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역대하(완료)

역대하(30) - 역대하 22장 1-12절 - 아달랴의 학살과 여호사브앗의 믿음

백의종군 2025. 7. 24.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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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22-01)


아달랴의 학살과 여호사브앗의 믿음

역대하 22장 1-12절


 

오늘 우리는 우리가 어떤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이 우리 삶의 방향을 어떻게 결정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변의 잘못된 조언이나 그릇된 관계가 예상치 못한 위험으로 우리를 이끌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암울한 시대에도, 올바른 가치를 지키고 조용히 희망을 키워나가는 이들의 노력이 새로운 시작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우리의 현재 선택과 신념을 지키는 용기는 미래의 모습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 이러한 지혜를 함께 나누며 우리의 삶을 성찰해 봅시다.

 

  • 유다와 아합 집의 결속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진노를 사 다윗 왕조의 몰락을 예고했으나,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에 다윗 왕가와 유다 나라를 보존하십니다. 아하시야는 아버지 여호람과 마찬가지로 아달라의 영향력 속에 아홉 잡한 조언들을 받아들입니다. 그의 어머니 아달라는 유다에 남은 다윗의 후손을 진열하고 왕국을 손에 쥐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아스를 기적적으로 살려두어 다윗과의 약속을 계속 지켜나가십니다.

 

아하시야 왕의 악행(1-4)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조언을 받아들이고 누구의 영향력을 따를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합니다. 특히 중요한 위치에 있거나 리더 역할을 맡게 될 때, 주변의 그릇된 조언은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쉽거나 익숙한 길이라 할지라도 그릇된 방식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용기에서 나옵니다.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고 잘못된 기대에 부응하는 것은 결국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따라서 지혜로운 판단과 행동으로 우리의 삶에 긍정적인 흔적을 남기고 다음 세대에게 바람직한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1예루살렘 주민이 여호람의 막내 아들 아하시야에게 왕위를 계승하게 하였으니 이는 전에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와서 진을 치던 부대가 그의 모든 형들을 죽였음이라 그러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더라 2아하시야가 왕이 될 때에 나이가 사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일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달랴요 오므리의 손녀더라 3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 행하였으니 이는 그의 어머니가 꾀어 악을 행하게 하였음이라 4그의 아버지가 죽은 후에 그가 패망하게 하는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여호와 보시기에 아합의 집 같이 악을 행하였더라(1-4)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을 따르던 유다의 여호람 왕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유다의 여섯째 왕으로 등극했습니다(주전 841년). 아하시야 왕은 '여호아하스'라고도 불렸으며(대하 21:17), 성경에 따르면 42세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1년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주전 841년). 다만, 42세라는 나이는 그의 아버지 여호람보다 나이가 많은 결과가 되므로, 일부 주석에서는 22세로 번역되기도 합니다(2). 그의 어머니는 아달랴로, 북이스라엘 왕 오므리의 손녀이자 악명 높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아하시야가 왕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막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라비아 사람들과 함께 온 블레셋인 등 이방 세력의 침략 시 그의 형제들이 모두 살해당했기 때문입니다(대하 21:13-14,17).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죽음은 아버지 여호람의 우상숭배와 자신보다 더 선한 동생들을 진멸한 행위(대하 21:4)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나아가 아하시야의 형제들은 아버지처럼 아달랴의 영향으로 바알을 숭배하고, 성전을 훼손하며 성물을 바알에게 바치는 등 배역의 죄를 저질렀습니다(대하 24:7). 따라서 그들의 죽음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배역의 대가이기도 했습니다(대하 24: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람의 아들들을 진멸하는 중에도 아하시야를 살려두심으로써 다윗 왕가의 등불을 완전히 끄지 않으셨습니다(대하 21:7). 하지만 아하시야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났음에도 불구하고 어리석게도 하나님을 버리고 아합 가문의 길을 따랐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달랴는 아하시야의 악한 행실에 자문관이 되어 계속해서 그를 악으로 이끌었습니다. 아하시야는 아버지 여호람이 창자병으로 고통스럽게 죽는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합 가문의 행실을 자문관으로 삼아 악을 저지르는 일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이전에 아사 왕은 태후 마아가가 우상을 숭배하자 그녀를 폐위하고 모든 우상을 부수어 우상숭배를 근절하려 노력했습니다(대하 15:16). 하지만 아하시야는 아사 왕이나 여호사밧 왕의 신실한 행위를 본받지 않고, 그의 아버지처럼(대하 21:6,13) 아합 가문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4).

