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시편(완료)

시편(160) - 시편 120편-121편 -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

백의종군 2024. 9. 15.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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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20-121)


끝까지 지키시는 하나님의 손길

시편 120편-121편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어려움과 시련을 겪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분의 지혜와 사랑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는 진리와 정의를 위해 싸우며,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움을 구합시다. 우리의 인생의 매 순간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합시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 시편 120편에서 시인은 이방인의 땅에 오래 거주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거짓과 싸움을 일삼는 자들 때문에 환난을 당해, 하나님께 간구했고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삶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갑니다. 시편 121편에서 산들을 오르내리며 목적지로 향하는 시인은 산행에서 오는 긴장감과 두려움 속에서 하나님께서 도움이자 지키시는 분임을 상기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다방면에서 깊이 묵상합니다.

 

거짓과 속임수에서의 구원(120:1-7)

거짓말은 삶을 뒤집고, 속임수는 삶을 갉아먹는다. 오랜 시간 성실하고 진실하게 살아온 우리 이야기를 왜곡하고 뒤틀어버린다. 세상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이후에도 우리를 그렇게 대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때에 추수를 보지 못하더라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고난에 직면하면서 기쁘게 씨를 뿌리는 법을 배워가야 합니다.

 

1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2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3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4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 나무 숯불이리로다

5메섹에 머물며 게달의 장막 중에 머무는 것이 내게 화로다

6내가 화평을 미워하는 자들과 함께 오래 거주하였도다

7나는 화평을 원할지라도 내가 말할 때에 그들은 싸우려 하는도다(1-7)

 

시편 120편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거짓과 속임수로부터 구원을 구하는 시인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시인은 평화를 원하지만,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갈등을 겪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도움을 간청합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고난 중에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믿음을 강조합니다.

 

(1) 시인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1-2)

 

시인은 환난을 당해 하나님께 기도했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을 받았노라고 간증합니다. 시인이 환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깊이 신뢰했고, 하나님께서 곤경에 처한 자신을 긍휼히 여길 분이며 곤경에서 건질 능력자로 확신했음을 암시합니다. 이런 시인의 소망과 기대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긍휼이 암시적으로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선언한 시인(1)은 자신이 기도했던 내용이 거짓말과 속임수를 일삼는 자들로부터의 구원과 보호였음을 밝힙니다(2). 2절에서도 시인이 ‘여호와여’라고 하나님을 먼저 부른 것을 보면, 시인이 하나님을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현재 이방인의 땅에 거주하고 있는 듯하고, 고국으로 곧 돌아갈 계획이나 가능성은 암시되지 않았습니다(5-7). 시인이 어느 곳에와 있든지 그곳은 예루살렘과 먼 곳이며, ‘거짓의 입술’과 ‘속이는 혀’를 가진 자들이 가득한 곳입니다. 시인을 속이는 자들은 동족인 이스라엘인일 수도 있겠지만, 5-7절에서 시인이 이방 땅에 사는 처지를 한탄한 것을 고려하면, 그들은 이방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들의 악행은 시인의 목숨마저 위태롭게 만들었고, 시인은 이에 하나님께 자기 영혼을 구해달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2) 질문과 대답(3-4)

 

시인은 자기 생명을 위협했던 원수들의 속이는 혀에게 묻고 답합니다. ‘무엇을 네게 줄까’와 ‘무엇을 네게 더할까’라는 질문 자체는 질문자가 상대에게 상이나 선물 등 호의를 베풀려는 의도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여기서 이 질문은 시인이 속이는 혀에게 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처벌이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물음입니다.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시인 자신이 직접 대답하려고 하는 질문입니다. 시인은 거짓과 속임수를 내는 혀에게 내릴 형벌이 ‘장사의 날카로운 화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라고 말합니다. 원수를 무찌르기 위해 용사가 날카로운 화살들을 날리듯이, 거짓말만 내는 혀에 이 화살을 날려 거짓말을 없애야 합니다. 잘 꺼지지 않는 로뎀 나무 숯들로 그 혀를 태워 속임과 거짓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잠언에서 언급하듯, 거짓말하는 교만한 입술은 하나님의 미움을 받으며 매를 자청하기 마련입니다(잠 8:13; 12:22; 14:3). 또한 거짓말과 속임수는 방망이, 칼, 뾰쪽한 화살(잠 25:18), 맹렬한 불(잠 16:27) 등으로 비유되므로, 거짓과 속임수를 쓰는 자들은 자기들이 하던 거짓말과 속임수로 멸망할 것을 암시합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화평에 대한 소망(5-7)

 

