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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05-01)

 

 

산상보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신 예수님

마태복음 51-12

 

사람들은 누구나 다 행복해지길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된 성도들이 행복하게 살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조금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며 한시적이지만,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영원하고 변함없는 행복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실 행복을 누리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제시한 행복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본문에 팔복의 말씀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압축된 행복의 비밀들이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당신을 행복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앞선 단락에서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과 현상을 포괄적으로 진술했다면, 이제부터 본격적인 사역이 소개됩니다. 마태는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를 가져오신 메시아임을 선언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는 새 나라에 걸맞은 새 백성의 삶을 규정하는 새 질서를 선포하십니다. 팔복이 그 선포의 첫머리를 장식합니다.

 

천국에 대한 교육(1-2)

현재 누리는 복과 미래에 온전해질 복만이 이 가치에 헌신하고 이 변혁에 참여할 동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새로운 가치관을 수용하고 그것에 따라서 삶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들입니다. 구언의 조건이 아니라 그 나라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1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2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1-2)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자, 많은 무리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예수님 곁으로 모여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그들에게 천국 백성의 삶의 원리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새로운 모세로서 산에서 가르친 것과 같습니다.

(1) 산에 오르신 예수님(1a)

예수님께서 오르신 은 높은 산이 아니라 고도가 완만하게 경사진 언덕 정도일 것입니다. 마태가 의도적으로 이라고 표현한 것은 그만한 마태적인 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모세가 율법을 받을 때, 시내산에 올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사실과 대비하면서, 예수님께서 모세가 받은 율법을 폐하려 오신 분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려 오신 분임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낮은 언덕이지만 굳이 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 말씀을 전파하신 예수님(1b-2)

산상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까지 실천하도록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하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자녀들은 어떻게 하면 복을 누리를 수 있는지를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실천해야할 것을 가르치기 전에, 하늘나라에 속한 자의 복을 8가지로 선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8가지 복은 세상에 말하는 기준과는 전혀 다른 기준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좇는 사람들 중에는 두 가지로 분류 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좇는다고 해서 모두 주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무리와 제자의 주된 관심이 달랐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의 능력에만 관심을 기우렸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마음을 두었습니다.

 

천국 시민으로서 자세(3-12)

세속적으로 가득 찬 사람들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들어설 여지가 없습니다. 의지할 만한 소유가 없어 하나님께만 호소하는 심령,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탈취당하고 슬퍼하는 자, 억압과 착취로 가진 것이 없어 하나님만 겸허히 바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이미 천국에 들어온 자이고 죄와 고통이 제거된 세상에서 위로를 얻고,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누릴 것입니다.

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4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6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7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8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9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10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3-12)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보고 산에 올라 가르치십니다(1). 산상설교의 말미에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모래 위에 집을 쌓은 어리석은 사람처럼 무너진다(7:24-27)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산상설교는 실천하도록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 백성이 실천해야 할 일을 가르치기 전에 하늘나라에 속한 자의 복을 여덟 가지로 선언하십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3)

첫째,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복됩니다(3). 예수님께서는 심령이를 붙여서 마음의 상태나 태도가 가난한 것을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상태는 고통을 겪는 자들의 낮아진 모습,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이사야 61:1의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이 부서지고, 갇히고, 애통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마음이 파산한 상태에서 하나님 앞에 서서 겸손하게 오직 주의 도움에만 의존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복을 구약에서 복음을 묘사하는 이사야 61장의 성취라는 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삶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메시아의 오심을 기다린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복된 사람들입니다. 땅의 관점에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고 목표를 이룰 만한 재화를 보유하고 있을 때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부와 지식(학벌)과 권력과 같은 것을 가지면 복된 사람으로 사회가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로 마음이 무너진 상태에서 겸손히 하늘 아버지께 의존하는 사람은 복되다 하늘나라가 아들을 통해 왔고 이 나라는 겸손한 자들의 것이기 때문에 이들은 하늘나라를 얻습니다.

(2) 애통하는 자(4)

둘째, 애통하는 자들은 복됩니다(4). 두 번째 복도 이사야 61장과 연결됩니다. ‘애통하는 자들은 이사야 61:2슬픈 자들’, ‘애통하는 자들입니다.

이사야 61:2-3에서 애통하는 사람들은 슬픔을 안겨다 준 고통의 세월을 보낸 포로 생활에서 귀환한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두 번째 복은 하늘나라의 도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포로 상태에서 하나님의 도움만을 간절히 구하면서 애통하던 조상들이 하나님의 구원(또는 귀환하게 하심으로 위로를 받은 것처럼, 하나님의 위로를 기다리면서 울던 자들은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면 주의 배성이 복된 소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이사야의 약속(이사야 40:1-2; 57:18; 61:2; 66:13)이 예수님께서 가지고 오신 하늘나라를 통해 성취됩니다. 하나님의 도움만을 애통하며 기다린 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위로입니다. 이 땅에는 고통이 있고, 그래서 애통할 수밖에 없는 일이 생깁니다. 권력 앞에서 무력하거나, 소중한 사람이나 무엇을 잃어버렸거나, 자신의 죄를 깨달을 때 고통을 겪습니다. 땅의 관점에서 애통하는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 기에 복됩니다.

