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11) - 야고보서 5장 7-12절 - 농부처럼 시험을 인내하라
야고보서(05-02)
농부처럼 시험을 인내하라
야고보서 5장 7-12절
어린 시절 우리 어머니들은 키로 알곡과 쭉정이를 구분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고난을 당하는 태도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인내해주실 것을 알기 때문에 고난 속에서도 인내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고난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을 단련시켜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인정을 받습니다.
- 본문은 이제 야고보서의 결론에 이릅니다. 야고보 사도는 고난을 당하는 초대교회의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간절히 부탁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는 농부가 결실을 보기위해 기다리며 오래 인내하는 것처럼, 선지자들과 믿음의 사람 욥처럼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시험을 잘 인내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험 상황에서 원망하지 말고 인내(7-11)
예수님의 재림은 우리에게 고난을 참고 견뎌 낼 힘과 소망을 줍니다. 농부가 추수 날을 바라며 더위와 힘든 수고를 참고 견디는 것처럼, 인내심과 희망을 갖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날을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오래 참고 기다리보면 서로에게 불평과 원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불평이나 원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이 오실 날이 매우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7○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8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10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을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으로 삼으라 11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7-11)
본문은 인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믿는 자들이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인내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농부의 비유와 욥의 이야기를 통해 고난 속에서도 인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언급합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인내하는 자를 축복하고 긍휼히 여기신다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1) 주의 강림과 인내(7-8)
“형제들아”라는 표현으로 권면의 대상을 세상 부한 자들에서 수신자로 전환합니다. 인과 접속사 ‘그러므로’는 이 단락이 전 문맥인 부유한 땅 주인에게 핍박받는 상황의 결론임을 암시합니다. 불의한 상황은 주 예수님의 재림으로 바로잡힐 것입니다(7). 재림은 역사 끝에 있을 사건으로 모든 것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는 때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형벌을 받겠지만(참조, 살 후 1:7-10; 계 20:12-15),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이미 경험한 자들은 두 번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참조. 롬 3:24-26). 이들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믿음으로 죄 용서를 받은 자들이며, 반역의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실 때, 악한 부자와 가난한 신자의 삶이 역전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주의 재림은 전적으로 미래의 일이며, 더구나 그날이 언제일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지금 경험하고 있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들은 죄 용서를 받고 구원을 경험했고, 약속된 미래가 있음에도 여전히 세상에 속해 불의한 상황을 겪으며 고통당합니다. 저자는 두 시점 사이를 ‘오래 참음’으로 채우라고 명령합니다(8). 시험 상황을 처음 언급할 때 제시한 두 번째 명령(1: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과 동일하지만, 인내하라는 이유를 여기서는 다른 관점으로 제시합니다. 1:4에서는 내적인 이유, 즉 스스로를 온전하고 부족함 없는 자로 세우기 위해 인내로 견뎌야 한다고 말했지만, 본문에서는 주의 재림이라는 외적 사건을 근거로 참으라고 말합니다. 내적 이유와 외적 이유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도의 온전함은 주의 재림과 심판 때 칭찬받을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1:12에서 말한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상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인내를 이루는 힘은 ‘믿음’입니다. 믿음은 무엇이 허상이고 무엇이 실제인지를 보게 하는 눈입니다(참조, 히 11:1). 현재 전개되는 암담한 상황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며 주의 강림이 있음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믿음입니다. 저자가 1:3에서 시험 상황을 ‘믿음’과 연결시킨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 믿음의 눈을 가진 것이 참 지혜입니다.
저자는 “보라”라는 표현으로 주의를 집중시키고, 농부의 예를 들어 믿음으로 오래 참으라는 명령을 부연합니다(7-8). 농부는 열매를 기대하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립니다. 농부는 씨를 심고 바로 거두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농부에게 기다림은 책임의 유기나 게으름이 아닙니다. 그것은 적극적이고 순종적이며,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적절한 비와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기다림이 비를 주고, 인내가 열매를 가져다줍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의 씨가 심겼으니, 그 씨가 열매 맺을 때까지 주의 은혜를 바라고 기다리며 견뎌야 합니다. 독자들 또한 오래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기 때문입니다(8).
