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12) - 사무엘상 6장 1절-7장 2절 -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사무엘상(06-01)
범접할 수 없는 거룩하신 하나님
사무엘상 6장 1절-7장 2절
“거룩”은 “타자성”이라는 뜻입니다. 그분을 통제하거나 조종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거나 길들이지 않는 것을 거룩 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거룩하신 하나님은 자유로운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습니다. 블레셋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자유와 거룩은 어떻게 표현되었습니까?
- 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지역에 머물 때 블레셋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내리신 재앙을 더 견딜 수 없어서 돌려보내기로 하였습니다. 새 수레에 속건 제물을 신고, 젖먹이는 암소 두 마리를 그 수레에 메어 벧세메스로 끌고 가게 하였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 안을 보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만) 칠십 명의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그들은 다시 그 궤를 기랏여아림으로 가져가 아비나답의 집에 두었습니다.
이스라엘로 돌아간 여호와의 궤(1-9)
하나님께서는 한 번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시는 분입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능력을 목격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실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승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1여호와의 궤가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있은 지 일곱 달이라 2블레셋 사람들이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궤를 어떻게 할까 그것을 어떻게 그 있던 곳으로 보낼 것인지 우리에게 가르치라 3그들이 이르되 이스라엘 신의 궤를 보내려거든 거저 보내지 말고 그에게 속건제를 드려야 할지니라 그리하면 병도 낫고 그의 손을 너희에게서 옮기지 아니하는 이유도 알리라 하니 4그들이 이르되 무엇으로 그에게 드릴 속건제를 삼을까 하니 이르되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라야 하리니 너희와 너희 통치자에게 내린 재앙이 같음이니라 5그러므로 너희는 너희의 독한 종기의 형상과 땅을 해롭게 하는 쥐의 형상을 만들어 이스라엘 신께 영광을 돌리라 그가 혹 그의 손을 너희와 너희의 신들과 너희 땅에서 가볍게 하실까 하노라 6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그가 그들 중에서 재앙을 내린 후에 그들이 백성을 가게 하므로 백성이 떠나지 아니하였느냐 7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8여호와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9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1-9)
블레셋에 닥친 재앙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여호와의 법궤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합니다. 승리자로서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전리품을 취하셨듯이, 이번에도 전리품을 취해 돌아오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블레셋을 심판하시는 데 이스라엘의 칼과 병거를 의지하지 않으셨습니다.
(1) 제사장과 점술가의 조언을 구함(1-2)
법궤가 블레셋 땅에 머문 지 7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기간은 5장에서 언급된 여러 사건들이 일어난 기간입니다. 재앙 때문에 블레셋의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던 법궤를 원래 있던 곳인 이스라엘로 돌려보내자는 의견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을 불러서 어떻게 여호와의 궤를 원래 있던 곳으로 보낼지 방법을 묻습니다(2). 제사장들은 다곤 신이나 기타 블레셋 신들의 제사장들이고, 점쟁이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점을 치고 예언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법궤를 보낼 때 반드시 속건제를 같이 드려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속건제는 여호와의 성물에 손실을 입힐 경우 그 손실을 입힌 것에 5분의 1을 더하여 배상하는 제사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는 속건제도 레위기에서 말하는 규정과는 조금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배상제입니다. 이들은 법궤를 가져온 것을 여호와의 거룩성을 훼손한 것으로 여겼고,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진노하시고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2) 소건 제물의 필요성(3)
그래서 속건제를 드려 여호와의 진노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병도 치료를 받고 왜 여호와의 손이 자신들을 비껴가지 않는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만일 속건제를 드려서 재앙이 멈추고 병이 낫게 되면, 법궤로 인해 여호와께서 자신들에게 진노를 내렸다는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3) 소건 재물의 내용(4-6)
