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43) - 에스겔 24장 1-14절 -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에스겔(24-01)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
에스겔 24장 1-14절
주께서 에스겔을 통해 녹슨 가마의 비유를 사용하셨습니다. 이 상징적 행동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심판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녹슨 가마는 부패와 정결하지 않은 상태를 상징하며, 삶는 양은 백성의 고통과 심판을 나타냅니다. 즉,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이 임할 것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다섯째 해 넷째 달에(1:1-2) 그발 강가에서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이후 예루살렘과 유다의 심판이 이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향해 원정을 떠납니다.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사라지리라’(12:22)하며 에스겔을 비웃었던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보응하십니다.
도입부(1-2)
우리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안전한 곳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세상을 의지하면서 세상에 속한 자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을 심판하실 하나님을 의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1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날짜 곧 오늘의 이름을 기록하라 바벨론 왕이 오늘 예루살렘에 가까이 왔느니라(1-2)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멸망을 알리라는 명령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한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의 죄와 심판을 상징적으로 전달하도록 합니다. 이로써 백성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 말씀의 계시(1)
심판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이후 줄곧 선포해왔던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2:10)이 이제 그 역사적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반역과 부패를 고쳐보려던 여호와의 거듭된 노력이 헛수고로 끝났습니다. 멸망의 심판이 가능성을 떠나 현실이 됐습니다.
(2) 계시 사건의 시점(2)
‘아홉째 해 열째 달 열째 날’, 곧 주전 58년 1월 15일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기 시작합니다(참조, 왕하 25:1). 에스겔이 선포했던 예루살렘의 명망에 관한 예언이 성취를 목전에 둡니다. 성이 아직 함락되지는 않았지만, 예루살렘의 생명은 끝났습니다. 에스겔은 ‘날짜 곧 오늘의 이름’을 기록해두어야 합니다. ‘이름’은 일차적으로는 ‘날짜’를 가리키지만, ‘바로 오늘’부터 시작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하는 사건도 포함합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목적은 물론 기억하기 위함입니다. 여호와의 성전과 다윗 왕조가 자리한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한 날은 이스라엘이 역사에서 경험한 여러 날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후손들이 잊지 말고 언제나 기억해야 할 날입니다.
가마와 고기의 비유(3-5)
에스겔의 상징적인 행위에 드러나듯, 죄악에 빠진 자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든 죄악을 버리고 정결하게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심판의 경고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할 것이라고 착각했던 이스라엘처럼(11장)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3너는 이 반역하는 족속에게 비유를 베풀어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가마 하나를 걸라 4건 후에 물을 붓고 양 떼에서 한 마리를 골라 각을 뜨고 그 넓적다리와 어깨 고기의 모든 좋은 덩이를 그 가운데에 모아 넣으며 고른 뼈를 가득히 담고 5그 뼈를 위하여 가마 밑에 나무를 쌓아 넣고 잘 삶되 가마 속의 뼈가 무르도록 삶을지어다(3-5)
예루살렘에 선포된 심판 예언이 성취되는 시점에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이 반역하는 족속’에게 심판의 말씀을 비유에 담아 선포하게 하십니다. 다섯 해가 넘도록 말씀을 전했지만, 이스라엘 자손은 초지일관 반역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반역은 본성이 됐습니다. ‘그는 비유를 말하는 자가 아니냐’(20:49)는 백성의 조롱이 잘 보여주듯이, 에스겔은 다른 어느 예언자보다도 비유를 폭넓게 사용했습니다(참조. 15장; 16장; 17장; 19장; 21:1-10; 22:17-22; 23장; 24:1-14; 26:15-21; 27장; 28:11-19; 31장; 32장).
비유는 해석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일상적인 삶에서 가져온 비유는 청자들에게 메시지를 인상적이고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문학적 도구입니다. ‘가마와 고기’의 비유도 다르지 않습니다. 가마솥을 걸고 거기에 물을 채우고 가장 좋은 고기와 뼈를 넣어 삶으라는 말은 원래 잔치 음식을 준비하며 부르는 흥겨운 노래입니다. 3b-5절만 따로 떼어 듣는다면 잔치의 기쁨과 넉넉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마에 고기를 넣고 삶으면서 흥겹게 부르던 노래가 재앙의 선포로 바뀝니다.