(2) 서로 원망하지 말라(9)
저자는 “형제들아”라는 호칭으로 또 다른 주제로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서로에 대해 탄식하며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앞 내용과 별개의 주제처럼 보이지만, 7-11절의 전체 구조를 볼 때 연관성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오래 참음으로 견디라고 말한 7-8절과 그에 대한 예를 제시하는 10-11절 사이에 위치합니다. 아마도 이 권면은 단순히 개인적 불평을 멈추라는 의미에 그치지 않고, 부와 가난에 대한 세속의 관점과 기준으로 동료 신자를 대하지 말라는 포괄적 명령의 일부로 보입니다. 이것은 앞서 소유로 형제를 차별하지 말라는 명령(2:1-13)과 혀로 사람을 저주하지 말라는 것(3:9-10), 시기와 다툼 대신 화평을 추구하는 참 지혜의 사용(3:14-18), 세상 욕심으로 서로 전쟁하지 말라는 것(4:1-12) 등과 관련 있습니다. 이렇게 명령한 이유는 물질을 기준으로 이웃을 판단하고 대하는 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불신이기 때문입니다. 앞서 언급한 재림과 관련한 주의 심판을 전제로 하여 주신 권면입니다. ‘심판자가 문 앞에 서 계신다’는 표현을 첨언함으로써 다시 한 번 주님의 재림 상황을 권면의 근거로 분명히 합니다. 문 앞에 서 계신다는 것은 앞선 7,8절에서 두 번 주의 강림을 강조한 것에 이어 그 긴박성을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진노를 받을 것입니다. 첫째, 세상 관점과 욕심에 젖어 있는 것은 멸망할 어둠의 영역에 속해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형제를 판단하는 것은 율법 정신에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핵심 정신인 형제 사랑의 원리에도 위배되며, 또한 하나님만이 감당하실 수 있는 심판자 위치에 자신이 앉는 것이기에 이는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원리를 위반하는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3) 인내의 모본들(10-11)
세 번째 “형제들아”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앞서 밝힌 오래 참음의 근거이면서 본보기가 되는 예를 소개합니다. 하나는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이고(10) 다른 하나는 욥입니다(11). 그들이 누구이고 어떤 상황인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 없이 그들의 고난과 오래 참음을 본받으라고 명령합니다. 늘 악한 시대에 야당으로서 양심과 말씀의 최후 보루가 되어 타락한 기성 권력을 불편하게 하였고, 그 대가로 핍박을 당했던 선지자들의 이야기는 수없이 많은 예로 존재하기에 특정 인물을 거론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어서 저자는 “보라”(이두)라는 표현으로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욥’이라는 구체적 인물을 등장시켜 더욱 생생한 예를 제시합니다. 선지자의 본을 제시할 때와 달리 욥의 예를 들면서는 명령하지 않고 독자 스스로 결정하도록 유도합니다. 저자는 1인칭 복수 지시어(‘우리’)를 통해 독자들이 공유하는 지식(“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을 언급하고, 이어서 구체적으로 욥의 예를 제시합니다. 독자들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인내의 결말을 알고 있습니다. 따라 독자들도 인내하면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지식의 기준에 따라 복되다는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이로써 저자는 독자들도 용이나 선지자들처럼 인내하며 행하도록 간접적으로 권면합니다. 저자가 말하려는 핵심은 하나님의 최후 평가를 기대하면서 오늘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고난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기대를 포기하지 말고 견디라는 것입니다.
맹세하지 말라(12)
우리의 말과 맹세가 진실해야 하며, 불필요한 맹세를 피해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함과 신뢰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맹세를 할 때는 그 의미와 결과를 깊이 생각해야 하며, 자신의 말을 신중하게 지켜야 합니다. 결국, 신앙 생활에서 진실성과 정직함이 핵심이라는 교훈을 전달합니다.
12○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아무 다른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 정죄 받음을 면하라(12)
네 번째 “형제들아”라는 표현을 써서 맹세와 관련한 주제로 전환합니다. 편지 마무리 권면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하늘이나 땅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맹세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아닌 것은 아니라 하고, 그런 것은 그렇다고 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심판을 면하는 길입니다. 마태복음 5:33-37에서 말한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인용한 것입니다. 7-11절과는 심판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또 편지 전체로 보아도 이 내용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4:13-17에서 장사하는 자와 관련해 헛된 자랑을 하지 말라고 했고, 1:26이나 3:1-12에서 혀 사용을 조심하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맹세하지 말라는 저자의 권면은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고백과 삶이 함께하는 ‘의로운’ 삶을 살라는 이전 권면과도 일치합니다. 이런 면에서 12절은 하나님의 최종 평가를 의식하고, 내면의 생각, 말과 일치하는 투명하고 진실한 ‘삶’을 촉구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또한 신자의 정체성과도 연관됩니다. “무엇보다도”라는 표현은 이 삶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결론은 인내의 중요성과 하나님의 신실함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며 인내해야 하며, 농부처럼 기다림의 과정을 통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욥의 예를 통해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어떻게 축복으로 이어지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인내는 단순한 고통을 넘어서, 믿음의 깊이를 더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에게 긍휼과 축복을 베푸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히 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