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에스겔(완료)

에스겔(27) - 에스겔 17장 1-10절 -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백의종군 2025. 3. 19.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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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17-01)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에스겔 17장 1-10절


 

삶에 위기가 찾아오면 힘 있는 이를 의지하려는 본능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의지해야 할 대상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갈대 지팡이와 같은 불확실한 대상을 의지하는 태도는 위험할 수 있습니다. 이런 태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습니다. 위기 속에서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올바른 의지 대상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삶을 지키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 알레고리에 가까운 비유와 수수께끼를 활용해 다윗 왕조의 종말을 선언합니다. 크고 화려한 독수리(바벨론)에 의해 심긴 포도나무가 잘 자라가다가 뿌리와 줄기를 다른 큰 독수리(애굽)에게로 내뻗습니다. 큰 물가 옥토에 심긴 포도나무가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처음 심은 독수리의 보복을 자초합니다. 결국 나무가 시들고 뿌리째 뽑힙니다.

 

도입부(1-3a)

우리는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역사를 이루어간다고, 세계 역사는 하나님께서는 개입하시기 어려울 만큼 복잡하고 거대하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 이야기 안에서 이해해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면 세상의 지배를 받습니다.

 

1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2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를 말하라 3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여 이르시되(1-3a)

 

에스겔 17장은 표상과 주제가 유사한 두 개의 비유적 예언(1-21과 22-24)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운문으로 된 비유(3-10)와 산문으로 된 해석(11-21)의 두 부분으로 나눠지는 첫 번째 비유적 예언은 주전 597년부터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까지 예루살렘 왕궁이 보여주었던 신의 없는 대외정책을 배경으로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에스겔에게 임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에게 ‘수수께끼’를 내고 ‘비유’를 말하게 하십니다. 에스겔이 전할 예언이 수수께끼이자 동시에 비유로 언급됩니다. 비유는 보통 청자들에게 잘 알려진 유사한 현상이나 사물에 비겨서 표현하기에, 19장의 경우처럼 해석이 없이도 이해가 가능한 반면 수수께끼는 대상의 의미를 쉽게 찾을 수 없도록 모호하게 감춰놓기에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관찰과 연상 능력이 요청됩니다. 에스겔의 예언이 비유와 수수께끼로 주어지기에 청자들은 집중해서 듣고 감춰진 열쇠를 찾아내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어리석음(3b-8)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소망의 약속을 주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멸망하더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다시 연한 가지를 꺾어 이스라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이로 인해 웅장한 나무로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신실함과 회복의 약속을 보여줍니다. 결국, 하나님은 항상 희망을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3b…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되 4그 연한 가지 끝을 꺾어 가지고 장사하는 땅에 이르러 상인의 성읍에 두고 5또 그 땅의 종자를 꺾어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더니 6그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 곧 굵은 가지와 가는 가지가 난 포도나무가 되어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 7또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있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그 심어진 두둑에서 그를 향하여 뿌리가 뻗고 가지가 퍼졌도다 8그 포도나무를 큰 물 가 옥토에 심은 것은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루게 하려 하였음이라(3b-8)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시드기야는 처음에 바벨론의 권력 아래에서 안정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차츰 애굽을 의지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국제 정세를 더 신뢰한 결과입니다. 결국, 자신의 생각과 판단이 하나님의 계획을 저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1) 독수리와 백향목(3b-5)

 

