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야고보서(완료)

야고보서(07) - 야고보서 3장 1-12절 - 행함 있는 믿음의 열매

백의종군 2025. 3. 31.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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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03-01)


행함 있는 믿음의 열매

야고보서 3장 1-12절


 

일상 생활 속에서 어떤 말을 가장 많이 합니까? 부정적인 말, 거룩하지 않은 말을 주로 사용하지 않습니까? 말은 인격의 다른 표현입니다. 사람의 지체들 중에 신묘막축한 지체는 혀인 것 같습니다. 10cm 혀로 다른 사람과 자신의 의사 소통을 이루어집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을 통해 하나님께 신앙고백을 하기도 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합니다.

 

  •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임을 증명하기 위해 첫 번째로 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말합니다. 총 네 가지의 법주로 설명합니다. 그 첫 번째 범주는 ‘말의 심판’에 관한 것입니다. 야고보는 실수가 없는 사람은 온전한 사람입니다.

 

말에 대한 힘(1-2)

지도자는 다른 많은 사람을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책임을 지기도 합니다. 지도자에게는 그에 따르는 많은 직책도 주어지지만 책임도 부여됩니다.

 

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1-2)

 

야고보서 1-2장은 ‘행함으로 입증되어야 하는 믿음’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 행함이란 하나님의 긍휼(헤세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본문은 긍휼의 실천 중 첫 번째 행함인 ‘혀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야고보는 먼저 혀의 부정적 이미지를 크게 네 파트로 나눠서 예를 들어 설명하고 강조합니다. 그것을 근거로 혀의 사용에 대한 교훈을 줍니다.

 

(1) 말이 많은 사람(1)

 

당시 야고보를 읽는 대상은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선생’이 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는 ‘선생’하면, 유대인의 율법 선생인 ‘랍비’이 가졌던 모종의 지위와 존경을 받고자 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은 사도적 혹은 예언자적 지위를 갖춘 정식 선생들에 대한 것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초대교회는 당시에는 낯선 사람들까지도 가르치는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관대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선생’ 대우를 받으면서 많은 것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검증되지 않는 사람들이 강단에 서게 되니, 강론 시간이 ‘아무 말 대찬치’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좋은 말을 잘하는 사람들이 인기 강사가 되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복음’은 없고 ‘강연회’가 되어버리니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선생’들이 누리는 것만 생각하고 자신의 책임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몰려드는데, 점점 식상해져 버리고, 사회 사교장이 되어버려서 교회를 완전히 망쳐놓았습니다.

기독교의 가르치는 일은 꼭 수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가르치는 자는 자신의 책임을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생 된 자들이 더 큰 심판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받을 정죄함이 더 큰 이유는,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가졌다고 고백한 자에게는 그 의무를 수행할 더 많은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2)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2)

 

야고보는 자신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만 손가락질하는 마음으로 지적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라고 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발행한 문제들은 대부분 말의 실수 때문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함에 있어서 여러 가지 수단이 있지만, 보통은 말로 하기 때문에 그로 인한 오해도 많습니다. 어디를 막론하고 붙어 다니는 이 조그만 혀만큼 그리스도인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만일 성도가 말에 실수가 없으면, 그는 온전한 사람(완벽한 사람)입니다. 혀는 능히 자기 온 몸도 굴레 씌어서 움직이지 못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성숙하다는 것은 길들려진 혀를 필요로 합니다.

 

말에 대한 문제(3-8)

우리 몸에서 혀는 작은 편입니다. 하지만 제어하기 어렵고, 엄청난 파괴력이 있습니다. 혀는 훈련시키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혀로 악의를 가지고 내뱉은 한마디 말은 인격을 파괴하고 영혼을 실족하게 합니다. 그래서 혀는 인생의 방향까지도 결정합니다. 혀는 훈련시킨 대로 움직임입니다.

