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41) - 여호수아 23장 1-16절 -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
여호수아(23-01)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
여호수아 23장 1-16절
‘유언(遺言)’이란 그가 죽은 뒤의 법률관계를 정하려는 생전의 최종적 의사표시로서 유언자의 사망으로 그 효력이 생깁니다. 유언은 반드시 유언자 본인의 독립한 의사에 따라 행해져야 하는 행위로, 상대방의 수락을 필요로 하지 않는 단독행위입니다. 마지막으로 여호수아의 유언적 권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떠난 자리에 누가 역할을 이을 것입니까? 엄습해 오는 두려움과 새로운 희망의 전진 사이에서 정리와 정돈이 필요하다. 얽매이기 쉬운 것들은 버리고 가야 합니다.
- 23-24장은 노년의 여호수아의 마지막 장면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개역개정과 달리 ‘많은 날들이 흘렀다’는 표현으로 23장의 첫 구절을 시작합니다. 23장은 8장에서 체결된 세겜 언약을 다시 다짐하는 예식이며, 여호수아서의 끝을 맺습니다. 이 장면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넌 지 약 30년이 지난 시점으로 추정됩니다.
여호와를 기억하라(1-5)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모습으로 살려고 힘을 다해야 합니다. 주변 누군가는 자신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듣고 보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하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될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의 사역을 본이 되도록 살았습니다.
1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들로부터 이스라엘을 쉬게 하신 지 오랜 후에 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은지라 2여호수아가 온 이스라엘 곧 그들의 장로들과 수령들과 재판장들과 관리들을 불러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나이가 많아 늙었도다 3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이시니라 4보라 내가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나라들과 이미 멸한 모든 나라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아 너희의 지파에게 기업이 되게 하였느니라 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 앞에서 그들을 쫓아내사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시리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그 땅을 차지할 것이라(1-5)
23-24장은 신명기에서 늙은 모세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는 장면과 흡사합니다.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 죽음이 임박한 늙은 여호수아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죽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장로, 수령, 재판장 그리고 관리를, 즉 모든 지도자들을 불러 고별사를 전합니다. 그는 모세의 고별사가 그러했듯이 그들에게 최근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들을 회상합니다. 자신들이 수년 간 가나안 족속과 전쟁을 벌였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 전쟁을 이끄셨습니다(3). 여리고의 첫 번째 전투가 교훈하듯이 가나안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비결은 인간의 군사력과 전술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성을 돌다가 소리를 지르라는 불가해한 전술을 그들이 절대 순종했을 때, 여리고 성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후 그들은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사하며 전투를 수행하지만, 언제나 이 믿음의 원리를 따라 싸워야 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막강한 군사력만 믿고 전쟁에 임한다면, 승리는 보장될 수 없었습니다. 가나안 전쟁은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 땅을 승전국의 왕에게서 하사받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땅을 얻은 그들은 제비를 뽑아 지파별로 나누어 영원한 유산(나할라, 기업)으로 삼았습니다(4). 제비뽑기에는 아직 정복되지 않은 남아 있는 종족들(고임, 나라들)의 땅도 미리 포함되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을 요단 강부터 지중해에 이르는 동서의 범위로만 간략히 묘사합니다(4). 여기서 요단 동편이 약속의 땅의 유산에서 제외되는데 아마 이것은 애초에 요단 서편의 땅만이 약속의 땅이라는 원칙을 재확증하는 진술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요단 동편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제비뽑기의 수단으로 할당하신 이상 여기서 그 땅이 제외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호수아의 발언은 제단 사건 이후 재화합의 다짐으로 결속된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신에 반합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분명 요단 동편 지파들의 반발을 살 수 있는 발언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히브리어 문장은 특이합니다. 이것은 ‘남아 있는 종족들을 요단강으로부터, 그리고 모든 정복한 종족들을 지중해까지’로 번역되는 문장입니다. 개역개정을 포함한 대다수 영역본들은 단순하게 ‘요단에서부터 해 지는 쪽 대해까지의 남아 있는 종족들과 모든 정복한 종족들을’로 옮기는데, 이것은 적절한 번역이 아닙니다. 아마도 여호수아가 남아 있는 족속에 대해서만 그것을 요단 서편과 결부시키는 이유가 있는 듯합니다. 요단 동편은 사실상 정복이 완전히 끝난 반면(극히 일부, 즉 13:13의 그술과 마아가를 제외하고), 요단 서편은 곳곳에 정복되지 않은 종족들이 남아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수아의 이 발언에는 이미 할당이 완료된 요단 동편을 약속의 땅에서 배제하려는 의도는 들어 있지 않을 것입니다.