잘 알려진 독수리와 백향목의 비유가 사용됩니다.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화려한 색깔의 깃털이 가득한 큰 독수리 한 마리가 레바논으로 와서 백향목 꼭대기의 가장 높은 가지, 곧 새로이 돋은 가지들 중에 가장 높은 가지를 꺾어 상인들의 땅으로 가져가 장사꾼들의 성읍에 두었습니다. 맹금류 가운데서도 가장 크고 강력한 독수리는 그 생존 습성에 상응해서 사나운 침략과 공격의 표상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을 침략하는 적의 말들이 독수리보다 빨리 달려오는 것을 봅니다(4:13; 참조. 하박국 1:8; 예레미야애가 4:19). 레바논으로 날아온 크고 강한 독수리는 바벨론 왕을 가리킵니다. ‘화려한 색깔의 깃털’은 왕의 화려한 의상과 관련한 표현으로, 왕권의 번영과 영화로움을 시사해주는 것 같습니다. (독수리의 깃털은 화려하지 않다) 레바논은 예루살렘의 은유에 해당합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왕궁과 성전의 목재로 레바논의 백향목과 잣나무를 사용 했습니다. 솔로몬의 왕궁 가운데 가장 큰 건물 이름이 ‘레바논 나무 궁’(열왕기상 7:2; 10:17,21; 문자적으로 ‘레바논 수풀 궁’)이었습니다. ‘백향목 높은 가지’(‘백향목 꼭대기의 가지’)는 다윗 왕조의 마지막에 속하는 왕을 가리키고, ‘연한 가지 끝’(‘새로이 돋은 가지들 중에 가장 높은 가지’)은 그 왕이 새로이 왕위에 올랐음을 시사해줍니다. ‘장사하는 땅’은 바벨론 제국을, ‘상인의 성읍’은 바벨론 도성을 가리킵니다. 앗수르에 이어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한 바벨론 제국의 도성 바벨론은 정치와 종교와 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제국의 부가 집결하는 곳이기에 여러 지역에서 온 수많은 상인들로 넘쳤습니다. ‘큰 독수리’(바벨론 왕)가 ‘레바논’(예루살렘)으로 와서(원정을 와서) ‘백향목 꼭대기에 새로 돋은 가지’(새로이 왕위에 오른 유다 왕)를 꺾어(사로잡아) ‘장사하는 땅’(바벨론)으로 가져가서(유배) ‘상인의 성읍’(바벨론 도성)에 두었습니다.

 

(2) 독수리와 포도나무(5-6)

 

큰 독수리는 장사꾼들의 성읍으로 옮겨진 백향목 꼭대기의 새로 난 가지를 대신해서 그 땅에서 난 씨앗을 가져다가 기름진 밭에,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 가에 심었습니다. 싹이 돋고 자라 낮게 퍼진 포도나무가 되었습니다. 줄기는 독수리를 향하고 뿌리는 독수리 아래 있었습니다. 그렇게 그것은 포도나무가 되어 큰 가지를 뻗고 작은 가지를 내뻗었습니다. 특이하게도 큰 독수리는 백향목 꼭대기에서 다른 새순을 꺾어 심지 않고 땅에서 난 포도나무의 씨앗을 기름진 밭에 심습니다. 문자적으로 ‘낮은 높이로’를 의미하는 6절의 ‘높지 아니한’ 이 시사해주듯이 높이의 현저한 차이 때문에 백향목의 표상 대신에 포도나무의 표상이 사용된 것 같습니다. 30미터까지 높게 자라는 거대한 백향목과 달리 포도나무는 낮게 옆으로 가지를 뻗습니다. 포도나무에게 하나의 제한, 곧 이의 한계가 주어집니다. 포도나무는 백향목과 달리 자신을 높이지 않고 독수리에 의존해야 합니다. 독수리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그 안에 머물 때 포도나무의 번성과 풍요가 보장을 받습니다. 높이의 한계를 제외하고 독수리는 포도나무가 잘 자랄 수 있도록 최상의 조건을 마련해주었습니다. 이방의 씨앗이 아니라 그 땅에서, 난 씨앗을 택하여 가뭄에도 시들지 않게 큰 물가의 비옥한 땅에 심었습니다. ‘그 땅의 종자’는 유다의 통치권이 주어진 다윗 집안 출신의 인물을 가리키고, ‘그 가지는 독수리를 향하였고 그 뿌리는 독수리 아래에 있었더라’는 포도나무의 의존과 독수리의 보호를 의미 합니다.

