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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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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

마태복음 412-25

 

성실하게 농사를 짓고 있던 농부가 있었습니다. 매일 작은 일에도 소월하지 않고 즐겁게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중년 남자가 지나가면 농사의 모습을 한참 지켜보면서 농사가 힘들고 돈도 안 되는 농사가 그렇게 즐겁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농부는 돈보다는 농작물이 자식처럼 자라가는 것을 보면 정말 행복하지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느 날 그에게 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중책(重責)을 맡아보지 않겠느냐?’는 제의였습니다. 지난번에 물었던 중년 남자는 대기업 총수였던 것입니다. 대기업 총수는 이 정도 성실한 사람이라면 회사에서도 충성할 수 있다.’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영향력 없던 어부들을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중요한 사역하는 제자로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은 당시에 가장 어둡고 소외된 가버나움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첫 메시지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네 제자들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군으로 삼으셨습니다. 또한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면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12-17)

세상의 이치 중에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물이 흐르다가 막히면 가장 낮은 곳을 찾아서 흘러내려 갑니다. 복음의 흐름도 이와 같습니다. 복음이 전파되다가 높은 장벽을 만나면 멈춘 것이 아니라 그곳을 피해서 낮은 곳을 찾아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사역도 사람들의 방해로 멈춘 것이 아니라 감당할 만한 사람을 찾아서 역사합니다.

 

12예수께서 요한이 잡혔음을 들으시고 갈릴리로 물러가셨다가 13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14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15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단 강 저편 해변 길과 이방의 갈릴리여 16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치었도다 하였느니라 17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12-17)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사건은 메시아로서 공생애를 시작하는 취임식과 같았습니다. 그 이후에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기도하고 있을 때, 세례 요한은 헤롯 왕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이 잡혔다는 소식은 이제 예수님의 사역에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소식에 두려워하거나 위축되지 않고 갈릴리로 가셔서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때가 임하였음을 아셨습니다. 회개를 외치던 선지자는 사라졌지만, 용서와 회복을 여는 왕이 등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고향 나사렛에서도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고향 나사렛을 떠나 같은 갈릴리 지역이지만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 가버나움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가버나움은 구약 선지자인 나훔의 고향이란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곳을 초기 사역의 본부로 삼으셨습니다. 당시 이 지역은 이방의 갈릴리라고 불리던 영적으로 아주 어두웠던 곳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세상의 빛으로 사역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 했습니다.

1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이사야 9:1-2)

고향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지만, 가버나움 이방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이사야의 예언대로 가버나움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가버나움이 바로 이사야가 말한 스불론과 납달리 땅이었습니다. 이곳을 그 당시 사람들은 가버나움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로 어두운 죽음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이 땅은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이방인들이 많이 거주했으며, 오랫동안 이방인들이 차지한 땅으로서 진리의 빛이 없는 지역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빛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어두운 땅에 복음의 빛을 비추셨습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당시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지 않으셨습니다. 화려한 비단 옷을 입을 사람들을 중심으로 역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율법적인 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서 시작한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소외된 변방에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중심으로 점점 예루살렘 중심으로 전진해 들어갔던 것입니다. 가장 소외된 곳에 가장 먼저 복음의 빛을 받는 영광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전반적인 사역이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잘 들러나 있습니다. 선포한 복음은 세례 요한이 외쳤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 왔느니라.”(17)와 동일했습니다. 천국은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임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회개를 통해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나라를 소유하려면 누구든지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며, 그 결과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왕과 백성의 관계로 만들어 줍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긍극적인 목적은 죄인들을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입성시키시는 일입니다. 그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입성되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도우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악 많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했던 이 세상에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하다고 인정합니다. 하지만 막상 그 세상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먼저, 빛이 되신 예수님 앞에 자신을 조명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한 삶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두운 세상에 하나님의 작은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헤매고 있는 영혼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중국의 성현이었던 공자(孔子)어둡다고 불평하기 보다는 작은 촛불 하나라도 켜는 것이 낫다.”라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18-22)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면 과거의 삶을 포기해야 합니다. 두 가지 삶을 한꺼번에 누릴 순 없습니다. 무엇인가 한 가지를 포기하지 않으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에 특혜를 얻었지만 그들은 과거의 것들을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18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19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20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21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22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18-22)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언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이 있었습니다. 먼저 예수님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함께 할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셨을 때,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고 갈릴리고 가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교육을 받아서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동역자를 찾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소외 받은 갈릴리 해변에서 자신의 제자들을 찾으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 부르심은 어부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대에 처음으로 반응하여 천국의 백성이 된 네 명의 제자들을 소개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심의 장소들은 각자 삶의 현장 속으로 찾아가서 제자들을 불러주셨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열심히 감당하는 현장 속에서 부르셨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들을 수 있는 장소는 열심히 일하는 삶의 현장입니다. 그들에게는 자격이나 조건을 따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조건은 순종이었습니다.

