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아모스(완료)

아모스(09) - 아모스 6장 1-14절 - 교만한 자와 하나님의 경고

백의종군 2024. 9. 17. 10:49
728x90
반응형

아모스(06-01)


교만한 자와 하나님의 경고

아모스 6장 1-14절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지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만이 우리의 삶에 들어오면,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고, 스스로를 의지하며 하나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 이스라엘 지도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흉한 날이 먼 줄 알고 게으르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합니다. 정의를 쓸개로 바꾸고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자만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원수에게 넘기시니, 이스라엘 온 땅이 짓밟히고 백성은 학대당할 것입니다.

 

화 있을진저(1-2)

교만은 자신의 물질적 번영이나 사회적 지위에 지나치게 자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교만한 자들은 자신의 성취에 의존하며 자신을 높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교만이 결국 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힘에만 의존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왜곡되고, 결국 멸망을 초래하게 됩니다.

 

1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교만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 곧 백성들의 머리인 지도자들이여 이스라엘 집이 그들을 따르는도다 2너희는 갈레로 건너가 보고 거기에서 큰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1-2)

 

이스라엘에서 가장 우위에 있던 사람들이 제일 앞장서서 포로로 끌려갈 것을 선포하는 예언입니다. 심판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시온에 살면서 더 이상 의지할 것 없이 자기가 제일 잘났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사회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은 기득권층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백성을 바르게 인도해야 하는 지도자들로, 백성은 그들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최고위급 인사들입니다. 2절에서 예언자는 그들에게 아람의 중요도시 갈레와 하맛, 그리고 블레셋의 유명한 도시 가드를 언급합니다. 이 도시들은 당대에 이름난 도시들이었지만, 멸망한 도시로 보입니다. 이 도시들은 사마리아와 비교했을 때 중요도나 크기 면에서 비슷합니다. 이 도시들이 멸망한 것처럼 사마리아에도 멸망이 임할 것입니다.

 

상아 상과 어린양(3-7)

타락은 인간의 도덕적, 영적 상태가 병들어가는 과정을 의미하며, 그 증상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물질적 풍요에 대한 집착과 도덕적 무시는 타락의 두드러진 증상으로 자주 나타납니다. 이 두 가지 측면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개인과 공동체의 신앙적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칩니다.

 

3너희는 흉한 날이 멀다 하여 포악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4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5비파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절거리며 다윗처럼 자기를 위하여 악기를 제조하며 6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7그러므로 그들이 이제는 사로잡히는 자 중에 앞서 사로잡히리니 기지개 켜는 자의 떠드는 소리가 그치리라(3-7)

 

지도자들에게 ‘흉한 날’이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심판의 날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포악한자리’는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력을 행하는 자리입니다. 아모스는 그들이 약한 자들을 희생시키며 누리는 화려한 생활을 언급합니다. ‘상아 상’이란 상아를 박아 장식한 침상입니다. 이스라엘의 엘리트들은 값비싼 상아 장식을 위하여 백성이 눈물로 경작한 밀, 포도주, 그리고 감람유를 탈취했습니다. 즉 상아 상이면에는 농민층의 경제적인 몰락이 숨어 있습니다. ‘기지개를 켠다’는 것은 만취되어 대자로 누워 있는 모습입니다. 고기 중에서 살이 연한 ‘어린양과 송아지’를 먹는다는 것은 특급 고기를 먹는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5절은 이들의 고상한 취미를 보여줍니다. ‘비파’는 울림통이 있는 현악기입니다. ‘악기를 제조한다’는 것은 악기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면서 작곡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다윗이 악기를 연구한 음악 전문가였음을 상기하며 다윗처럼 작곡하고 악기에 맞추어 노래 부르면서 다윗의 힘, 다윗의 부, 그리고 다윗의 예술을 누리려고 했습니다. ‘대접’은 위가 넓게 터진 그릇로, 포도주를 넘치게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귀한 기름’은 최고급 기름으로, 으깨진 올리브 열매를 압착하기 전에 얻어지는 일등품 기름을 말합니다.

지도자들은 농민들을 착취하여 얻은 기름을 자신의 사치를 위하여 사용했습니다. 요셉은 북왕국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파 이름으로, ‘요셉의 환난에 근심하지 않는다’는 말은 지도자들이 통치하는 백성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안일만을 추구하는 모습을 책망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의 죄에 대한 기소는 끝났습니다. 그들에게 선포하는 것은 멸망인데, 예언자는 일등으로 살았던 지도자들이 일등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간다고 역설적으로 묘사합니다.