 

(3) 둘째 독수리와 포도나무(7-8)

 

독수리가 한 마리 더 있었습니다. 첫 번째 독수리처럼 화려한 깃털은 없었지만, 두 번째 독수리도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였습니다. 포도나무가 원래 심어졌던 두둑이 아니라 두 번째 독수리에게서 물을 얻으려고 방향을 틉니다. 첫 번째 독수리를 향했던 줄기를 두 번째 독수리 쪽으로 뻗고, 첫 번째 독수리 아래에 있었던 뿌리도 그에게로 돌립니다.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되도록 큰 물가 기름진 밭에 심은 첫 번째 독수리의 배려와 기대가 포도나무의 배반으로 좌초합니다. 방향을 바꾼 동기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6절의 ‘높지 아니한’에 근거해서 바벨론의 통제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생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바벨론에 대한 부정적 편견에서 비롯한 추론입니다. 5-6절, 특히 8절은 첫 번째 독수리의 의도와 계획을 매우 긍정적 시각에서 언급합니다. 포도나무의 배반이 첫 번째 독수리의 배려와 정성에 대비되면서 포도나무의 어리석음과 배은망덕이 강조됩니다.

배반의 정치적 동기에 관한 침묵은 포도나무의 치명적 무지와 과오를 더 돋보이게 합니다. 계속 독수리에 의 조하기만 하면 포도나무는 풍성한 열매를 맺고 아름다운 나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포도나무는 순종 을 거절하고 열매를 맺기 전에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자진하여 아름다운 포도나무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걷어찼습니다.

 

포도나무의 운명(9-10)

어려운 일을 당했던 때를 돌이켜 보며 그때 내가 가장 먼저 찾고 의지한 분이 하나님이었는지 생각해 봅시다. 혹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인간적인 방법을 먼저 찾지 않았는지 점검해 봅시다. 지금까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위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강구했다면, 이제 그러한 습관을 하루 속히 청산해야 합니다.

 

9너는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그 나무가 능히 번성하겠느냐 이 독수리가 어찌 그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며 그 나무가 시들게 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연한 잎사귀가 마르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 10볼지어다 그것이 심어졌으나 번성하겠느냐 동풍에 부딪힐 때에 아주 마르지 아니하겠느냐 그 자라던 두둑에서 마르리라 하셨다 하라(9-10)

 

잘되기를 소망하지만, 어리석은 배반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포도나무의 파국적 종말이 이중적으로 언급됩니다. 첫 번째는 배신당한 독수리로 인한 징벌입니다. 이러한 징벌은 신뢰의 붕괴를 상징합니다. 결과적으로 배반의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합니다.

 

(1) 뿌리 뽑히는 포도나무(9)

 

독수리가 포도나무의 뿌리를 뽑고 그 열매를 썩게 하고 나무를 마르게 해 새로 난 잎이 모두 말라 버릴 것입니다. ‘많은 백성이나 강한 팔이 아니라도 그 뿌리를 뽑으리라’는 일차적으로는 ‘멸망을 피할 길 이 없음’을 보여주고, 간접적으로는 포도나무의 멸망이 ‘여호와의 결정에 속함’을 시사해줍니다(참조. 예레미야 37:10).

 

(2) 말라버리는 포도나무(10)

 

다음은 동풍에 의한 심판입니다. 큰 물가 기름진 땅에 심겼지만, 동풍의 위협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가나안 동쪽의 광야에서 불어오는 뜨겁고 모래가 섞인 바람은 생명에 아주 적대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의 일상적 경험에 속하는 동풍은 포도나무를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큰 물가 옥토에 심겨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포도나무가 어리석은 선택으로 인해 ‘그 자리던 두둑에서’ 말라 죽습니다.


우리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하나님의 인도를 받기보다는 인간적인 해결택을 찾거나 구하지는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징계의 짐을 거부하며 쉽고 편한 길을 모색하지는 않습니까? 우리 삶과 인간 역사의 참 통치자는 하나님이시니, 헛된 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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