 

아하시야의 죽음(5-9)

우리는 어떤 목적을 위해 타인과 연대하거나 특정 집단에 동참할 때, 그 관계가 초래할 위험을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그릇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의 유대 관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위험한 상황으로 이끌 수 있으며, 파국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순간의 이익이나 안이한 판단으로 형성된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며, 스스로의 파멸을 자초하게 만듭니다. 잘못된 선택은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동료, 더 나아가 속한 공동체 전체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며 광범위한 피해를 남깁니다. 결국 우리는 옳지 않은 길에 동조하거나 그런 세력과 엮였을 때 발생하는 모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면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5아하시야가 아합의 집의 가르침을 따라 이스라엘 왕 아합의 아들 요람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가서 아람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우더니 아람 사람들이 요람을 상하게 한지라 6요람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울 때에 라마에서 맞아 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더라 아합의 아들 요람이 병이 있으므로 유다 왕 여호람의 아들 아사랴가 이스르엘에 내려가서 방문하였더라 7○아하시야가 요람에게 가므로 해를 입었으니 이는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이라 아하시야가 갔다가 요람과 함께 나가서 님시의 아들 예후를 맞았으니 그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아합의 집을 멸하게 하신 자이더라 8예후로 하여금 아합의 집을 심판하게 하실 때에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의 형제들의 아들들 곧 아하시야를 섬기는 자들을 만나서 죽였고 9아하시야는 사마리아에 숨었더니 예후가 찾으매 무리가 그를 예후에게로 잡아가서 죽이고 이르기를 그는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던 여호사밧의 아들이라 하고 장사하였더라 이에 아하시야의 집이 약하여 왕위를 힘으로 지키지 못하게 되니라(5-9)

 

여호사밧 왕 시대부터 시작된 북이스라엘과의 교류는 아하시야 왕 때에도 지속되었으며, 이는 급기야 유다의 근간을 흔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아하시야 왕은 북이스라엘의 요람 왕과 함께 길르앗 라못으로 나아가 아람 왕 하사엘(주전 841-806년경)의 군대와 맞섰습니다. 이는 과거 여호사밧과 아합의 동맹군이 벤하닷과의 전투에서 패했던 전철을 밟아, 그 후손들이 길르앗 라못을 탈환하려 한 시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행보는 아합의 경우(왕상 22:33-34)처럼 죽음으로 귀결되고 맙니다.

이 전투에서 요람 왕은 길르앗 라못에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하시야 왕(대하 22:6, ‘아사랴’)은 요람을 문병하러 가게 됩니다. 아하시야 왕은 자신의 방문이 자신을 패망(7, ‘해’)으로 이끌 줄은 전혀 알지 못했으나,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7). 당시 하나님께서는 예후를 통해 아합 가문을 심판하시려 하셨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서가 아합 가문의 멸망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역대기서는 예후에 대한 설명을 간접적으로 언급할 뿐(7-8) 요람의 죽음(왕하 9:24)은 다루지 않고 아하시야의 몰락에 집중합니다. 예후는 아합 집안을 심판할 때 아합 가문뿐만 아니라 아하시야와 함께 온 유다 방백들과 아하시야 형제들의 아들들까지 모두 죽였습니다(8; 왕하 10:13). 그리고 도망친 아하시야를 찾아내어 죽이면서(9) 아합의 집을 따라 악행을 저지른 두 왕에 대한 처우를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아하시야의 매장과 관련하여, 열왕기서에는 아하시야가 다윗 성에 있는 조상의 묘실에 안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왕하 9:28). 그러나 역대기서는 매장지를 언급하지 않고, 그가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찾던 여호사밧의 자손’이라는 이유로 매장했다고 기술함으로써(9), 아하시야가 조상의 묘실에 안치될 자격이 없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아하시야의 형제들(대하 21:4), 아들들(대하 21:17), 친족들(8)과 아하시야 본인까지 모두 죽임을 당하면서 유다 왕실의 세력은 급격히 약해졌고, 왕좌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참혹한 결과는 여호사밧 시대부터 아하시야에 이르기까지 악한 아합 집과의 교류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행위였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대하 19:2). 유다 왕국의 존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아달라와 요아스(10-12)

때로 우리 삶과 사회에는 극심한 혼란과 절망적인 순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소중한 가치들이 사라지는 듯한 위기감을 느끼곤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암흑 속에서도,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작은 생명이 소중히 지켜지고 희망의 불씨가 꺼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 소수의 헌신적인 사랑과 용기 있는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 속에서 절망을 넘어 희망을 지켜내는 지혜와 우리의 역할을 함께 찾아보고자 합니다.