‘떠드는 소리’란 이스라엘 엘리트 남성들과 몇몇 여성 지배계층, 대지주, 고관들로 이루어진 친목 단체들이 연회를 열어 만취하고, 함께 교제함으로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대표적인 모임을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이 그치는 것은 나라가 멸망함으로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기 때문입니다.

 

심판의 말씀(8-11)

하나님께서는 교만과 자만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시키고, 공동체를 부패시키는 것을 심각하게 여기십니다. 교만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 중 하나로, 이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괴하고 공동체의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합니다. 교만한 마음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더 높이 평가하고, 자신의 성취와 지위를 과도하게 자랑하는 태도로 나타납니다.

 

8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주 여호와가 당신을 두고 맹세하셨노라 내가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며 그 궁궐들을 미워하므로 이 성읍과 거기에 가득한 것을 원수에게 넘기리라 하셨느니라 9한 집에 열 사람이 남는다 하여도 다 죽을 것이라 10죽은 사람의 친척 곧 그 시체를 불사를 자가 그 뼈를 집 밖으로 가져갈 때에 그 집 깊숙한 곳에 있는 자에게 묻기를 아직 더 있느냐 하면 대답하기를 없다 하리니 그가 또 말하기를 잠잠하라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이라 하리라 11보라 여호와께서 명령하시므로 타격을 받아 큰 집은 갈라지고 작은 집은 터지리라(8-11)

 

다음은 여호와의 이름을 두고 맹세할 정도로 확실히 일어날 것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성읍과 성읍에 거하는 모든 것을 원수에게 넘기는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야곱의 영광을 싫어하고 궁궐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영광이라고 번역한 ‘나온’이라는 히브리어는 ‘교만’이라고도 번역됩니다. 야곱의 영광(교만)은 야곱이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지 않고 자신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교만한 모습을 말합니다. 궁궐은 모여서 열방을 의지하고 악을 도모하는 중심지이기 때문에 그곳에 심판이 선포됩니다.

나아가 예언자는 성읍의 멸망이 어떻게 임하는지 설명합니다. ‘열 사람’은 구약성서에서 최소한의 구성원을 의미합니다. 심판으로 인해 남은 최소한의 공동체가 겨우 생존하지만, 그마저 다 죽게 됩니다. 10절은 사마리아의 철저한 멸망을 보여줍니다. 시체를 장사지내러 온 친척이 그 집 깊숙한 곳에 왔다가 생존자를 만나 살아있는 자가 아직도 있냐고 물으면, 생존자가 조용히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생존자가 있으면 그마저도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11절의 터진다는 말은 철저히 파괴된다는 말입니다. 큰 집은 부유하고 세력 있는 자들의 집이고, 작은 집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자의 집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강한 자의 집이나 약한 자의 집이나 모두 여호와의 심판에 의하여 전멸될 것입니다.

 

교만한 이스라엘(12-14)

우리는 교만이 가져올 결과를 인식하고, 자신과 공동체의 고통을 경계해야 합니다. 교만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치고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자랑과 교만 대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철저하므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두려워하며, 회개와 순종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12말들이 어찌 바위 위에서 달리겠으며 소가 어찌 거기서 밭 갈겠느냐 그런데 너희는 정의를 쓸개로 바꾸며 공의의 열매를 쓴 쑥으로 바꾸며 13허무한 것을 기뻐하며 이르기를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뿔들을 취하지 아니하였느냐 하는도다 14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그들이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12-14)

 

12-13절은 이스라엘 백성의 반역을 동물의 본능과 대비합니다. 말이 바위 위에서 달리거나 소가 바위 위에서 밭을 가는 것이 본능이 아니기에, 동물들은 본능을 거슬러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본능은 정의와 공의를 실천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정의를 먹을 수 없는 쓸개로, 공의를 먹을 수 없는 쓴 쑥으로 바꾸었습니다. 13절에서 ‘허무한 것’과 ‘뿔들’로 번역한 단어는 고유명사로 보고 ‘로드발’과 ‘가르나임’이라는 성읍 이름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 두 성읍은 요단 동쪽 북부에 위치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은 성읍을 자신들의 힘으로 빼앗았다고 자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아직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나라를 지명하여 전 이스라엘에 걸쳐서 (하맛 어귀에서 아라바 시내까지. 왕하 14:25에 따르면, 여로보암 2세가 정복한 가장 넓은 영토가 바로 하맛 어귀로부터 아라바 바다까지 였다.) 교만한 백성을 학대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타락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왜곡하고 심판을 초래함을 경고합니다. 교만은 자신과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합니다. 우리는 자랑과 교만 대신 겸손과 회개를 통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의롭고 철저하므로, 겸손한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교만을 경계하고,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겸손과 회개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