이에 백성들이 속건제로 무엇을 드릴지를 다시 묻습니다. 이에 제사장들과 점쟁이들은 블레셋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을 보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블레셋 다섯 방백은 블레셋 다섯 도시의 지도자들로 이들은 블레셋 사람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은 블레셋 전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입니다. 제물이 금 독종과 금 쥐의 모양을 한 이유는 독종을 쥐가 퍼뜨리는 질병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방법을 이야기한 후에 이렇게 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가볍게 해주시지 않겠느냐고 말합니다. ‘손을 가볍게 하다’라는 표현은 5:6의 ‘여호와의 손이…엄중히 더 하사’와 대조되는 표현으로 ‘재앙을 약하게 내린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혹시’라는 희망을 표현하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들도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외심을 갖고 자신의 식견대로 하지만, 이 제물을 받고 재앙을 거두실지 여부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여기서 블레셋의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은 자신들에게 임한 재앙을 애굽에 내려진 재앙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첫째로, 블레셋에 내려진 재앙을 애굽에 내린 재앙과 동일한 단어인 ‘마게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5절에서 ‘땅을 해롭게 하는 쥐’라는 표현에서 ‘해롭게 하는 것’이란 표현은 출애굽기 12:23에서 유월절에 애굽의 장남을 치기 위해 들어가는 ‘멸하는 자’와 동일한 단어인 ‘마쉬히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쥐를 블레셋 땅을 파괴하는 재앙을 가져오는 존재로 본 것입니다. 셋째로, 백성들을 설득하는 수단으로 애굽 사람들과 바로가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재앙을 받은 예를 들면서 그들도 이런 일을 당하겠느냐고 묻습니다. 이 수사학적인 질문은 우리는 애굽 사람의 교훈을 보고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말자고 설득하는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내린 재앙을 보면서 과거 애굽에 내려진 재앙을 기억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큰 권능을 가지신 두려운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4) 새 수레와 젖먹이는 암소(7-9)
7-9절은 법궤를 보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데, 이들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재앙을 보고도 끝까지 이 재앙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인지 확인하려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제의에서처럼 법궤를 수레로 옮기려고 새 수레를 만들고 젖먹이 송아지가 있는 암소 두 마리로 수레를 끌게 하였습니다. 젖먹이 송아지가 있는 암소를 택한 이유는 암소들이 본능적으로 새끼가 있는 곳으로 향하기 때문에, 소들이 송아지들에게 가는지 혹은 본능을 거스르고 이스라엘 지역인 벧세메스로 가는지를 본 후 이 재앙이 여호와께서 내리신 것인지 우연히 온 것인지를 확인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 블레셋 사람들이 끝까지 자신들의 신인 다곤이 이스라엘의 신인 여호와께 졌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벧세메스에 도착한 여호와의 궤(10-18)
인간은 너무나도 간사하고 악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게 되며 풍요로 인해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은혜를 망각하고 감사를 잃어버린, 지극히 무미건조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모세가 주는 교훈을 기억하고 신앙적 태도를 견지해야 합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울 때도 외부의 적인 악의 세력에 대한 경계 못지않게 내적인 교만과 방심을 경계해야 합니다.
10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11여호와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12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13벧세메스 사람들이 골짜기에서 밀을 베다가 눈을 들어 궤를 보고 그 본 것을 기뻐하더니 14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여호와께 드리고 15레위인은 여호와의 궤와 그 궤와 함께 있는 금 보물 담긴 상자를 내려다가 큰 돌 위에 두매 그 날에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께 번제와 다른 제사를 드리니라 16블레셋 다섯 방백이 이것을 보고 그 날에 에그론으로 돌아갔더라 17블레셋 사람이 여호와께 속건제물로 드린 금 독종은 이러하니 아스돗을 위하여 하나요 가사를 위하여 하나요 아스글론을 위하여 하나요 가드를 위하여 하나요 에그론을 위하여 하나이며 18드린 바 금 쥐들은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에까지 그리고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큰 돌에 이르기까지 다섯 방백들에게 속한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성읍들의 수대로였더라 그 돌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오늘까지 있더라(10-18)
여호와의 궤를 돌려보내자고 결정하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재앙의 원인이 정말로 이 법궤 때문인지 확인하려 했습니다. 자신들의 신이 여호와보다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이 재앙이 우연이고, 여호와도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신이길 바란 것입니다.
(1)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옴(10-16)
사람들이 제사장들의 말을 그대로 따라서 암소 둘을 끌어오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어 두었습니다. 여호와의 궤와 금 쥐와 금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었습니다. 그리고 암소를 벧세메스로 가게 하자, 암소는 울면서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벧세메스를 향해 곧장 갔습니다. 송아지가 엄마를 부르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하나님의 강권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울면서 계속 걸어가는 암소의 모습을 보면서 재앙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다는 것을 한 번 분명하게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법궤가 벧세메스에 도착한 때는 밀 추수기로 대략 5-6월 정도입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추수를 하다가 돌아오는 궤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본 것을 기뻐하였다’라는 표현은 이것이 전혀 상상도 못한 상황이며,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던 법궤를 다시 본 후 찾아온 큰 기쁨을 의미합니다.