먼저 그물을 던지는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에게 찾아가셨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순님께서는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이에 베드로와 안드레는 반응합니다.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좇았습니다.

이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그들 역시 배와 부친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릅니다(21). 제자들이 예수님과 무슨 관계라든지 이런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부름을 받았을 때 모든 소유를 버려 뒤로하고 즉시 순종했다는 사실만 소개합니다.

그들을 부르시는 목적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셨습니다(19). 예수님께 첫 제자 그룹을 어부로 선택하셨겠습니까? 그들이 결단 있는 성격이기 때문만 아닙니다. 쉽게 모든 것을 성격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잘할 수 하던 일에서 방향만 바꾸어 하나님의 사역으로 시키신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물고기를 낚는 어부였지만, 이제부터는 사람을 인도하는 어부로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어부들은 밤을 새워가면서 한 마리의 고기를 잡는데 얼마나 많은 수고를 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한 생명이 태어날 때까지 한 마리의 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 헌신과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직감적으로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해야 할 지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부르심에 제자들은 어떻게 반응합니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버림떠남그리고 따름이 필요합니다. 버려야할 것들을 아무 미련이 없어야 합니다. 그것들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 어부의 밑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그물과 배 그리고 부모까지도 버렸습니다. 우리도 세상과 예수님께서는 동시에 섬길 순 없습니다. 우선순위를 예수님께 두셨다면 세상에 즐기던 것들을 내려놓으시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단순히 직업과 가족을 버린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세웠던 자신의 모든 삶과 목표들을 버린 것입니다. 제자들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의 태도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들도 제자의 삶은 완전히 버리고 철저히 순종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임을 가르쳐 줍니다.

그들에게 자신을 따르라고 부르심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미련 없이 예수님을 즉시 따랐습니다. 이들은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영적 권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명령 속에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권세가 있었습니다. 이 세상의 권위처럼 군림하는 권위가 아니라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권위가 있었습니다. 메시아의 권위를 가지고 제자들을 부르시는 음성이 들릴 때,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대단한 은혜가 있습니다. 당시 갈릴리 해변에 수많은 어부들이 있었지만, 베드로 및 다른 제자들을 선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와는 무관하고 학식에 무식한 어부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들의 삶은 완전히 변화되어서 가장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당신도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길 원한다면 이전에 즐기던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물과 부르심을 같이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갈 순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음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만 따를 것을 결단 시켰습니다.

15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여호수아 24:15)

이 여호수아의 결단을 촉구하는 말씀에 당신도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분명한 신앙의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것들을 모두 내려놓고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로 거룩한 순종이 있길 바랍니다.

 

새롭게 사역을 시작한 예수님(23-25)

예수님의 사역은 제자들을 부르신 사역만 하신 것이 아니라 모든 갈릴리를 다니시면 가르치시고 치유하신 사역들을 하셨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셨던 세 가지 중요한 사역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3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23-25)

예수님께서는 부르셨던 제자들과 함께 갈릴리 전 지역을 다니시면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하게 풀어서 가르치셨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는 선포적인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병자들과 연약한 자들을 찾아가 주셔서 치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이처럼 세 가지 형태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해 귀로 듣게 하셨고, 눈으로 보게 하셨고, 몸으로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전인격적으로 생명이 살아나는 역동적인 구원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역들은 모두 성공적이었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의 결과, 갈릴리뿐 아니라 점차적으로 동서남북 사방에 천국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데가볼리 그리고 심지어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베레아와 같은 모든 지역으로부터 와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우리의 부르셨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연약한 것들을 고치셨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어두움에 덮어있는 이 땅에 예수님의 가르침과 전도와 치유 사역을 이어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꾸준히 그 사명을 감당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방향에 우리 삶의 방향을 일치시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핵심은 하나님의 통치이기에 그 통치를 거스르는 이들에게는 회개가 요구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사랑과 용서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의와 평화의 통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진리로 통치를 받으며 진리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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