전환의 접촉점은 가마에 담긴 뼈까지 삶아지도록 활활 타는 장작불입니다. 음식을 준비할 때 사용되는 불이 심판의 표상으로 활용됩니다. 장상작불에 끓는 가마가 예루살렘이 되면서 잔칫집의 노동요가 재앙의 비유로 바뀝니다. 가마 안의 뼈마저 무르게 삶아지도록 불이 더욱 세게 지펴지는 것처럼, 바벨론의 공격도 예루살렘 주민이 모두 쇠진하기까지 점차 그 강도를 높여갈 것입니다. 에스겔의 경고와 위협을 무시하고 즐기던 예루살렘의 잔치는 끝났습니다.
녹슨 가마(6-8)
아름다웠던 예루살렘이 파멸에 이르게 된 이유는 바로 죄 때문입니다. 아름다운 가마라도 매일 부지런히 잘 닦지 않으면 녹이 슬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아름다운 가마와 같았습니다. 매일 거룩한 그릇으로 씻김을 받기 위해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6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피를 흘린 성읍, 녹슨 가마 곧 그 속의 녹을 없이하지 아니한 가마여 화 있을진저 제비 뽑을 것도 없이 그 덩이를 하나하나 꺼낼지어다 7그 피가 그 가운데에 있음이여 피를 땅에 쏟아 티끌이 덮이게 하지 않고 맨 바위 위에 두었도다 8내가 그 피를 맨 바위 위에 두고 덮이지 아니하게 함은 분노를 나타내어 보응하려 함이로라(6-8)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악행을 비판하시며, 그들이 불의한 행동으로 인해 심판받을 것임을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가마에 비유하고, 그 안에서 불이 붙어 그들의 죄를 드러내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겪을 고통과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1) 화의 선언(6)
‘가마와 고기’의 노래를 해석해주는 이 단락은 예루살렘이 바벨론 군대에 포위당하게 된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예루살렘은 깨끗한 가마가 아니라 녹슨 가마였습니다. 녹슨 가마에 고기를 넣고 삶으면 고기도 녹으로 더럽혀져 먹을 수 없게 됩니다. 귀한 고기일지라도 가마에서 꺼내는 대로 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2) 화를 선언하시는 이유(7)
‘제비 뽐을 것도 없이’는 예루살렘 주민들이 모두 더러워졌기에 예외 없이 심판에 넘겨질 것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 멸망의 심판에서 벗어날 자가 아무도 없습니다. 녹이 너무 심하게 슬어 다시 깨끗하게 할 수 없을 때 가마가 버려지는 것처럼 심하게 녹이 슨 예루살렘의 운명도 다르지 않습니다. 예루살렘을 못 쓰게 만든 녹은 ‘피 홀림’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죄 없는 자들의 피로 가득 찼습니다. 예루살렘에서는 이웃의 권리와 생명을 유린하는 불법과 폭력이 노골적이고 공개적이었습니다.
흘린 피가 흙에 덮이지 않도록 땅에 쏟지 않고 맨 바위 위에 그대로 버려두었습니다. ‘덮이게 하지 않고’는 ‘매가 하지 않고’를 뜻합니다. 예루살렘은 부당하게 피 흘린 자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애쓰기는커녕 불의와 불법을 더욱 조장할 뿐이었습니다.
(3) 징벌의 선언(8)
피를 맨 바위 위에 둔 주체를 예루살렘으로 말하는 7절과 달리 8절은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부당하게 흘린 피의 부르짖음은 결코 무시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되갚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의 불의에 눈감지 않으시고 폭력에 희생당한 자들의 피가 부르짖는 소리에 응답하여 그 억울함을 풀어주십니다. 살인자 예루살렘이 흘린 피는 여호와에 의해 반드시 보응을 받습니다.
11:3에 의하면 주전 597년의 첫 번째 유배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며 예루살렘이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리라 자신했습니다. 에스겔은 거짓 확신에 사로잡힌 자들에 맞서 예루살렘이 이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줄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정의와 공의가 사라지고 살인과 탐욕이 지배하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그분께 신실한 성읍이 아닙니다. 하나같이 피 흘리기에만 열심인 예루살렘 주민은 누구도 바벨론의 포위 공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모두 멸망에 넘겨집니다.
