 기다리고 계시는 방입니다.

기도는 하나님만을 대화의 상대로 삼고 친밀함 가운데서 골방에서 하는 것이므로 당연히 사람들의 칭찬이나 존경과는 거리가 멉니다. 이렇게 은밀히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갚아주십니다.

(2) 기도에 대한 기준(7-13)

예수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의 기도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그들처럼 주문을 외우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제자들에게 가장 좋은 기도의 모범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잘못된 기도를 언급하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두지 않은 이방인의 중언부언은 잘못된 기도입니다(7). 이방인들은 말을 반복하고 많이 내뱉음으로써 말이 가진 힘을 중대해서 신들이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습니다. 기도는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자녀 간의 대화이기에 중언부언하는 것은 대화의 태도로 옳지 않았습니다. 자녀는 아버지에게 필요한 것을 말할 때 확신에 찬 마음으로 명료하게 필요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8절에서는 올바른 생각을 언급하고 나서, 9-1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정형화된 기도의 모본을 제시하셨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첫째 청원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둘째 청원은 당신의 나라, 곧 하늘나라 내지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영광스럽게 되기를 바라는 기도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드러나고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것과 연결됩니다. 셋째 청원은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 하나님의 계획과 목표를 가리키며, 제자는 자신의 뜻이나 사탄의 의도가 아니라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실현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위의 세 청원이 하나님과 그의 나라와 관련된 기도라면 이어지는 세 청원은 자녀의 필요를 위한 것입니다.

넷째 청원은 빵, 즉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를 위한 것입니다. ‘오늘의 땅에서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시는 것 같고, 나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 같고, 나의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 같고, 세상의 무거운 짐이 오늘의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부의 딸과 아들은 하늘을 향해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이제의 아버지는 오늘도 아버지로서 자녀의 필요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청원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를 지은 자들에게 용서를 베푼 것처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용서하는 신자는 하늘 아버지를 향해 자신의 죄를 고하면서 자비를 구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악의 결속력이 약화되고 긍휼이 땅에서 순환됩니다. 여섯째 청원은 자신의 약함과 한계를 인정하면서 인생의 위기에서 구해달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권능으로 주의 이름을 드높이고 주의 나라를 이루시기를 갈망하는 기도, 제자들도 순종의 삶을 통해 이 하나님의 통치와 뜻의 구현에 참여하기를 간청하는 기도, 자기 부인을 통해 내 나라를 버리고 주의 나라만 서기를 구하는 기도, 하루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양식부터 죄 용서와 악한 자로부터 건져주시는 일까지 내 생명과 삶이 모든 영역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기도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합당한 기도입니다.

 

용서에 대한 가르침(14-15)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사람의 외형적으로 나타는 것은 용서하는 삶으로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14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15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14-15)

참된 기도는 용서하는 삶으로 입증됩니다. 경건 생활의 상호성을 강조하는데, 주의 기도가 영원한 요구이듯 용서하고 용서받는 방식의 일어나야 합니다. 이전 단락에서 보복과 원수 사랑도 용서와 연결됩니다. 용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용서하셨듯이 하늘나라 제자라면 하나님을 닮은 자로서 먼저 타인을 용서해야 합니다.

 

나가는 말

사람에게 보이려는 목적으로 를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의 위선을 본받지 말고 은밀하게 구제하고 하나님 앞에서만 기도하고 금식해야 합니다. 제자들의 착한 행실 구제 기도 금식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동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만 아셔도 은밀하게 구제하고 있습니까? 혹시 기도와 금식을 자신의 경건과 믿음을 선전하는 도구로 여기고 이용하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목적이 하나님과 관계에 있는 것인지 아니면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기 위한 것인지 신앙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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