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민수기(완료)

민수기(40) - 민수기 21장 1-20절 -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백의종군 2025. 2. 1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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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21-01)


합력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민수기 21장 1-20절


 

‘속성 과외’, ‘5분 완성’, 우리가 좋아하는 단어들입니다. 우리는 오래 걸리는 것, 힘든 것을 싫어합니다. 뭐든지 빨리 빨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깁니다. 하지만 신앙생활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속성으로 되는 믿음, 빨리 성숙해지는 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걷는 모습을 묵상하면서 한 걸음씩 걷는 과정의 중요성을 확인해 봅시다.

 

  • 옛 세대를 대표하던 아론과 미리암은 죽었습니다. 모세 조차 가낭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의 죽음 이후의 여정을 진행 중입니다. 그들은 호르 산을 떠나 아마도 북쪽의 네게브 지역으로 향했을 것입니다. 아랏 지역은 네게브의 동편, 사해 근처에 위치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은 방어력이 취약한 지역을 찾아 가나안 진입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호르마에서의 전투(1-3)

사람은 실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삶의 여정 속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선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겪는 불행은 복을 위한 하나님의 포석입니다. 만사형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는 고난과 역경도 의미 있는 삶의 여정 중 하나가 됩니다.

 

1네겝에 거주하는 가나안 사람 곧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이 아다림 길로 온다 함을 듣고 이스라엘을 쳐서 그 중 몇 사람을 사로잡은지라 2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3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시고 가나안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과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니라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호르마라 하였더라(1-3)

 

40년 광야 생활 끝에 드디어 약속의 땅을 향해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지금까지는 원망과 심판의 내용으로 가득했다면, 이제부터는 승리에 대한 소식도 들리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이스라엘은 행진을 시작하여 아다림 길로 향합니다. 가나안 사람이요, 네게브의 통치자인 아랏의 왕이 위협을 느끼고 군사와 함께 나아와 이스라엘 백성을 기습 공격합니다. 아다림 길은 정탐꾼의 길로 종종 이해되었으나, 본문에 있는 아다림은 당시에 잘 알려졌던 교역로였을 것입니다. 기습 공격을 받아 몇몇을 포로로 빼앗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서원하면서 아랏의 왕과 그 백성을 하나님께 바치겠노라 다짐합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라고 말하는데, 성읍은 복수형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속한 여러 성읍을 의도한 것입니다. 멸한다는 말도 히브리어 ‘헤렘’으로 완전히 진멸하여 드린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들의 서원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아랏의 왕과 그 성읍들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사람들이 그곳 이름을 ‘호르마’라 부르는데, 진멸한다는 뜻의 ‘헤렘’에서 온 단어로 멸망을 의미합니다. 호르마는 이미 광야 여행 초기에 14:45에서 중요한 사건과 더불어 등장하는 장소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우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음에도 무리하게 가나안 진입을 시도하다 가나안과 아말렉 군대에 패하여 호르마까지 퇴각했었습니다. 이 동일한 장소 호르마에서의 승리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이제 여기서부터 승리하는 이스라엘의 역사적 전환점이 됩니다(참조, 14:39-45).

 

광야에 세워진 놋뱀(4-9)

우리가 구원받는 길은 하나님을 믿는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도 멸망 당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십자가에 달려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기에 우리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에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면 구원을 얻습니다.

 

4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5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6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7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8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9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4-9)

 

민수기에서 잘 알려진 사건들 중 하나인 놋뱀 사건이 소개됩니다. 호르 산을 출발한 백성이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했다는 여정 기록으로 시작합니다. 그러지 않아도 힘든 여정인데 우회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1) 백성들의 원망(4-5)

 

호르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은 에돔 땅을 돌아가기 위해 남쪽으로 방향을 정하고 홍해 아카바 만으로 내려갑니다. 또다시 돌아가는 길이었기에 백성들의 인내심은 금방 바닥납니다. ‘마음이 상하다’는 직역하면 ‘영혼이 짧아지다’인데, 조급하여 분노하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길어지는 광야 여행에 지친 백성들은 불평과 원망을 쏟아냅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서 광야에서 죽게 하였느냐?’ ‘먹고 마실 것이 부족하고, 가진 것은 하찮은 음식에 불과하다.’ 광야에서 늘 하던 원망이지만, 이번엔 더 직접적으로 하나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합니다(5). 백성들이 말하는 하찮은 식물이 만나를 지칭하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6)

 

하나님의 심판은 즉각적이고 단호합니다.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물려 죽게 하십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불뱀은 복수형으로 독이 있는 뱀들을 뜻합니다. 여기서 ‘불’로 번역한 단어는 ‘태우다’를 의미하는 사라프에서 온 단어이기 때문에 ‘불뱀’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맹독에 물리면 독이 퍼져 몸이 검게 변하는 현상이 불에 타서 검게 된 것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문맥에서 ‘불뱀’을 단순히 ‘세라핌’으로만 기록하기 때문에 두 단어는 동격으로 보아도 됩니다(8). 고대 근동 사회에서 뱀은 신성을 가진 존재로 간주되기도 했지만,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그런 흔적을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 도구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맹독을 가진 뱀들이 온 회중을 헤집고 다녔고, 그로 말미암아 뱀에 물려 죽은 자가 많았습니다.

