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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02-01)


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요나

요나서 2장 1-10절


인간은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께 순종하기보다 방종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요나도 자신의 고집을 내세워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했습니다. 인간은 애석하게도 자유를 잃고 고난을 당한 후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께 순종합니다. 이것이 고난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요나가 바다에 내던져지지만, 그의 의도대로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려 요나의 도주를 막으셨던 여호와께서 이번에는 ‘큰 물고기’를 준비해 요나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가 제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죽음의 영역에 떨어지지만, 완전히 죽음에 넘겨지지는 않습니다. 요나는 스올의 뱃속에서 그가 멀리하려 했던 여호와를 다시 만납니다.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하는 요나(1)

믿음의 회복은 인생의 회복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는 소망의 줄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 벼랑 끝에서 우리를 독수리처럼 날아오르게 하십니다. 요나의 물고기 뱃속은 아무런 희망도 없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요나는 먼저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고 합니다.

1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1)

구약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역 전통에 따라 1장 마지막에 자리한 1:17은 히브리어 성경의 전통에 따라 2장의 처음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 좋습니다.

요나는 이전에는 하나님을 떠나려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임재의 자리를 회피했습니다. 요나의 자리가 큰 폭풍으로 거의 부서지게 된 배에서 다시 잔잔해진 바다의 물고기 뱃속으로 바뀝니다. 배는 여호와를 피해 도주하는 요나가 선택한 수단이고, 물고기는 바다에 빠진 요나를 위해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그분의 도구입니다. 요나의 자리만 바뀐 것이 아닙니다. 배에서 물고기 뱃속으로 옮겨지면서 요나도 바뀝니다.

요나는 사흘 낮과 사흘 밤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며,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배에서는 끝까지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맞서던 요나가 마침내 여호와를 바라봅니다. 여호와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도망하려던 요나가 그분께 가까이 나아갑니다. 위기의 순간에도 기도하는 사람은 살아납니다. 완악함과 불순종의 요나가 여호와의 은혜로 기도와 순종의 요나로 바뀌고, 자신의 생각과 신학으로 여호와를 통제하려 했던 요나가 그분의 주권과 구원 능력을 온전히 받아들입니다. 요나는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물고기 뱃속에서 새사람으로 거듭납니다. 기도는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는 요나(2-9)

하나님께서는 서원에 따라 드리는 제사보다 진정한 회개와 순종의 결단을 바라셨을 것입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에게는 수많은 생각이 밀려옵니다. 수많은 방법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놀라운 생각들이 가득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 놀라운 응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2-9)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합니다. 생각 없이 사는 것도 문제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도 문제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생각 속에서 우리가 은혜는 좋아하면서 감사에는 인색합니다.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은혜를 주십니다.

(1)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2-4)

고난이 찾아왔을 때 요나는 기도했습니다. 2절은 요나의 전체 기도의 요약이자 핵심입니다. 요나는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2)라고 말합니다. 죽음의 위협 아래 놓였던 요나는 응답하시는 여호와를 경험합니다. 겁에 질린 선원들의 부르짖음에 침묵하는 이방신들(1:4)과 달리, 다른 한편으로는 당신께 부르짖는 선원들의 간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신 것처럼 (1:14-15),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1:9) 분께서는 당신을 찾는 부르짖음에 귀를 기이시고 응답하십니다.

“스올의 뱃속”은 요나가 이미 삶의 영역에서 죽음의 영역으로 옮겨졌음을 시사해줍니다(참조 사 38:10). 요나가 처한 고난은 용기 내거나 애써서 벗어날 수 있는 고난이 아닙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멸망으로 끝나는 고난입니다.

“부르짖었더니”의 동사 ‘샤와’는 도움을 구하는 외침을 가리킵니다(시 5:2; 18:6; 22:24; 30:2 등). 요나는 자신이 받는 고난이 여호와에 의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여호와께서 요나를 바다 한가운데 깊은 곳에 던지셨을 뿐만 아니라, 큰물에 에워싸인 요나 위로 파도와 물결이 넘치게 하셨습니다(3). 자신을 던지는 주체가 여호와임을, 더 나아가 바다에 빠진 자신의 생명을 위협한 “파도와 큰 물결”마저 그분께서 보내신 것임을 분명하게 말합니다. 1:15에 따르면 선원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렇다고 선원들만의 결정은 아닙니다. 선원들이 요나를 던지자 여호와의 “큰 바람”이 일으킨 “큰 폭풍”으로 성난 바다가 잔잔해졌음은 저들의 결정이 여호와의 뜻이었음을 시사합니다. 요나의 주장이 책임 전가처럼 보이지만 이는 피상적 이해로, 현재 문맥에서는 기도의 동기로 작용합니다. 여호와께서 고난의 원인자이시기에 여호와만이 요나를 도울 수 있고, 그래서 요나는 여호와께 도움을 청한다. “깊음”(출 15:5;시 68:22: 69:2,15; 88:6; 107:24)과 “바다”는 생명과 질서를 위협하는 혼돈의 세력으로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여호와만 통제하실 수 있습니다.