 

3우리가 말들의 입에 재갈 물리는 것은 우리에게 순종하게 하려고 그 온 몸을 제어하는 것이라 4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5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7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8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3-8)

 

사람들이 실수하기 쉬운 부분은 바로 말(言)입니다. 인간은 듣는 존재인 동시에 말하는 존재입니다. 언어로 의사소통을 합니다. 말을 통해 생각을 전달하고 다른 이들의 슬픔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반면 말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1) 혀의 위력(3-5)

 

말(馬)은 입에 물리는 작은 재갈로 통제하고, 큰 배도 조타실에서 작은 키로 운항을 진행합니다. 그리고 작은 불씨로 큰 불을 냅니다. 이처럼 혀는 작지만, 그 위력은 전체 방향을 좌우하는 큰 힘을 지닙니다.

말 한마디가 축복과 저주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혀는 잘 사용하면 엄청난 유익이 있지만, 잘못 사용하면 엄청난 손해를 끼칩니다. 그래서 말실수는 한 번에 그 동안 평생 쌓아온 높은 직위와 주변 관계 그리고 많은 재물까지도 허물어뜨리고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대단한 능력이 있습니다.

 

(2) 혀를 통한 사단의 공격(6-8)

 

혀가 큰 위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위험성 또한 큽니다. 더 위험한 것은 길들이기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혀는 작으면서도 그 영향력은 대단하기 때문에, 사단이 이용하려고 합니다. 사단은 사람들에게 말을 사용할 때, 부정적이고 폭력적으로 구사하도록 합니다.

야고보는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고 단언합니다. 화가 난 혀가 타오르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산불처럼 타오릅니다. 혀를 악하게 사용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영혼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때로 온 몸을 더럽히고 인생 전부 불태우며 지옥 불을 경험하게 합니다. 말은 진실을 전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사실을 왜곡하는 거짓의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말이 중요한 만큼 통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혀는 불과 같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혀가 무서운 것은 길들려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생물들은 훈련만 시키면 얼마든지 길 드려집니다. 개들도 훈련을 통해서 주인의 뜻대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새들도 훈련시키면 순종합니다. 하지만 혀는 길 드려지지 않습니다. 혀를 길 드릴 수 없는 이유는 ‘정함이 없는 악’이고, ‘죽이는 독이 가득하기’ 때문에, 제어하기 쉽지 않습니다.

혀로 나오는 말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나타냅니다.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혀는 자연 상태로는 타락한 사람들의 혀에서 나오는 말은, 절대로 용기를 주고 살리는 말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이미 죄로 물들어 길들일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습니다.

 

말에 대한 이중성(9-12)

누구나 말 실수를 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의 선한 기능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올바른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 방법은 오직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통해 우리는 말의 진정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9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10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11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12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9-12)

 

본문에서는 혀의 힘과 그 위험성에 대해 설명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면서도 동시에 악을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모순된 행동입니다. 또한, 같은 근원에서 단맛과 쓴맛이 나올 수 없듯이, 우리의 말도 일관성이 있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1) 양면성을 가진 혀(9-10)

 

야고보는 이중적인 언어를 ‘독사의 둘로 갈라진 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온다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우리 성도들은 입술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은혜로운 찬양을 할 때 보면, 찬양하는 모습이 천사가 내려와서 찬양을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사람들이 형제·자매들과 싸우며 욕하는 모습을 보면, 사탄 같아 보입니다. 어떤 모습이 진짜 모습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2) 선한 혀를 가짐(11-12)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하나님의 사역자로 부르셨을 때 먼저 거룩한 제단의 숯불을 그의 입술에 닿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입술이 더러운 사람에게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는 단순히 입술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의 내면세계가 변했음을 의미합니다. 언어(言語)의 변화는 인격(人格)의 변화입니다. 인격이 변하면 언어도 변합니다.

우리의 입술은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은혜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혀로 지은 모든 죄를 성령의 불로 깨끗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입술에 성령의 기름이 부어질 때에 우리의 죄와 허물이 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은 찬양의 제사를 드리는 입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혀를 주신 이유는 진리를 말하라고 주셨습니다. 찬양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언어를 주셨습니다. 죄로 물든 입술을 날마다 성령의 불로 정결케 해주시기를 간구하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혀를 창조하신 분의 뜻에 맞게 진리를 나누고 찬양하는 거룩한 삶을 사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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