 

10○아하시야의 어머니 아달랴가 자기의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일어나 유다 집의 왕국의 씨를 모두 진멸하였으나 11왕의 딸 여호사브앗이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를 왕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중에서 몰래 빼내어 그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를 피하게 하였으므로 아달랴가 그를 죽이지 못하였더라 여호사브앗은 여호람 왕의 딸이요 아하시야의 누이요 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내이더라 12요아스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전에 육 년을 숨어 있는 동안에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렸더라(10-12)

 

유다 왕국은 아하시야 왕의 죽음으로 다윗 왕가의 존속이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기치 않은 방법으로 유다와 다윗 왕가를 지켜주셨습니다.

아하시야의 어머니인 아달랴는 유일한 아들 아하시야의 죽음 소식에 이성을 잃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 왕의 딸이었던 그녀는 유다의 여호람과 결혼하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족 대부분이 그녀와 혈연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유다의 유일한 아들마저 사망함으로써 왕의 어머니로서의 입지가 위태로워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달랴의 아들이자 아하시야의 형제들은 이전에 아라비아인과 블레셋인들의 침략 시 모두 사망하였고(대하 21:17), 남편 여호람도 불치병으로 사망하였습니다(대하 21:18-19). 이제 남은 것은 아들 아하시야뿐이었으나, 그마저도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9). 더불어 아하시야의 친족 42명 또한 예후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8-9; 왕하 10:14). 이로써 남유다에 남은 왕족은 아하시야의 자손들 외에는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의 아합 가문에서도 아달랴 혼자만이 생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남자 형제들 중 아합을 이어 북이스라엘 왕이 된 아하시야는 이미 죽었으며(왕상 22:51), 그 후 왕이 된 또 다른 남자 형제인 요람(왕하 9:24)과 아합의 자손 70명을 비롯한 아합 가문의 모든 남아있던 자들(왕하 10:7, 11, 17), 그리고 어머니 이세벨(왕하 9:33)마저도 예후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모두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부터 4대에 걸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에 악영향을 미쳤던 고리를 예후를 통해 완전히 끊어내셨습니다(왕하 9:6-10; 10:30).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합 가문은 전멸했지만, 다윗 가문은 아직 후손이 남아 있었습니다. 아달랴는 이 절호의 기회를 포착하여 유다 왕국의 왕실 씨앗을 모두 진멸하고자 하였습니다(10). 그리고 불안정한 정세를 틈타 스스로 여왕으로 등극하여 주전 841년부터 835년까지 7년간 유다를 통치하였습니다. 아달랴는 남편 여호람의 통치 기간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대하 21:6), 아들 아하시야의 시대에도 실질적인 통치자 역할을 해왔기에(3-4), 이제는 그러한 지위에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왕위에 오르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악한 아합의 딸인 아달랴를 통해 유다 왕국의 후손들이 죽음을 맞이하도록 허락하셨을까요? 다윗의 자손들이 모두 사라져 남유다가 더 이상 다윗의 왕국이라 불릴 수 없게 되는 상황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으신 언약(대상 17:14; 삼하 7:16)이 파기된 것일까요? 다윗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대하 21:7)? 다윗 자손의 진멸과 아달랴의 등극은 당시 유다 백성에게 큰 절망감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의구심과 배신감을 안겨주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이야기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만의 방법으로 다윗의 후손을 남겨두셨습니다.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는 아하시야의 누이이자 여호야다 제사장의 아내인 여호사브앗(왕하 11:2)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생존하게 되었습니다(11). 그녀는 요아스와 그의 유모를 침실에 숨겨 아달랴의 살육을 피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 덕분에 요아스는 6년 동안 성전에서 숨어 지내실 수 있었습니다. 한 명의 왕자를 빼돌려 숨기는 일은 목숨을 건 위험한 일이었으며, 이는 오직 하나님의 기적적인 개입과 섭리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이 절체절명의 시기에 요아스를 구한 여호사브앗은 다윗 왕가와 유다 왕국을 존속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한편, 아달랴는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사실을 전혀 모른 채 바알 숭배자들의 지지 속에 혼란스러운 유다를 통제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성전 내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요아스 왕자의 생존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 속에서 비밀리에 유지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존폐 위기 속에서도 다윗의 후손과 유다를 신실하게 지켜주셨으며, 다윗과 맺은 언약을 변함없이 이행하셨습니다. 이는 또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오실 메시아에 대한 하나님의 거룩한 계획(사 11:10)을 이루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우리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곳에서 희망의 불씨가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는 소수의 헌신적인 용기와 사랑이 어둠 속에서도 귀한 생명과 가치를 보호할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작은 선을 행하고, 약한 존재를 품에 안는 것입니다. 그 숨겨진 보존의 시간들은 결국 새로운 시작을 위한 귀한 준비 기간이 됨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빛과 소금으로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지켜내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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