5절에서 재차 여호수아는 가나안 종족을 쫓아낸 분이 여호와이심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동사 ‘하다프’는 ‘떠밀다’라는 뜻으로 구약에서 매우 드문데 여호수아에서는 여기서만 나타납니다. 이러한 의미로는 대부분 동사 ‘야라쉬’가 사용되는데 이 동사는 ‘점유’의 의미로 사용되는 반면, ‘하다프’는 물리적으로 떠밀어내는 동작을 가리킵니다. 다시 한 번 이러한 동사의 사용은 가나안 종족들에 대한 헤렘 전쟁이 실제적으로는 대량 학살보다 오히려 추방의 방식으로 전개되었을 가능성을 시사 합니다.
여호와께 순종하라(6-10)
인생을 돌아보면서 말씀 붙들지 않고 다른 얄팍한 꼼수를 찾고 있지 않는지 자신의 모습이 보이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맨 마지막에 찾거나 사람이나 사람이 만든 다른 것을 믿고 신뢰하는 나쁜 습관이 내 안에 아직 자리 잡고 있는지도 점검하기 원합니다. 살 길은 말씀에 있습니다.
6그러므로 너희는 크게 힘써 모세의 율법 책에 기록된 것을 다 지켜 행하라 그것을 떠나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7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 중에 들어 가지 말라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 그것들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라 또 그것을 섬겨서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 8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가까이 하기를 오늘까지 행한 것 같이 하라 9이는 여호와께서 강대한 나라들을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셨으므로 오늘까지 너희에게 맞선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10너희 중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으리니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희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너희를 위하여 싸우심이라(6-10)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선물로 받았으니 이제 그들이 모세의 율법대로 살 것을 명령합니다. 여기서 ‘모세의 율법책’이 모세오경인지 아니면, 모세가 마지막으로 재반포한 신명기인지, 혹은 신명기의 율법 부분인지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여호수아서가 마지막 유언을 남기기 전에 이미 모세가 기록한 ‘모세의 율법서’라는 책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명기는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다 책에 써서 마쳤으며’ 그 책은 언약궤 곁에 보관되었다고 진술하는데(신명기 31:24-26) 아마 여기서 말하는 모세의 율법책은 바로 그 책을 가리킬 것입니다. 하지만 모세가 기록한 신명기 율법의 범위와 내용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벗어나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말아야 합니다(6). 이것은 이미 1장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당부하신 말씀의 반복입니다(1:7). 이제 마지막 장면에서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동일한 당부의 말을 그대로 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은 가나안 종족들에게 편입되고 동화되어선 안 되며 그들의 신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신들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기도하거나 그 신들을 숭배하고 절하는 일을 해선 안 됩니다(7).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께 강하게 밀착하여(다
바크) 있어야 합니다(8).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의 적들을 물리쳐주셨고 그리하여 그들을 맞설 대적들이 더 이상 없기 때문입니다(9). 그들은 여호와의 능력으로 인해 가장 강력한 나라가 되어 한 사람이 천 명을 물리칠 능력을 지닐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이스라엘이 물리적 군사력 너머 하늘의 군사적 도움을 받는 최강의 나라가 될 것이라는 문학적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두려워하라(11-13)
자신이 할 일은 말씀을 지켜 순종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고 싶거든 지나온 과거를 돌아보면 됩니다. 과거를 돌아보는 삶이 현재와 미래를 헤쳐 나가는 지혜를 얻게 합니다. 눈 앞에 펼쳐진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지만 과거에 무슨 일이 있어 났는지 그리고 그 일을 통해 어떤 결과가 발생했는지는 조금만 살펴보아도 쉽게 드러납니다.
