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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4-01)

 


형제들을 시험하는 요셉

창세기 44장 1-17절


창세기는 에덴의 시험으로 시작하여 아브라함의 시험으로 진행하다가, 요셉의 시험으로 마무리됩니다. 시험을 통해 확인하려는 바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대한 충성과 형제에 대한 사랑입니다. 이 시험에 합당하게 반응할 때 주의 뜻이 이뤄집니다. 요셉이 시험한 목적은 무엇입니까?

 

유다는 베냐민을 구하기 위해 전권을 쥐고 있는 절대 권력자 앞에서 탄원을 올립니다. 그가 쏟아내는 절실한 호소부탁은 창세기에서 가장 긴 연설입니다. 이것은 또한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인 발언으로 꼽힙니다. 유다는 분명 베냐민을 사랑하지만 그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염려를 거듭 표현합니다. 그의 긴 타원에서 유다는 열네 번이나 아버지를 언급하여 아버지에 대한 그의 절박한 마음을 드러냅니다.

 

요셉의 두 번째 누명 씌우기(1-5)

우리도 우리 가족의 영적인 힘을 강화시킬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을 드려 가족이 영적으로 더욱 강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먼저는 하나님께 신실한 자들이 되어야겠습니다.

1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1-5)

요셉은 청지기에게 각자의 자루에 지불한 대금의 정량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곡식을, 자루가 다 찰 때까지 담도록 지시합니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그 대금을 자루에 숨기라고 말합니다. 정확히는 ‘자루 어귀’에 넣으라는 지시입니다. 첫 번째 방문에서 은전 뭉치를 자루에 감출 때는 자루 어귀에 넣었다는 언급이 없습니다(창 42:25). 23절에 이때는 청지기가 땅속에 숨겨놓는 보물처럼 자루 깊숙이 은전 뭉치를 넣어 두었기에 형제들은 집에 도착해서야 그것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하나는 자루 어귀에 넣어 두었기에 여관에서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청지기의 실수였거나 아니면 어떤 의도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요셉이 베냐민의 자루에 넣으라 지시한 은잔은 매우 특별한 물건이다. 큰 호의를 베푼 주인의 귀중한 보물을 훔쳐가는 것은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최상의 대접에 대한 최악의 배신이다. 이 모든 것은 요셉이 베냐민을 향한 형제들의 애정을 시험하기 위함입니다. 청지기는 요셉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형제들은 기쁜 마음으로 기상했을 것입니다(3). 만사가 잘 풀렸습니다. 그들은 모든 범죄 혐의를 벗었으며 염려했던 베냐민도 무사하고 시므온도 되찾았습니다. 넉넉한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형제들은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을 향해 즉시 길을 떠났습니다. 요셉은 다음 작전을 착수합니다. 청지기에게 그들을 뒤따라가 절도범으로 체포해 오도록 지시합니다.

요셉은 해야 할 말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합니다(4-5). 너희는 선을 악으로 갚은 배은망덕한 자들이며, 또한 주인님이 늘 점을 치는데 사용하는 은잔을 훔쳐 간 중범죄자들입니다! 고대 애굽과 근동 지역에는 다양한 점술 방법이 있었는데, 그중에 잔에 액체를 붓는 방식의 점술인 물점(hydromancy, 기름에 물을 붓는 점), 기름점(oelomancy, 물에 기름을 붓는 점), 그리고 술점(oenomancy, 포도주를 다른 술에 붓는 점)이 있었습니다.

만일 애굽 총리가 특수한 은잔을 사용해서 물점이나 술점을 봤다면 대단히 중요한 물건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은잔을 점술용 잔으로 둔갑시킨 것은 단순히 책략의 일부라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사실은 하나님의 지혜의 영이 임한 요셉은 은잔이나 다른 방식의 점술 행위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베냐민의 짐에서 발견된 은잔(6-13)

시험을 통해 과거에 덮어두었던 죄를 직면하게 됩니다. 요셉의 시험에는 의도가 있었습니다. 지금 어려운 시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시험 가운데서도 자신의 생명이 보존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변화되길 기대하고 계십니다.

6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 가서 그대로 말하니 7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 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 가니라(6-13)