(3) 온유한 사람(5)

셋째, 온유한 사람들은 복됩니다(5). 그리스-로마문화에서 온유는 친절하거가 신사적인 태도를 의미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신적 속성을 반영하는 사람으로서 존경과 칭찬을 받았고 위대한 교사는 친절을 겸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온유로 번역된 세 번째 복의 프라위스를 구약과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유순한, 온유한 성품의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겸손한 낮은 자세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팔복의 구조에 따르면 첫 네 가지 복은 사람과 사람의 수평적인 관점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수직적인 관점에서 복된 상태와 관련이 있습니다. 세 번째 복의 구약 배경인 이사야 61:1-2, 시편 37:11, 모세의 온유를 언급한 민수기 12.3을 분석하면 아나브의 의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측면에서의 겸손한 태도를 가리킵니다. 온유한 자들이 땅을 얻게 된다는 말씀의 배경은 시편 37:11입니다. 시인은 악인이 잘되는 것과 비교해서 조바심을 내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도록 가르칩니다(3,4,5,7,34,39).

악인이 칼을 빼고 활을 당겨’(14) 선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지만 여호와를 의뢰하고(3), 여호와를 기뻐하고(4), ‘네 길을 여호와께 맡겨야합니다(5). 악인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모든 유혹의 짐을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을 신뢰하는(3) 사람은 잠잠히 기다릴 수 있습니다(7; 참조. 시편 62:1,5). 말하자면, 온유한 자들은 자기주장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를 신뢰하면서 인내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과 통치에 복종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11; 이사야 58:4, 22:26, 27:10). 예수님 당시의 쿰란 공동체도 시편 37편의 온유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성품으로 이해했습니다. 덧붙여서, 흔히 모세의 온유함을 세 번째 복의 근거로 삼는 경우가 있습니다. 민수기 12장의 문맥에서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비참하게 낮아진 존재입니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서 끊임없이 공격받고 이제는 형제와 자매에게서 비난을 받는 안타까운 처지에 이릅니다. 지상의 누구보다도 낮아진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불쌍하고 낮아진 모세의 태도는 하나님을 향해 겸손하고 의지하는 태도가 됩니다. 정리해보며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낮아지고 가난하고(불상하고) 무력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이런 사람은 원하는 때에 원하는 방식으로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주변 여건이 자신의 기대와 다르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인내하며 하나님의 간섭과 섭리에 인생을 맡깁니다. 세상에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온유한 사람을 보고 복되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온유하게 인생을 맡기는 사람은 약속을 얻게 될 것입니다!

(4) 의를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자(6)

넷째, 의를 배고파하고 목말라하는 자들은 복됩니다(6). 여기서 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3:15, 6:33),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뜻합니다. 배고픔과 목마름은 하나님의 구원을 갈망하는 표현입니다. 의로운 백성은 주리거나 목마르지 않게 해주실 긍휼의 하나님께 구원과 해방의 소망을 두었습니다(이사야 49:10; 65:13; 참조. 아모스 8:11; 잠언 9:5). 불의의 세상에서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개입을 갈망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5) 긍휼을 베푸는 자(7)

다섯째, 긍휼을 베푸는 자들은 복됩니다(7). 긍휼은 율법의 정신으로서 하늘나라 복음의 특징입니다(9:13; 12:7). 긍휼을 베풀어 야 하는 대상은 공동체 내부(18:23-34)와 소외되고 죄 많은 외부인들(9:10-13)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푼 손길을 반드시 기억하고 보상하십니다. 종말론적으로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심판의 잣대는 긍휼을 베푼 여부이므로 긍휼을 베푼 이들은 긍휼을 얻습니다(25:39-40). 특히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서도 불쌍히 여기는 인생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런 삶이 옳다고 인정하십니다.

(6) 마음이 깨끗한 자(8)

여섯째, 마음이 깨끗한 자들은 복됩니다(8). 마음의 청결이나 순수는 진실함, 곧 거짓과 반대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8절의 배경인 시편 24:4-6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며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자는 손을 깨끗하게 하고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합니다. 이는 이웃을 순수하고 신실하게 대하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사람을 선하게 대하면 하나님을 만날 것이 기에 복됩니다.

(7) 화평케 하는 자(9)

일곱째,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땅에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불릴 것이 기에 복됩니다(9). ‘-의 아들은 어떤 대상의 성품이나 성향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8:12; 9:15; 13:38; 23:31). 평화는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에(레위기 26:6; 민수기 6:26; 시편 28:11; 34:14). 평화의 사람은 최고의 영예인 하나님의 자녀로 불립니다.

(8) 핍박을 받는 자(10)

여덟째, 하늘나라의 자녀로 사는 자들에게는 예수님 때문에 땅의 세력이 주는 핍박이 뒤따르기 마련입니다. 핍박은 현재 하늘나라에 소속돼 있다는 증거이기에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표현이 뒤따릅니다. 11-12절은 여덟 번째 복의 확장으로서 13절과 연결시킵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은 제자들의 아버지가 되시고 현재의 질서가 역전될 것이기에 그들은 복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다른 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기독교가 기복주의로 치닫는 현실을 보며 안팎으로 자성과 비난의 소리가 커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기복주의는 종교적 명분을 가장한 세속주의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하지만 원래 기독교는 복을 추구하는 종교입니다. 문제는 복의 내용이지 복을 주관하는 그 자체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은 세상 나라 사람들이 추구하는 복과 다른 이 세상 나라의 가치를 정복하는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추구하는 복을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누리는 이 복은 이 세상 나라 가치관과 질서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요, 뒤바뀜이며 인간의 죄가 낳는 부당한 고통과 억압에 대한 도전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추구하는 복을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서 말하는 복을 살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말하는 이 팔복의 의미가 이 땅의 가치가 아니라 저 하늘나라 가치란 것을 깨닫고 이 땅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그런 자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이 복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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