11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12너희가 만일 돌아서서 너희 중에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가까이 하여 더불어 혼인하며 서로 왕래하면 13확실히 알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의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너희의 눈에 가시가 되어서 너희가 마침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멸하리라(11-13)
현재 여호수아는 마치 신명기의 모세처럼 말을 하고 그의 어투를 사용하면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사랑하라’는 요청은 신명기에서 두드러지며, 동화와 통혼이 가져올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순종에 따른 복과 불순종에 따른 벌을 강조합니다. 만일 그들이 여호와로부터 돌아서서 오히려 이방 민족들과 긴밀히 유착하고 그들과 통혼을 한다면 그들은 덫과 올무에 걸린 신세가 될 것입니다. 동사 다바크가 여기서는 하나님이 아닌 이방 민족에 대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밀착은 혼인 관계와 깊은 친분(왕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그 땅의 거주민들과 평화 협약을 맺고 공동 거주를 하며 통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올무가 되고 덫이 되며 옆구리에 채찍이 되고 눈에 가시가 될 것입니다. 올가미나 덫은 누군가 한 번 걸리면 빠져나올 수 없으며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결국 죽음의 운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옆구리의 채찍(아마 큰 가시)과 눈에 가시는 지속적인 큰 고통을 발생시킵니다. 그들은 이러한 극한 고통을 당하고 던에 걸린 채 죽을 것입니다.
실제로 사사기 1:21-33과 열왕기상 9:20-21은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제기대지 않은 상황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사사기 2:2-3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지 않으시고 그들의 신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게 하셨다고 보고합니다. 따라서 올무는 불순종한 그들이 초래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을 지키라(14-16)
여호수아가 그 입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고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 안에 기록된 것을 지켜 행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유지할 때면 아름다운 땅이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소홀해지면 멸망의 땅이 되기도 합니다. 사는 이 땅을 내가 어떻게 여기는지 살펴 보는 것은 나와 하나님과의 현재 상태를 가늠하게 합니다. 척박한 땅이 아닌 축복의 땅이 되게 하는 방법은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깊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14보라 나는 오늘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하나도 틀리지 아니하고 다 너희에게 응하여 그 중에 하나도 어김이 없음을 너희 모든 사람은 마음과 뜻으로 아는 바라 15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신 모든 선한 말씀이 너희에게 임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모든 불길한 말씀도 너희에게 임하게 하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를 멸절하기까지 하실 것이라 16만일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언약을 범하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들에게 절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너희에게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너희가 속히 멸망하리라 하니라(14-16)
여호수아는 마지막 작별 인사를 고합니다. ‘온 세상이 가는 길’은 인생의 순리인 죽음을 가리킵니다(열왕기하 2:2).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선한 말씀은 한 말씀도 실패함이 없이 모두 성취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따라서 순종에 따른 복을 약속한 선한 말씀이 성취되는 것처럼, 불순종에 따른 벌을 약속한 악한 말씀 또한 성취될 것입니다. 또한 만일 끝까지 그들이 배교의 길을 고집한다면, 그 벌은 그들이 완전히 멸망할 때까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하고서 다른 신들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섬기고 절한다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순식간에 그 땅에서 망할 것입니다. 땅은 이렇게 이중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여부에 따라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은 언제든 유황불이 쏟아지는 저주의 땅이 될 수 있었습니다.
흑암 권세의 통치를 받다가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가나안의 거짓 풍요와 거짓 신들을 따라가면 자유를 잃고 인간성을 상실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순종과 충성으로 살면 하나님의 영구적인 다스림 속에서 진리에 붙잡힌 참 자유자가 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 배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