4절은 고난 중에 있던 요나의 이전 기도의 인용입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목전, 곧 그분 성전에서 쫓겨났지만, 구원의 기대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전을 다시 바라보게 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이지 않게 현존하시는 장소이라는 점에서 “주의 성전”과 “주의 목전”(문자적으로, ‘당신의 눈앞’)은 동격입니다. 3절의 ‘여호와께서 던지심’과 내용상 일치하는 ‘여호와의 목전에서 쫓겨남’은 고난으로 귀결되고, 2절의 ‘여호와께 부르짖음’과 내용상 일치하는 ‘성전을 바라봄’은 구원과 회복(고난에서 벗어남)으로 구체화 됩니다. 1:3에 따르면 요나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다시스로 도망을 시도합니다.

(2)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5-7)

회고적 인용 다음에 나오는 5-6절은 표현과 내용에서 3절에 가깝습니다. 장면이 다시 바다로 바뀌고, 요나의 고난이 깊은 물에 빠져 죽어가는 자의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물은 목구멍까지 차올랐고, 바다의 풀은 머리를 휘감았고, 심연이 에워쌉니다(5).

허우적거릴수록 더 깊이 빠져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 빗장이 걸린 지하세계에 갇힙니다(6). 고대 우주관에 따르면 큰 산은 바다 밑바닥까지 그 뿌리를 내리고 있고, 지하세계는 대문과 빗장이 갖춰진 성곽과 같아 한번 들어가면 다시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1장의 주요 모티브인 ‘바다’와 ‘내려감’이 2장에서도 계속 사용됩니다. ‘여호와께로부터 멀어짐’과 관련한 요나의 도피는 수평적이며 동시에 수직적입니다. 요나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동쪽의 니느웨로 가지 않고 그 반대편인 서쪽 땅 끝의 다시스로 도망합니다. 또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피해 거듭 아래로 내려갑니다. 욥바로 ‘내려간’ 요나는 배로 ‘내려가’(1:3) 그 밑창으로 ‘내려간다’입니다(15). 바다에 던져진 요나는 허우적거리다가 바다 밑 산의 뿌리까지 ‘내려가’ 빗장이 쳐진 지하세계에 갇힙니다(6a). ‘내려감’이 죽음과 심판의 길이라면 ‘올라감’은 생명과 구원의 길입니다. 죽음이 이미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을 때 여호와께서 개입하십니다. 그분께서 요나를 구덩이에서 건져 올리십니다(6).

7절은 2절과 4절의 중심 단어인 ‘기도’와 ‘성전’을 받아 요나의 입장에서 구원 경험을 기술합니다. 생명력이 거의 사라졌을 때 요나는 여호와를 기억합니다. ‘여호와를 기억하다’는 신뢰와 고백의 표현입니다. 여호와의 기억이 요나가 여호와께로 나가도록 이끕니다. 요나의 기도가 여호와께, 그분의 거룩한 성전에 다다릅니다.

(3)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8-9)

8절의 우상숭배에 대한 비판은 감사 예배에 참여한 자들에게 주는 말입니다. 우상숭배자들은 여호와께서 베푸신 은혜를 저버리는 자들입니다. 요나의 말은 권면보다는 경고 또는 고발에 가깝습니다.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비판은 예언자들의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지만, 요나의 고난과 아무 관련이 없기에 그의 고발성 경고는 감사기도의 문맥에서 매우 돌출적입니다. 더 넓은 문맥을 내다보는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자들을 비판하는 말이지만,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이방인과 다르지 않기에 이방인들에게로 확장이 가능합니다. 여호와께 맞서다가 그분의 은혜로 구원받지만, 요나의 시각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함을 시사해줍니다.

요약하면, 우상숭배자들에 대한 요나의 고발성 경고는 4장의 여호와와 요나의 충돌을 예비해줍니다. 1장과 3장의 이방인들에 대한 긍정적 전망과 요나의 이스라엘 중심적 시각이 긴장 속에 공존하다가 4장에서 파열음을 내며 맞부딪칩니다. 요나의 감사기도가 선원들의 구원 이야기와 유사하게 끝을 맺습니다. 요나의 개인적 구원 경험을 고백적-교리적으로 집약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를 제외하면 10절은 대체로 1:16을 반복합니다. 큰 폭풍에서 구원받은 선원들이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서원했던 것처럼 바다 밑바닥까지 내려갔다가 구원을 받은 요나도 감사기도와 함께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며 서원을 갚겠다고 약속합니다. 1장에서 대조적이었던 이스라엘사람 요나와 이방 선원들의 모습이 2장에서는 자주 중첩됩니다.

 

요나를 구해주신 여호와(10)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도하지만, 주의 뜻대로 구하지 않은 기도가 응답 되는 것만큼 큰 불행은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기도 응답을 구하기 전에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인지를 살피는 것이 더 우선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10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10)

요나의 도피로 발생한 사건이 끝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난 요나가 죽음의 영역에서 생명의 영역으로 옮겨집니다. 물고기를 준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던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셔서 요나를 육지에 뱉어내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명령을 거절했던 요나가 죽음의 바다에 빠졌다가 기도에 응답하시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의 은혜로 원래 있어야 할 육지로 다시 돌아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1:2)는 여호와의 명령이 실행될 여건이 다 마련됩니다. 선원들이 먼저 인정했듯이(1:14) 여호와께서는 당신 뜻대로 행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상황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을 생각하시길 바랍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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