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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38-02)


자연을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나님

욥기 38장 19-38절


 

계몽주의 이래로 인간의 지식은 놀랍도록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과학 기술의 발전은 눈부실 정도입니다. 과학은 이제 종교와 심리적인 문제까지 뇌 공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인간 이성으로 모든 것이 해명되고 해결될 수 있습니까? 고통과 죽음의 문제에 과연 답할 수 있습니까? 인간이 구원에 이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하십니다. 여기서는 높은 곳인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질문하십니다. 빛과 어둠의 문제, 비와 눈과 우박 등 물의 변화를 통한 기후의 문제, 천체의 운행 문제 등에 대한 질문을 통해 하나님만이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자 통치하시는 분이며, 인간은 이런 부분을 조금도 알 수 없고 관여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십니다.

 

빛과 어둠의 관계에 대한 질문(19-21)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욥에게 하늘이 어떤 원리로 유지, 운영되는지 알고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떤 원리로 운영하고 계시는지를 배울 수도 있습니다.

 

19○어느 것이 광명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어느 것이 흑암이 있는 곳으로 가는 길이냐 20너는 그의 지경으로 그를 데려갈 수 있느냐 그의 집으로 가는 길을 알고 있느냐 21네가 아마도 알리라 네가 그 때에 태어났으리니 너의 햇수가 많음이니라(19-21)

 

세상의 가장 깊은 곳인 스올에 대해 질문하셨던 하나님께서 관심을 돌려 이번에는 하늘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질문하십니다. 19절에서는 빛과 어둠의 집이 어디에 있으며,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를 알고 있냐고 물으십니다. 이 당시 세계관에 따르면 땅 끝에는 두 개의 방이 있는데, 동쪽에는 빛을 위한 방이 있고, 서쪽에는 어둠을 위한 방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태양은 자신의 처소를 나와 하늘을 가로지르는 여행을 함으로써(시 19:4-6) 세상을 다스리다 밤이 되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그의 처소로 돌아가고 그 후에 어둠이 나와 세상을 다스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물론 인간은 빛과 어둠의 처소가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20절에서는 그래도 혹시 어디에 있는지 안다면, 그들의 집으로 그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지 그들의 집으로 가는 길은 알고 있는지 묻습니다. 태양과 어둠이 정확히 어떤 경로로 움직이는지 아느냐고 물으십니다. 실제로 태양은 날마다 조금씩 다른 경로로 움직이며, 현대 과학은 태양의 경로를 알고 있고 예측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으로도 태양(혹은 지구)을 경로대로 움직이게는 할 수 없습니다. 태양을 움직이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욥의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그런데 21절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너는 창조 당시에 태어났으며 나이가 많으니 알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며 비아냥거리십니다. 이것은 그동안 욥이 자신에게 지혜가 있다고 친구들에게 끊임없이 항변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입니다. 그동안 있었던 욥의 항변이 하나님 입장에서 볼 때는 너무나 가소로운 것입니다. 물론 욥뿐만 아니라 욥의 친구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지어 엘리바스는 15:7-9에서 자신이 나이가 많기 때문에 지혜롭다고 말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지혜와 연륜은 매우 미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십니다. 이것은 또한 지혜나 연륜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와 연륜이 있다고 자랑해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모두 ‘도토리 키 재기’라는 것입니다.

 

비와 눈의 근원에 관한 질문(22-30)

우리는 하늘의 기상현상을 비롯한 모든 자연의 재앙과 축복이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움직임 앞에 사람은 아주 미약한 존재일 뿐입니다. 인간은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재앙 앞에 너무나 취약하기에 하나님이 지켜 주지 않으신다면 그 역사가 끝나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매일의 일상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립시다.

 