 

(3) 회개와 중보(7)

 

큰 두려움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나아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했음을 인정하고 회개합니다. 자신들의 죄를 인정한 백성들은 모세를 향해 중보하며 기도해줄 것을 요청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의 중보자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지난 역사와 실패를 통해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고 똑같이 범죄하고 회개하는 패턴을 이어가지만, 이번에는 모세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은 채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며 중보합니다.

 

(4) 하나님의 구원하심(8-9)

 

모세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즉시 고쳐주기보다는 고침 받아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십니다. 물론 복잡하거나 어려운 방법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즉시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고 명하십니다. 왜 하나님은 단순하게 기도에 응답하시고 모든 병자를 치료해주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불뱀을 쳐다보게 하심으로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놋으로 불뱀을 만들어서 나무에 답니다. 고대 근동에서 뱀을 숭배함으로 주술적인 힘을 얻으려 했던 관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놋뱀을 쳐다보는 것은 참된 구원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물린 자들 중에서 매달린 놋뱀을 보는 자는 모두 살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놋뱀을 본 자는 모두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시험하면서 놋뱀을 바라보지 않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본문은 매달린 놋뱀에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명백하게 알려주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역사를 지나면서 놋뱀을 풍요를 가져다주는 이방 제의의 일종으로 왜곡하고 말았습니다. 광야에서 놋뱀이 장대에 매달렸던 것처럼, 우리 주 예수님께서도 나무에 높이 들리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높이 매달린 놋뱀을 봄으로 구원에 이른 것처럼, 우리도 십자가에 높이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즉 믿음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 3:16). 사도 바울은 우리도 광야에 있었던 그들처럼 주를 시험하다가 멸망 당하지 않도록 하자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고전 10:9).

 

계속되는 여행(10-20)

이스라엘 백성의 찬송을 들으면서, 우리 역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삶을 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찬송하기까지 우리 역시 수많은 훈련과 시행착오를 겪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분명히 주시는 분임을 믿고 참고 기다리는 훈련,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는 훈련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 역시 불평에는 빠르지만 감사에는 더딘 사람들입니다. 감사와 찬송을 배워가며 한 걸음씩 전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0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을 떠나 오봇에 진을 쳤고 11오봇을 떠나 모압 앞쪽 해 돋는 쪽 광야 이예아바림에 진을 쳤고 12거기를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쳤고 13거기를 떠나 아모리인의 영토에서 흘러 나와서 광야에 이른 아르논 강 건너편에 진을 쳤으니 아르논은 모압과 아모리 사이에서 모압의 경계가 된 곳이라 14이러므로 여호와의 전쟁기에 일렀으되 수바의 와헙과 아르논 골짜기와 15모든 골짜기의 비탈은 아르 고을을 향하여 기울어지고 모압의 경계에 닿았도다 하였더라 16거기서 브엘에 이르니 브엘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백성을 모으라 내가 그들에게 물을 주리라 하시던 우물이라 17그 때에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우물물아 솟아나라 너희는 그것을 노래하라 18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그들은 광야에서 맛다나에 이르렀고 19맛다나에서 나할리엘에 이르렀고 나할리엘에서 바못에 이르렀고 20바못에서 모압 들에 있는 골짜기에 이르러 광야가 내려다 보이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르렀더라(10-20)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여행 마지막 부분을 요약하는 단락입니다. 좀 더 정확한 여정은 33장과 함께 보면 유익합니다. 여정을 요약할 때 ‘떠나’와 ‘진을 쳤다’라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타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을 떠나 오봇에 이르렀다고 말합니다. 문맥에 따르면 그곳은 놋뱀 사건이 있었던 장소입니다. 이스라엘은 불뱀 사건이 일어났던 부에서 오봇으로, 오봇에서 이예아바림에 이릅니다. 또 거기서 떠나 세렛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골짜기는 와디를 뜻합니다. 건기에 세렛 와디에 도착했다는 뜻입니다. 세렛 와디는 모압의 남쪽 경계인데, 신명기 2:14에서는 그곳까지 백성들의 여정이 38년 걸렸다고 친절하게 요약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동쪽으로 향하다가 이제 가나안을 향해 북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렛을 지난 이스라엘은 아르논 강 건너편까지 가서 진을 칩니다. 아르논은 모압과 암몬의 경계면에 있습니다. 당시는 아모리 왕 시혼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모압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압 땅도 동쪽으로 돌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은 이렇게 순적하게 약속의 땅에 가까이 나아갑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모압에 속한 비스가 산 꼭대기에 이릅니다. 이제 먼발치로 요단강 너머에 있는 약속의 땅이 눈에 보입니다.


우리의 살 길은 원망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도 주님을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원망해 불뱀이라는 징계를 보내셨지만, 이스라엘의 자백에는 놋뱀이라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놋뱀의 예표를 자신에게 적용하심으로써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게 될 것을 이후에 말씀하십니다. 뱀에 물리는 이스라엘이 단지 놋뱀을 쳐다보기만 해도 살았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기만 하면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살길은 원망하며 주님께 돌아서는 것이 아니라 절망 가운데서도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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