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06) - 에스겔 3장 16-27절 - 하나님의 경고와 사명의 에스겔
에스겔(03-02)
하나님의 경고와 사명의 에스겔
에스겔 3장 16-27절
파수꾼의 역할은 적군이 침입해 들어오면 먼저 발견해서 모든 백성에게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만약 적군이 쳐들어오는데도 경보를 울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복음의 파수꾼인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과 복음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요?
-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파수꾼 역할을 맡기십니다. 심판의 예언자로 부름 받은 그는 칠 일이 지나 다시 ‘파수꾼 예언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다시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십니다. 성 밖을 감시하다가 위험을 발견하면 경고를 발하는 파수꾼과 같은 역할이 에스겔에게 주어집니다. 말만이 아니라 선지자의 삶을 통해서도 전하게 하십니다.
파수꾼으로 임명된 에스겔(16-2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시대의 파수꾼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처럼 우리가 죄의 문제를 경고하고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에게 이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못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우리에게 물으실 것입니다.
16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17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 18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꼭 죽으리라 할 때에 네가 깨우치지 아니하거나 말로 악인에게 일러서 그의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게 하지 아니하면 그 악인은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의 피 값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고 19네가 악인을 깨우치되 그가 그의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면 그는 그의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존하리라 20또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때에는 이미 행한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 내가 그 앞에 거치는 것을 두면 그가 죽을지니 이는 네가 그를 깨우치지 않음이니라 그는 그의 죄 중에서 죽으려니와 그의 피 값은 내가 네 손에서 찾으리라 21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하지 아니하게 함으로 그가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16-21)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심판의 예언자로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세우셨습니다. 악인들과 공의를 저버린 의인들에게 죄의 문제를 경고하고 깨우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1) 도입부(16-17)
이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두 번째 소명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으로 세우시면서 사명을 다할 것을 명령하십니다. 이제 ‘칠 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시 임합니다. ‘칠 일’은 완전수로 현재의 문맥에서는 15절의 ‘두려워 떨며’ 지낸 기간에 연결되지만, 에스겔서의 넓은 문맥에서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으로도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번에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워 당신 입에서 나가는 말을 듣고 당신을 대신하여 경고하게 하십니다(17). 성경에서 ‘파수꾼’은 ‘재앙’이나 ‘적군의 공격’을 경고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입니다. 파수꾼의 역할은 사무엘하 18:24-27과 열왕기하 9:17-20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2) 악인의 경우(18-19)
선지자 에스겔에게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서 악인에게 경고할 사명을 맡겨집니다. 먼저 악의 경우를 예로 들어 구체적 가르침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악인이 반드시 죽을 것을 알려주셨음에도 악한 길에서 떠나 생명을 구하도록 그 악인에게 경구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기 죄 때문에 죽겠지만, 경고하지 않은 예언자도 그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18). 하나님께서는 경고를 통해 이스라엘이 악한 길에서 돌아오도록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경고하지 않아 악인이 악한 길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피 값을 파수꾼에게서 찾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파수꾼이 악인에게 경고 했는데도 악인이 돌이키지 않았다면 파수꾼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는 가지고 있는 죄 때문에 죽고, 파수꾼의 역할을 대한 예언자는 그 죽음에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19).
(3) 공의에서 떠난 의인의 경우(20-21)
다음은 실족한 의인의 경우를 들어 가르침이 주어집니다(참조, 18:24). 의인이 그의 공의에서 돌이켜 불의를 저질렀는데도 경고하지 않은 예언자도 그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20). 그러나 의인이 실족하지 않도록 경고해주어서 그가 죄를 짓지 않게 되면, 그는 경고를 받아서 살고 예언자도 목숨을 보존합니다(21).
예언자는 경고자로서 자신의 역할에 책임을 지고, 악인이나 실족한 의인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집니다. 20절의 ‘그의 공의는 기억할 바 아니라’는 현재의 실존적 결단이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임을 보여줍니다(참조, 18:21-24).