세게 지펴지는 가마의 불(9-14)
이미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무엇이 죄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혹시 죄라도 것을 알면서도 뿌리치지 않고 여전히 붙잡아 놓고 즐기지 않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독한 심판을 피하는 유일한 길은 온전한 마음으로 회개하는 것입니다.
9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화 있을진저 피를 흘린 성읍이여 내가 또 나무 무더기를 크게 하리라 10나무를 많이 쌓고 불을 피워 그 고기를 삶아 녹이고 국물을 졸이고 그 뼈를 태우고 11가마가 빈 후에는 숯불 위에 놓아 뜨겁게 하며 그 가마의 놋을 달궈서 그 속에 더러운 것을 녹게 하며 녹이 소멸되게 하라 12이 성읍이 수고하므로 스스로 피곤하나 많은 녹이 그 속에서 벗겨지지 아니하며 불에서도 없어지지 아니하는도다 13너의 더러운 것들 중에 음란이 그 하나이니라 내가 너를 깨끗하게 하나 네가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니 내가 네게 향한 분노를 풀기 전에는 네 더러움이 다시 깨끗하여지지 아니하리라 14나 여호와가 말하였은즉 그 일이 이루어질지라 내가 돌이키지도 아니하고 아끼지도 아니하며 뉘우치지도 아니하고 행하리니 그들이 네 모든 행위대로 너를 재판하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14)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언하시고,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이 임할 것임을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불에 태우는 가마에 비유하며, 그들이 겪을 고통과 파멸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를 쏟아내며 이스라엘의 죄를 정결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화의 선언(9)
6절의 경우처럼 ‘그러므로’와 화의 선포로 시작하는 이 단락은 ‘가마와 고기’의 노래에 관한 두 번째 해석입니다. 첫 번째 해석이 심판의 원인에 초점을 맞췄다면, 두 번째 해석은 심판의 확정성에 집중합니다.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은 하나님의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의 죄를 제거하기 위한 그분의 모든 노력이 죄좌초한 후의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2) 비유적 징계 선언(10-12)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피를 흘린 성읍’으로 부르시며 화를 선포하십니다. ‘내가 또’는 ‘나 또한’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노골적인 악행에 상응해서 심판의 불을 더 세게 피우십니다. 10-11절은 형식상 에스겔에게 주는 명령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그의 예언자적 활동의 요약에 해당합니다. 가마의 녹을 없애기 위해 장작 더미를 높이 쌓고 솥 안에 있는 고기가 녹고 국물이 좋아 다 없어지고 뼈가 타버릴 정도로 불을 지폈습니다. 가마 속이 비어도 멈추지 않고 그 안의 녹을 녹여 내리기 위해 불을 계속 더 세게 지폈습니다. 불을 피우는 자가 애써보았지만, 결과가 없었습니다. 가마가 너무 심하게 녹이 슬어서 불로 녹을 제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애써도 뼈 속까지 죄에 물든 예루살렘은 깨끗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 책망도 하시고 위협도 하시고 징벌도 하셨지만, ‘반역하는 족속’은 완강하게 맞설 뿐이었습니다.
(3) 정화되지 않는 예루살렘(13)
예루살렘의 죄악은 이제 정화의 가능성을 넘어섰습니다. 죄가 예루살렘의 본성이 되었기에 예루살렘과 죄의 분리가 불가능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대를 완전히 접으시고 쓸모없게 된 예루살렘을 바벨론에 넘겨주기로 최종 결정하십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당신 백성을 사랑하는 분이 아니십니까? 그분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출 34:6)이 아십니까? 그분은 주전 701년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극적으로 개입해 구해주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분은 분명 돌이키시고 아끼시고 후회하시는 분이지만,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더러운 것과 하나가 된 지금의 예루살렘에게는 아닙니다.
(4) 확정된 심판(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고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성을 에워싼 바벨론 군대의 심판을 피할 길은 이제 없습니다. ‘하나님의 뉘우침’은 이전에 내리셨던 결정을 되돌리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결론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심판의 경고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죄로 인해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며, 불에 태우는 가마의 비유를 통해 그들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십니다. 이는 하나님이 진정으로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심판을 통해 그들을 깨우치고자 하시는 의도를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진노는 궁극적으로 그들의 정결함과 회복을 위한 과정임을 알립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회개해야 할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