22네가 눈 곳간에 들어갔었느냐 우박 창고를 보았느냐 23내가 환난 때와 교전과 전쟁의 날을 위하여 이것을 남겨 두었노라 24광명이 어느 길로 뻗치며 동풍이 어느 길로 땅에 흩어지느냐 25○누가 홍수를 위하여 물길을 터 주었으며 우레와 번개 길을 내어 주었느냐 26누가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며 27황무하고 황폐한 토지를 흡족하게 하여 연한 풀이 돋아나게 하였느냐 28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29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 30물은 돌 같이 굳어지고 깊은 바다의 수면은 얼어붙느니라(22-30)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는 기상 변화들에 대해 질문을 하십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당시 세계관에 따르면 하늘에는 눈이나 비 혹은 우박 등을 위한 방들이 있으며, 필요한 때에 이 방의 문을 열어 비나 우박 등을 내리신다고 여겼습니다. 21절은 이런 관점을 아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 눈과 우박을 방에 보관하시는 이유를 심판과 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께서 친히 전사로 싸우시는 여호와 전쟁에서 비와 우박은 종종 하나님의 무기로 등장하는데, 여호수아 10:11의 기브온 전투나 사사기 5:20 므깃도 전투에서 이런 예들을 볼 수 있습니다. 24-25절은 길을 나누는 것이 공통적으로 등장하며, 서로 대구를 이루는데, 광명은 번개로 구체화하면서 번쩍이는 형태를 길을 나누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리고 동풍과 홍수는 모두 심판을 의미하는데 동풍은 뜨겁고 건조한 바람으로 모든 식물을 말려버립니다. 그리고 용수는 이와 반대로 엄청난 물로 생명체에게 치명상을 가하는 것입니다. 26-27절에서는 앞과는 대조적으로 완전히 불모지가 된 곳을 풍성한 비로 회생시키시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누가 세상에 비를 내리고 안 내리는 것으로 장을 심판하거나 축복할 수 있느냐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가뭄과 비와 우박 등 기상을 완전히 통제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8-30절은 물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비, 이슬, 없음, 서리 등을 통해 물을 다양하게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8-29절에서 ‘낳다’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고대 근동 신화에서 자연물은 모두 신들의 자손들로서 계보가 있다는 사상에 대해 반대하며, 모든 것이 오직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이 자연의 많은 부분들을 극복하고 두려움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비와 가뭄, 홍수, 우박 등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조종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란 사실은 우리에게 경외감과 자부심을 줍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바로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갖고,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할 것이며, 또 한편으로는 홍수나 우박 등 자연 현상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도 잃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문에 관한 질문(31-33)

인간이 당연시하는 영역에서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최근 과거에 누렸던 일상이 사라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이전에는 당연했던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천체를 운행하시면서도 또한 우리의 일상을 운행하고 보호하십니다. 우리가 대일 식사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도 바로 그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31○네가 묘성을 매어 묶을 수 있으며 삼성의 띠를 풀 수 있겠느냐 32너는 별자리들을 각각 제 때에 이끌어 낼 수 있으며 북두성을 다른 별들에게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 33네가 하늘의 궤도를 아느냐 하늘로 하여금 그 법칙을 땅에 베풀게 하겠느냐(31-33)

 

31절부터는 천문에 관한 질문인데 고대 사회에서는 별의 운행이 기상과 인간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였기에 천문학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별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박사들도 천문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었습니다. 인간사에 관한 천문학은 벌어진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에 대해 주로 연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님의 질문은 좀 더 근원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묘성의 띠를 묶고 삼성의 띠를 묶는다는 것은 별자리를 만들었다는 의미이고, 북두성과 열두 궁성을 이끈다는 것은 이 별자리들이 현재의 궤도를 따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네가 이런 것을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인간들이 연구하는 그 천문학의 법칙이 땅을 지배하게끔 할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결국 이런 질문을 통해 천체를 만드시고, 그 원리들을 세상에 알려주는 것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는 인간의 모든 학문적 기원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학문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께서 만들어내신 원리들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세계를 좀 더 잘 관리하여 사람들 특히 약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일 것입니다.

 

비를 내리는 것에 대한 질문(34-38)

우리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기적과도 같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가 먹고 입는 것들과 몸을 누일 수 있는 자리가 주어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께 감사하며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기억하며,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4○네가 목소리를 구름에까지 높여 넘치는 물이 네게 덮이게 하겠느냐 35네가 번개를 보내어 가게 하되 번개가 네게 우리가 여기 있나이다 하게 하겠느냐 36가슴 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 수탉에게 슬기를 준 자가 누구냐 37누가 지혜로 구름의 수를 세겠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이겠느냐 38티끌이 덩어리를 이루며 흙덩이가 서로 붙게 하겠느냐(34-38)

 

또다시 비의 주제가 등장하는데, 22-30절에서 나타난 비와 기상에 대한 질문이 관찰과 지식에 대한 질문이라면, 34-38절에서 나오는 것은 능력에 대한 질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비를 내리라’고 큰 소리로 명령을 하여 큰 비를 내릴 수 있냐고 물으십니다. 또한 35절에서는 번개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명령하며 네 부하로 부릴 수있냐고 물으십니다. 이렇게 철저히 인간의 무능함을 지적하신 후에 36-38절에서는 이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음을 네 개의 질문을 통해 밝히고 있습니다.

36절에서 ‘가슴속의 지혜는 누가 주었느냐’는 질문은 욥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지혜도 실상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수탉에게 주어진 슬기는 말하자면 새벽이 오면 어김없이 꼬끼오 하고 우는 것인데, 이렇듯 모든 생명체에게 주신 지혜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또한 37-38절에서는 누가 구름을 셀 수 있느냐, 누가 하늘의 물주머니를 기울여 따를 수 있느냐는 물음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전능하심을 알려주심으로 욥이 인간의 전적인 무능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가르쳐 주십니다.


인간의 노력이 이룰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가진 능력과 성취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한된 범위 안에서입니다. 우리는 인간 한계를 넘어서는 영역의 신비와 섭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불가항력의 이들은 자비롭고 선하신 하나님꼐 믿고 맡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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