시인은 거친 이방 땅에서 이방인으로 거주한 지 오래되었음에도 아직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함을 한탄합니다. 시인이 거주지로 언급한 ‘메섹’은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소아시아 지역으로 알려졌고, ‘게달의 장막’은 아라비아 광야의 유목민 지역으로 알려져, 서로 지리상 동떨어진 곳입니다. 그런 두 지역을 시인이 자신의 거주지로 언급한 것은 그가 실제로 그곳에 거주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거주지가 두 지역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에서 먼 곳이며, 호전적이고 악의적인 야만인들의 지역임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6,7절에 두 번 언급된 ‘화평’(샬롬)은 이중적 의미가 있습니다. 시인은 이 단어를 써서 말 그대로 ‘평화’나 ‘평안’을 의미함과 동시에 ‘화평의 도시(또는 터)’로 알려진 ‘예루살렘’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시인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은 화평을 미워하고 싸움을 일삼는 자들이면서 예루살렘에 대해 적대적인 자들임을 암시합니다. 반면, 시인은 자신을 ‘화평’이라고 표현할(7) 만큼 정직과 공의와 사랑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주변인들은 시인이 평화적으로 말을 하려 해도, 그것을 싸움의 기회로 삼아 시비를 걸어옵니다. 그럴수록 시인은 화평의 도시인 예루살렘이 애타게 그립기만 합니다.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121:1-8)

자기 백성의 아우성에 아무 응답도 할 수 없는 우상과 달리(왕상 18:27),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앞길을 미리 예비하시고 앞서 인도하시며 곁에서 동행하여 주십니다. 당신의 그늘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언제까지나 지켜주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떠나 고향에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물론이고 ‘영원까지 지켜주실 것’입니다.

 

1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2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3○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4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5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1-8)

 

시편 121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 되시고, 끊임없이 우리를 지키시며 보호하신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확신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신앙의 고백을 강조합니다.

 

(1) 시인의 도움이신 창조주(1-2)

 

여행길에 오른 시인은 산들을 오르내리면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시 내용에 목적지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으므로 시인이 어느 곳으로 가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이 시의 표제가 ‘성전에 올라가는 시’인 점을 고려하면 시인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예루살렘 성전을 향해 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유다 산지의 골짜기 가운데 솟아 있는 구릉(해발 780미터)이므로, 시인은 여러 산을 지나며 형세가 가파르거나 거친 곳을 통과해야 하는 위험과 강도의 무리나 사나운 야생 동물을 만날 위험 등을 감수해야 합니다. 시인이 눈을 들어 산들을 둘러보며 위험과 두려움을 생각할 때, 그의 도움이 어디로부터 올지 자문합니다. 이 질문에 시인은 그의 도움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여호와로부터 오리라고 스스로 대답합니다. 시인의 자문자답은 그로 하여금 순간순간 들어오는 두려운 마음과 걱정을 떨쳐내고 창조주인 능력의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를 도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합니다. 이 담대한 마음으로 목적지를 향해 여정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2) 시인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3-6)

 

시인의 도움이신 창조주 하나님은 시인의 발이 흔들리거나 비틀거리게 두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사람이 평지를 걷는 경우에도 발이 흔들리면 마음먹은 대로 갈길을 지속하기 어렵게 되는데, 산을 오르내릴 때 비틀거린다면 조금만 헛디뎌도 크게 다치거나 목숨까지 잃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자신의 도움을 갈망하며 산길을 걷는 시인의 한 걸음 한 걸음을 견고하게 붙들고, 위험에 처하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누군가를 살펴 지킬 때 사람들은 지치기도 하고 졸기도 하겠지만, 능력자 하나님은 졸지도 않으시고 신실히 성도를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여정의 매 순간 하나님의 보호와 안전 속에 거할 수 있습니다.

한편, 시인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시인과 같은 개인만을 보호하는 분이 아니라 이스라엘 전체를 지켜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시인은 이 사실을 떠올리고 ‘보라!’라고 외치며, 자기 자신에게 ‘너’로 지칭)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는 분이라고 선포하며 감격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므로, 지치지도 않고 잠을 청할 필요도 없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도 잠을 자며, 자는 동안 그들을 섬기는 자들에게 반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왕상 18:27). 하나님께서는 바알이나 다른 어떤 신과도 결코 비교될 수 없는 우주의 창조주인 전능자시며, 그를 섬기는 자에게 성실한 사랑의 관심을 쏟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밤낮으로 시인 오른쪽의 그늘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의 오른쪽에 있다는 말은 시인에게 호의나 도움을 베푸신다는 의미입니다(시 109:31; 110:1). ‘하나님의 날개 그늘’(시 63:7)로도 표현되는 ‘하나님의 그늘’ 또한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보호자와 안식처가 되신다는 말입니다(시 91:1). 시인이 목적지를 향해 밤낮으로 산길을 오르내릴 때, 하나님께서는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으로 인해 시인이 탈수되거나 탈진하지 않게 하시고, 일사병에 걸리지 않게 보호하시며, 밤의 추위나 어두움 속에서도 그가 안심하면서 가거나 잠잘 수 있게 보호하십니다.

 

(3) 여호와의 축복(7-8)

 

현재 시인에 대한 하나님의 살피심과 보호는 미래에도 일어날 축복의 약속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과 그 영혼을 모든 환난으로부터 지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의 영역은 시인의 나가고 들어오는 행동, 즉 이번 여정 동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미칠 것이며 그의 일상생활에도 세세히 임할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신의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고난과 역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의지하며, 매 순간 기도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 특히 어려운 순간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그분의 응답과 보호를 확신하며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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