수레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에 있던 큰 돌 근처에 오자 멈춰 섰습니다. 이들의 걸음은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멈춘 것입니다. 이 큰 돌위에 법궤와 금 보물이 담긴 상자를 두었는데, 이 큰 돌은 제단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수레의 나무를 패고 암소들을 잡아 여호와께 모두 태워서 드리는 번제를 드렸고, 다른 짐승들을 잡아 짐승제사를 드렸는데, 이 제사의 기름과 피는 여호와께 바치고 고기는 제사를 지낸 사람들이 나누어 먹으며 잔치하는 형태로 드리는 제사였습니다. 벧세메스 사람들은 법궤가 돌아온 것을 보고 축하 잔치를 벌인 것입니다. 법궤가 선물까지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블레셋의 신인 다곤을 이기고 전리품까지 챙겨 귀환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벧세메스 사람들은 여호와의 승진을 축하하고 기뻐하며 여호와께 제시를 드리고 마을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며 축하하였습니다. 대조적으로 블레셋의 다섯 방백들은 암소들이 벧세메스에 도착한 것을 보고 재앙이 여호와의 권능이었다는 사실과 자신들의 신 다곤이 이스라엘 신에게 패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에글론으로 돌아갔습니다.
(2) 블레셋이 드린 예물 목록(17-18)
블레셋 사람들이 속건 제물로 여호와께 드린 목록을 기록한 것입니다. 독종 형상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를 위해 드렸고, 다섯 쥐들은 다섯 방백에게 속한 도시와 그 주변의 마을과 블레셋 들 등 모든 블레셋 지역을 위해 드렸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대 사회는 성읍과 그 주변의 마을과 들로 구성됩니다. 그러므로 블레셋은 다섯 방백들이 다섯 개의 성읍을 중심으로 다섯 구역으로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습니다.
기랏여아림으로 간 여호와의 법궤(19-7:2)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무능력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때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거나 경외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때에도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신실하실 것이며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19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오만) 칠십 명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륙하셨으므로 백성이 슬피 울었더라 20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를 우리에게서 누구에게로 올라가시게 할까 하고 21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블레셋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도로 가져왔으니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7:1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그의 아들 엘리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여호와의 궤를 지키게 하였더니 2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19-7:2)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감당할 만큼 그들은 영적으로 깨어 있거나 겸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자는 이스라엘이든 블레셋이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벧세메스에 도착한 법궤를 함부로 들여다보다 한 날 70명이나 목숨을 잃었습니다.
(1) 벧세메스에 임한 재앙(19)
벧세메스에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보았고, 이로 인해 여호와께서 백성들을 쳐서 (오만) 칠십 명이 죽었다고 합니다. 이 사건은 백성들이 여호와의 궤를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본 사건입니다. 그러나 오만 칠십 명은 한 마을 사람들의 숫자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이기 때문에 어떤 사본의 경우에는 칠십 명만 기록하고 있고, 대부분의 주석가들도 70명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함부로 행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벌을 내리신 것입니다.
(2) 벧세메스 사람들의 요청(20-21)
“누가 능히 서리요.” 여호와 앞에 선다는 말은 여호와를 섬긴다는 뜻입니다. “옮겨 가라”(직역하면 ‘가지고 올라가라’)는 말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기랏여아림은 높은 곳(해발 약 700m)에 있는데, 그 이름의 뜻은 ‘숲의 성읍’이며, 기브온과 연맹을 맺은 성읍일 것입니다(수 9:17). 이 성읍은 벧세메스 동북쪽으로 14킬로미터, 예루살렘에서 서쪽으로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3) 기랏여아림 아비나답의 집에 모셔진 여호와의 궤(7:1-2)
법궤가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던 20년은 사무엘의 회개 운동 때까지를 말합니다(7:3). ‘사모하다’(7:2)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하’는 ‘애곡하다’의 뜻이므로 울며 사모한 것을 나타냅니다.
이 일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여호와의 권능과 거룩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고 여호와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다른 곳으로 옮긴 것처럼, 이들도 법궤를 기랏여아림으로 옮기고, 그곳에서 법궤를 지키기 위해 엘리에젤을 선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은 그분의 거룩하심과 자유하심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기쁘신 뜻을 따라 자유롭게 결정하고, 그 자유의 길로 우리를 초대하시고,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며 응답할 때, 우리도 그 하나님의 자유를 누리며, 생명을 만들어내고 샬롬 공동체로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