‘파수꾼 예언자’는 단순히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자와 적어도 세 가지 점에서 구별됩니다. 첫째, 적이 언제 침략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여호와의 경고도 언제 주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파수꾼 예언자’는 다양한 방식으로 계시되는 여호와의 말씀을 놓치지 않기 위해 깨어서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참조, 하바국 2:1). 둘째, 주님들이 안전한 곳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것처럼, ‘파수꾼 예언자’는 사람들의 영적 형편을 주의 깊게 살펴 그 시점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전통에 입각한 교리적 가르침이 아닐, 영적 게으름과 무지를 책망하고 일깨울 수 있는 말씀을 선포하야 합니다. 셋째, 의무를 소홀히 한 파수꾼에게 책임을 묻는 것처럼, ‘파수꾼 d{언자’도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지 못했을 때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신탁을 선포하는 전통적인 예언자와 달리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은 예언자에게는 직무 수행에 따른 책임이 강조됩니다.
에스겔이 ‘파수꾼 예언자’로 부름 받는 3:16-21은 문맥에 돌출적입니다. 1:1-3:15에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이스라엘 족속에게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로 부름 받았습니다. ‘칠 일’의 간격을 두고 에스겔이 서로 성격이 다른 심판 예언자와 ‘파수꾼 예언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와 달리 ‘파수꾼 예언자’는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이 죄악에 빠져 멸망에 떨어지지 않도록 경고하는 사람입니다. 전자가 언약공동체로서의 전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한다면, 후자는 이스라엘 안에서 의로운 자와 불의한 다의 구별을 전제됩니다. 무게 중심이 백성/공동체의 심판에서 그 구성원의 회개로 옮겨지면서 개인의 주체적 책임이 강조됩니다.
에스겔서에 따르면 주전 587년 예루살렘과 유다가 멸망하기 전까지 에스겔은 심판 예언자로 활동하고(4-24장), 멸망 이후에야 ‘파수군 예언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33-48장). 에스겔이 ‘파수꾼 예언자’로 부름 받는 이야기는 회복의 말씀을 수집해놓은 단락의 첫머리(39:1-9)에도 장합니다. 33:7-9는, 18절의 일부 구절을 제외하고, 3:17-19과 문자적으로 일치합니다.
정리하자면, 3:16-21은 넓은 문맥에서는 33장 이후를 예비해주고, 가까운 문맥에서는 2:1-3:11을 보충해 줍니다. 전자의 시각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심판을 결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결정을 실행에 옮기기도 전에 벌써 심판 이후를 준비하셨습니다. 멸망의 심판과 심판 이후를 준비하셨습니다. 멸망의 심판과 심판 이후의 구원이 동시에 하나님의 계획안에 들어옵니다. 처음부터 심판 이후를 내다보게 해줍니다. 후자에 따라 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모든 이스라엘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멸망을 결정하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의인과 회개한 죄인에게는 구원의 길이 열립니다. 하나님 공의의 실천적 모습인 그분의 심판은 죄인들에게 한정됩니다.
하나님의 일꾼들은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야 합니다. 에스겔은 벙어리가 되어 평소에는 말을 하지 못하다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만 입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평상시에 어떻게 말하고 행동합니까? 어떻게 하면 믿지 않는 주변 사람들에게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벙어리가 된 에스겔(22-27)
사역을 하거나 신앙생활을 할 때 내는 열심이 간혹 사람에게서 비롯된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특히 주의해야 할 일은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데 자신의 욕심대로 행하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책임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이스라엘 민족의 파수꾼으로 세워 그들의 죄를 책망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도 학교와 가정에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파수꾼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까?