청지기는 요셉의 지시를 따라 그들에게 은잔을 훔친 절도 혐의를 씌웁니다. 그들은 최상의 대접을 받고 행복감에 젖어 귀향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습니다. 뒤따라온 청지기가 자신들을 다시 절도범으로 몰고 있다. 형제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정직한 사람들인지를 설명합니다. 자신들은 딸려온 거액의 돈 뭉치를 다시 되돌려준 정직한 사람들입니다(8). 그들은 우리가 절도범으로 확인되면 중벌에 처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무고함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시므온을 구출하고 식량을 사러 왔는데 스스로 화를 자초할 그런 범죄를 저지를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서로에 대한 믿음의 표현이기도 하다. 형제들은 은잔이 확인된 사람은 누구든 사형에 처할 것이며, 자신들은 모두 스스로 종이 되겠다면서 무죄를 장담합니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고대 근동의 율법은 절도범에게 사형을 구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사례는 총리의 귀중품을 훔친 배은망덕한 대역죄에 해당하므로 사형이 마땅합니다. 청지기는 형제들이 성급히 제안한 형벌을 낮추어 범인만 종이 될 뿐이며, 그들은 면책될 것이라고 약속한다. 무죄를 확신한 형제들은 즉시 자루를 내려놓고 풀어서 청지기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첫 번째 방문에서와 같이 자신들의 자루에서 또 다시 출처 불명의 돈뭉치가 나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품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큰소리와 짐 수색에 대한 즉각적인 협조는 미리 자신들의 무고함을 항변하기 위한 행동일 수 있습니다. 청지기는 그들의 짐을 뒤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형제들의 나이 서열대로 집을 점검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형제들이 놀랐다는 말이 없습니다. 이것은 아마 그가 형제들의 짐을 정확한 나이 서열대로 수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청지기의 의도는 막내 베냐민의 자루 검사를 마지막 순서에 두는 데 있기에, 그는 대충 연장자 순으로 조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이 발견되었습니다. 형제들은 충격과 비통함으로 옷을 찢는다.많은 비평학자들이 자루 수색에서 발견되어야 할 은전 뭉치가 전혀 언급되지 않는 것은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는 2절의 진술과 모순인 이유로 그것을 삽입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현재 서사의 초점은 은잔에 있기 때문에 은전 뭉치와 관련된 이야기는 무시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저자는 각자의 자루 입구에 놓인 은전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는 공백으로 처리합니다(44:1). 왜냐하면 그 일은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 은잔의 출현으로 가려지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짐을 나귀에 싣고 요셉이 거하는 성으로 돌아갑니다(13).

 

형제들을 구하기 위해 나서는 유다(14-17)

우리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자주 서로 용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끼리 저지른 죄에 대해 상호 고백해야 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백해야 합니다. 요셉이 했던 것처럼 가족들로 하여금 자백하고 회개하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14유다와 그의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이르니 요셉이 아직 그 곳에 있는지라 그의 앞에서 땅에 엎드리니 15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행하였느냐 나 같은 사람이 점을 잘 치는 줄을 너희는 알지 못하였느냐 16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17요셉이 이르되 내가 결코 그리하지 아니하리라 잔이 그 손에서 발견된 자만 내 종이 되고 너희는 평안히 너희 아버지께로 도로 올라갈 것이니라(14-17)

유다와 형제들은 요셉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유다를 형제들의 지도자로 앞세우기 시작합니다. 이는 유다가 아버지에게 베냐민을 위한 희생을 약속했기 때문입니다(43:9). 형제들이 보기에 요셉은 분노하여 범인이 체포되어 돌아오길 기다리는 중입니다. 그들은 즉시 요셉 앞에서 엎드립니다. 베냐민을 책임지기로 했던 유다가 요셉에게 자비를 호소하기 위해 전면에 나섭니다. 요셉은 그들을 절도범으로 몰아붙이며 문책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점술 행위를 크게 강조합니다.

15절의 ‘점을 잘 치는’이란 표현에 대해 많은 주석가들과 번역들이 이것을 요셉이 ‘훌륭한 점쟁이’(good diviner)이거나, 그가 점을 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로 번역합니다(NIV; ESV; RSV), 요셉은 자신이 점을 쳐서 절도범을 알아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을 제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점을 잘 친다’의 히브리어는 5절과 동일한 부정사 절대형의 강조 용법 구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요셉이 점을 잘 친다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점치는 행위를 했다는 뜻일 것입니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직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국가 대사를 위해 자주 점을 친다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중요한 점술 도구인 은잔을 훔쳐 달아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요셉의 점술이 사실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는 점술을 멀리하는 요셉이 연극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유다는 명확한 물증 앞에 더 이상 변명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것을 자신들의 범행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인정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억울함과 무고함을 호소합니다. 그러나 유다와 형제들은 이미 체념했습니다. 유다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앞서 청지기는 그들에게 딸려온 돈 뭉치가 하나님의 선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에게서 은잔이 발견된 것은 하나님의 징벌이 아닙니까? 어쩌면 그의 말에는 암묵적으로 그들이 감추었던 요셉에 대한 범죄를 하나님께서 결국 찾아내시어 자신들이 벌을 받게 되었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지 모릅니다. 유다는 자신들이 모두 총리의 종이 되겠다며 스스로에게 형벌을 선고합니다. 이것은 재판관의 선처를 바라는 피고인의 반성의 태도와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강한 어조로 청지기가 경고했던 벌을 다시 낮추면서 은잔을 훔친 범인만 남고 나머지는 아버지가 계신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이것은 물증이 드러난 범인들에 대한 상식적인 조치가 아닙니다. 요셉은 지금 베냐민을 향한 형제들의 사랑을 검증하기 위한 마지막 시험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체의식과 공감능력은 공동체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형제의 아픔을 함께 책임지고 통감하려는 태도는 성숙한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크고 작은 어려움을 통하여 시험받습니다. 어떤 반응으로 응답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은 다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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