22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 23내가 일어나 들로 나아가니 여호와의 영광이 거기에 머물렀는데 내가 전에 그발 강 가에서 보던 영광과 같은지라 내가 곧 엎드리니 24주의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고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 25너 인자야 보라 무리가 네 위에 줄을 놓아 너를 동여매리니 네가 그들 가운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라 26내가 네 혀를 네 입천장에 붙게 하여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리니 그들은 패역한 족속임이니라 27그러나 내가 너와 말할 때에 네 입을 열리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반역하는 족속임이니라(22-27)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셔서 백성을 깨우치게 하십니다. 놀랍게도 에스겔이 알려야 할 긴급한 대적을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말씀하십니다.
(1) 사건의 배경(22-24a)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거기서’) 본 여호와의 영광을 다시 경험합니다(22-24a). 명령에 따라 거주지에서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계곡으로 나간 에스겔에게 여호와는 그에게 임할 물리적 상황을 알려주십니다.
(2) 하나님의 명령(24b)
먼저 24b절에서 여호와는 에스겔에게 ‘네 집에 들어가 문을 닫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출입할 수 없도록 문을 닫는 이유가 달리 언급되지 않기에, 명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호하게 남습니다.
(3) 밧줄을 묶이는 에스겔(25)
24b절의 명령과 달리 25절은 서술문입니다. 사람들이 에스겔을 밧줄로 묶어 그들 가운데로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24b절의 경우처럼 에스겔이 묶여 집에 연금되는 이유가 제시되지 않습니다. 26절에서 다시금 행위자가 바뀝니다.
(4) 벙어리가 되는 에스겔(26-27)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의 혀를 입천장에 붙여 벙어리로 만드십니다. 이번에는 여호와께서 이유를 알려 주십니다. ‘말 못하는 자가 되어 그들을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하려 하심입니다.
에스겔로 꾸짖지 못하게 하시는 이유는 청자들이 ‘패역한 족속’(반항의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27절은 ‘입의 열림’에 의해 26절에 연결됩니다. 여호와께서 에스겔과 이야기할 때 그의 입을 열어주셔서 사람들에게 당신의 말을 전하게 하십니다. 예언자의 사명이 단순하게 말씀의 전달에만 머무는 이유는 26절의 경우처럼 청중이 ‘반역하는 족속’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는 에스겔이 밖에 나갈 수 없게 문을 잠그게 하시고, 사람들은 에스겔이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밧줄로 묶어 집에 감금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에스겔을 벙어리로 만들어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하십니다. 공적 장소를 찾아가서 말씀을 선포해야 할 예언자가 활동의 자유를 빼앗기고 언어 능력을 상실합니다. 문의 잠금과 밧줄로 동여맴과 벙어리 됨이라는 상징적 행위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처음 두 상징 행위는 에스겔과 그의 청자 사이의 완전한 단절과 적대적 관계를 시사하고, 세 번째는 이 단절과 대립이 에스겔로 ‘꾸짖는 자’가 되지 못하게 했음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22-27절의 현재 위치는 물론 우연의 결과물이 아닙니다. 22-27절은 처음부터 ‘파수꾼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3:17-21) 에스겔이 ‘꾸짖는 자’로 활동하지 못한 이유를 보여줍니다. 10-15절과 16-21절을 함께 읽으면 마치 에스겔이 유배민들 가운데서 ‘파수꾼 예언자’로 활동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곧 이스라엘 족속에 대해서는 심판 예언자로, 유배민들에 대해서는 ‘파수꾼 예언자’로 에스겔의 역할이 나뉘게 됩니다. 22-27절은 그러한 이해(오해)를 교정해줍니다. 여호와에 의해 입이 열린 후에야(33:21-22) 에스겔은 그들 가운데서 ‘꾸짖는 자’로 활동하게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는 파수꾼을 부르는 시대입니다. 말이 아니라 삼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현실을 넘어선 하나님의 미래를 전할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축복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을 가감 없이 드러낼 파수꾼을 부르십니다. 영과의 하나님을 드러낼,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경험한 자를 부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